게으름에 대한 변명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글쓰기에 대한 마음에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지만,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도 이렇게 달라질 줄이야.
글 쓰는 직업을 가지고 싶었다. 내가 쓴 글들이 월급으로 돌아온다면 나는 더욱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막연한 기대감은 행동하게 했고 드디어 꿈꾸던 직장에서 일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에는 적응이 필요했기에 내 글쓰기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점심시간을 빼고 몇 시간을 같은 자세로 글을 써야 했으니까. 그런데 이 작업에 적응은 언제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내 적응 기간은 오래도 걸렸다. 사실 글쓰기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적응하는 데 걸린 시간이었다.
그 와중에 묘한 불만이 생겼던 것이다. 하루 종일 내 정신을 갈아 넣는 듯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나는 더 이상 그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아니하고 싶지 않았다. 한동안 탈진한 상태로 퇴근하면, 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절하듯 잠드는 것뿐이었다.
루틴처럼 하루 마무리를 해주던 글쓰기였는데도 쓰고 싶지 않았다. 생각도, 생각을 글로 옮기는 일들도 무감각해져 어떤 감흥도 일지 않다니.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원하던 것은 글쓰기라는 행위가 아닌, 나를 담아낸 글쓰기 과정이었던 것인데. 지금처럼 내가 원하는 글쓰기를 하지 못한다면 내 선택은 잘못된 것일까?
다행히 최근 친구와의 통화에서 나는 화장실 가기 전의 마음을 다시 떠올릴 수 있었다. 그래 이제 시작된 새로운 선택, 그로 인한 혼란스러움은 어쩔 수 없겠지.
조금 더 여유를 찾게 되면 내 글쓰기에 대한 마음과 에너지를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긍정하며, 오늘 하루를 오랜만에 글쓰기로 마무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