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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니맨 Dec 19. 2016

#02. 떠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상)

비자를 받고자 한다면 마음을 비우자


천천히 하나씩


오판

잠시 일지 오랫동안 일지 모른 채 일단 다시 한번 한국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고 그러기 위해 준비를 해야 했다. 이미 중국으로 떠나기 전 떠날 준비를 했을 때 방도 빼고 차도 팔고 모든 가전을 정리했기에 그때보다는 훨씬 수월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떠날 준비를 한다는 것은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유학원

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우선 비자를 받아야 했고 인터넷 서핑을 하며 정보를 습득했지만 생각보다 복잡한 것 같아 결국 유학원에서 상담을 받기로 하였다. 가까운 곳 몇 곳을 무작정 찾아갔는데 뉴욕이나 LA, 샌프란시스코 같은 곳들을 추천하며 비자 인터뷰에 합격하기 위해서는 큰 도시의 유명한 어학원을 선택하는 것이 확률이 높다며 매우 적극적으로 설득하였다. 샌프란시스코를 너무 사랑하는 나로서는 설득당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지만 여러 가지 상황상 오스틴으로 가야 했기에 오스틴 어학원을 취급하는 어학원을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상담 후에 느낀 점은 유학원도 사업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본인들이 취급하지 않는 지역보다는 연결되어 있는 곳으로 추천을 해주기 때문에 특정 지역으로 꼭 가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미리 인터넷으로 찾아본 후 그 지역을 취급하는 유학원을 찾아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여하튼 다행히 상담을 통해 나한테 맞는 어학원을 정할 수 있었고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는 것에 흡족해하며 더욱 용기가 생기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서류 대란

어학원 지원에 필요한 자료와 금액을 보냈고 얼마 후 생각보다 빨리 어학원에서 입학허가서가 도착했다. 그리고 곧 유학원에서 얘기해준 자료들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서류 준비를 매우 싫어하는 성향의 사람으로서 준비 리스트를 보고 상당히 순간 떠나지 말까 고민하였으나 더 큰 목표가 있기에 즐거운 마음으로 비자 인터뷰를 위해 필요한 자료들을 하나씩 준비하였다.


비자신청서 작성
여권(유효기간 6개월 이상)
비자용 사진(5.1cm x 5.1cm)
SEVIS Fee 납부 영수증(($200)
미국 비자 신청비 납부 영수증($160 / 시티은행)  
영문 최종학교 졸업/재학/휴학증명서  1부
영문 최종학교 성적증명서 1부
병적증명서                                                             
재직증명서 혹은 학생증
은행 잔고증명서 소득금액 증명원 
갑종 근로 소득세 원천징수 확인서
TOEFL, SAT, GRE, GMAT 성적표 원본
각종 상장 또는 장학증서
가족관계 증명서
그 외 개인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
등등 (제정 보증인이 본인이 아니거나 임대업 등을 하는 경우 추가 서류들이 필요함.)
*모든 서류는 가능하면 영문 및 칼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함.

                            



비자 인터뷰

자료 준비를 마침과 동시에 비자 인터뷰 신청을 하였고 단단히 준비하여 미국 대사관으로 향했다. 비수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았고 밖에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해 조금 대기한 후에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미국 대사관 내부는 미국에서 지어서 그대로 가지고 온 것처럼 미국 건물 분위기 그 자체였다.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채 서로 눈치를 보며 긴장한 듯 보였고 미국에 공부하러 가기 위해 비자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매일 이렇게나 많을까 생각하니 불현듯 이 사람들이 모두 웃는 얼굴로 이곳을 나가지는 않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해 왔다. 

비자 인터뷰 현장은 대략 이런 느낌이다.(이미지출처 : google)

보통 비자 인터뷰에서 떨어지는 경우는 미국에 입국한 후 돌아오지 않고 불법체류를 할 가능성이 높다거나 가야 할 이유가 명확하지 않을 때라고 하는데 나는 내 경력들을 증명해 줄 완벽한 자료들을 준비했고 분명한 목적이 있기에 강한 자신감이 있었다.




멘탈 붕괴

Visa Rejection Yellow Slip (이미지출처 : google)

손에 쥔 번호표를 재차 확인하며 내 번호가 울리자 당당하게 영사 앞으로 걸어갔고 40~50대로 보이는 남자 영사는 웃으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영어가 부족할 경우 하고자 하는 얘기를 잘 전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떨어질 확률이 높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나서 통역을 요청하였고 간단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영사가 노란색 종이에 무엇을 체크하는 것을 보았고 사전에 검색을 통해 그것이 불합격 통지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순간적으로 당황하여 아무 말도 못 하고 인터뷰를 끝낼 수밖에 없었다. 매우 춥고 바람이 많이 불던 날이었는데 대사관을 나와서 멍하니 서있다가 서류를 떨어트리는 바람에 모든 서류들이 바람에 날아갔고 줄 서있던 사람들과 의경분들이 서류들을 같이 주우며 내게 전달해 줄 정도로 멘탈이 붕괴되어 있었다.

   




당황스러움

솔직히 당황했다. 내가 간다고 결심하면 가는 것으로 생각했기에 비자 인터뷰의 탈락은 매우 속이 쓰리게 다가왔다. 유학원과 연락 후 다시 바로 인터뷰 재 신청을 했고 산더미 같은 서류들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고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나온 후회감에 며칠 동안 얼빠진 상태로 있었던 것 같다. 단정하게 보이기 위해 명절 때도 자르지 않던 수염을 몇 년 만에 밀며 나름 각오를 다졌건만.

인터뷰를 다시 보기 위해서는 미국 비자 신청비 $160를 다시 내야 했는데 항간에 떠도는 얘기로는 어린 학생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직장인들의 경우 두, 세 번을 보는 경우가 많다는 애기도 있었다. 물론 증명된 바 없는 유언비어이지만 대학원 입학이 확정된 사람들도 1차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해서 두 번째 인터뷰는 붙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하기도 하였다.


여하튼 충격이 적지 않았는지 미국 비자가 계속 거절되면 미국으로 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고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2안, 3안으로 캐나다나 다른 영어권 나라에 대한 정보들을 듣고 있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심기일전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전에 다니던 한 회사의 대표님은 나를 보고 잡초 같은 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을 만큼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고 모두가 말리는 일도 고집부리다가 7번 넘어지면 좀 쉬었다 8번 일어나는 (무모한) 도전의 아이콘 아닌가. 고작 비자 인터뷰 한번 떨어진 것으로 좌절만 하고 있을 짬밥은 아니라는 생각에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되짚어 보며 더 완벽한 준비를 하기로 했다.


내가 떨어진 이유가 굳이 미국에서 공부해야 할 이유를 잘 모르겠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혹시 또 내가 해야 할 얘기를 잘 전달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내가 가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적었고 영문으로 번역해 출력을 해 두었다. (최근 구글 번역기가 업데이트되더니 참 좋아졌다.)  





재도전

다시 한번 찾아간 미국 대사관은 왠지 모르게 익숙하고 처음보다 마음 편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잠이 많지만 영사들도 사람인지라 아침에 보다 덜 지쳐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장 빠른 시간으로 인터뷰를 예약했다.

광화문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

아침인데도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다. 조금의 대기 후 40대로 보이는 여자 영사와 두 번째 인터뷰를 보았다. 조금 얘기를 나눈 후 이전과 바뀐 상황이 별로 없는 것 같다며 인터뷰를 끝내려는 분위기에 엄청난 위기의식이 몰려와 적극적으로 서류들을 보여주었다. 영사가 얼마나 영어 공부준비가 됐는지 보겠다며 통역을 갑자기 빼고 직접 대화를 시도했는데 순간 큰일이다 싶었지만 매우 다행히 최대한 침착하게 잘 대답하였고 그렇게 조금의 대화가 오간 후 영사가 웃으며 내 노란 종이를 찢는 순간 합격했구나 라는 생각에 만감이 교차했다.


찢어지는 노란 종이를 보는 순간의 쾌감은 근래 들어 최고였으며 매우 기쁜 마음으로 대사관을 나올 수 있었다. 서둘러 유학원에 전화에 합격소식을 알렸고 내일 같이 기뻐해 주심에 고마웠다. 무엇보다 이제 드디어 떠날 수 있게 되었다는 마음에 기대감과 동시에 내가 무슨 짓을 저질러 버린 건지 무모한 도전에 대한 아주 약간의 두려움이 엄습했다. 




감회

돌이켜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입학허가서를 받아 놓고도 못 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 들며 며칠간 속을 태웠기에 좋은 기분을 유지하고 싶어 미 대사관 앞에 있는 광화문을 잠시 걸었다. 세월호 분향소에 이르자 순간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분향소에 걸려있는 아이들의 사진을 차마 오랫동안 바라볼 용기가 없어 고개를 떨구고 잠시 동안 묵념하며 막연한 미안함을 표시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발검음을 멈추게 했던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
한산한 광화문 거리

주말마다 집회로 인해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스쳐간 광화문 거리는 매우 한산했다. 이러한 시국에 한국을 잠시 떠난다는 것이 알 수 없는 미안함도 들고 동시에 어쩌면 다행인 것 같다는 이기적인 생각도 들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떠나기 위해 준비하고 정리해야 할 것들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떠나기 위해 가족, 친지들과도 정리해야 할 것들이 떠오르며 여러 가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두들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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