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미국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저니맨 Jan 06. 2017

#03. 떠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 (하)

會者定離 (회자정리)



이별을 위한 준비



본격적인 준비

떠나기 위해 가장 신경을 많이 썼던 비자가 해결되고 나니 물리적으로 준비해야 할 것들을 하나씩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대략 맥북프로 장만과 해외송금은행 지정, 목돈이 들어가는 상황에서의 지출 분배, 등록금 납부, 미국 의료보험가입, 비행기 티켓 예매, 이민가방 구매, 개인사업자 정리, 세무 정리, 환전, 국제 운전면허증 발급, 상비약품 등 구매 등등의 준비를 했어야 했다.


어느 하나 의외로 간단한 것들은 없었지만 그중 가장 신경이 많이 쓰였던 것은 비행기 티켓 예매와 환전이었던 것 같다. 비행기 티켓은 여러 가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나 혼자 생각한다면 그냥 가격이 가장 쌀 때 사면 그만이지만 짐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기에 한국에서 공항까지 함께 가줄 사람과 그 스케줄, 미국에서 도착했을 때 마중 나오는 사람과 그 스케줄 등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많은 신경을 써야 했고 중국에서 급하게 돌아오며 중국 통장에 있는 돈들을 가지고 오지 못해 한참을 고민하고 알아보다가 알리페이를 이용해 국내에서 환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 과정에서 정말 쉽지 않은 우여곡절이 있었기에 굉장히 기억에 남는다.





문득  

그러던 중 무엇인가 허전함을 느꼈다. 주변 사람들과의 이별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하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친구들과 주변 지인들, 그리고 가족들. 이미 몇 달 전 중국에 가기 위해 한 번의 준비를 했기 때문에 굳이 또 한 번의 이별 준비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굳이 또 요란 떨 필요 있을까 싶었지만 그래도 보고 가야 하지 않겠냐는 몇몇 지인들의 권유로 다시 한번 무리해서라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떠나기 전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중국에 가기 전에도 그러했듯이 매일 아쉬움을 달래는 술독에 빠져 속 쓰림과 해장의 반복 속에 무척이나 피로감을 느꼈지만 이번에는 가능하다면 그리 짧은 시간 안에 돌아오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터라 더욱 한 명 한 명과의 만남이 의미가 깊었다. 남은 시간에 대비했을 때 여러 가지 물리적인 것들을 준비함과 동시에 사람들을 만나야 했고 연말이기에 모두들 바쁜 터라 아쉽게 얼굴도 못 보고 온 사람들도 많지만 이렇게 무리해서라도 얼굴을 보게 되면 한동안 그 즐거웠던 기억들로 그리움을 달랠 수 있다.


하지만 덕분에 떠나기 전에 마무리했어야 할 이 글을 도착한 후 며칠이 지나서야 정리하고 있다.




 


떨어져 있다는 것  

나의 오랜 터전을 얼마 동안인가 떠난다는 것은 주위에 있던 많은 사람들과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매우 슬픈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지금이 어떤 세상인가. 물리적으로는 10000km 정도 떨어지겠지만 다양한 메신저와 SNS 덕분에 언제든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으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수시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위안이 될 것이다. 비가 오거나 지친 어느 날 밤 전화 한 통화로 소주 한잔 부딪끼며 의지할 수 없는 점은 매우 아쉽지만 그래도 옛날처럼 매 우비 싼 국제전화나 편지를 통하지 않고 편리하게 연락할 수 있는 세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다.


정 못 참겠으면 Face Time을 활용해 소주 한잔 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며 혹시 또 모르지 않는가. 머지않아 VR을 활용해 마치 앞에 있는 것처럼 지인들과 함께 마시는 것 같이 소주 한잔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회자정리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기 마련이며 헤어짐이 있으면 새로운 만남이 있기 마련이다.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의 크기는 언젠가 재회 시 더 큰 반가움으로 승화될 것이며 어차피 언젠가는 모든 사람들과 이별하지 않나. 그런 것들에 대해 미리 조금씩 익숙해지는 것도 연습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직 모를 새로운 만남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이다.


평소에 감정이 없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만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술 취했을 때나 얼굴 표정에 큰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매우 화가 날 때는 티가 날것이다.) 그만큼 웬만한 감정들은 내 안에서 정리되어 겉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잘 웃는 게 좋다는데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하지만 여하튼 나는 감정이 많이 죽어 있다고 생각한다. 이미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생각에 회자정리라는 노래를 만들어 첫 앨범에 실었을 정도로 오랫동안 느껴왔기에 무뎌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민망하지만 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내어 보기로 했다.

오래전 내가 생각했던 만남과 이별에 대한 생각.



별책부록

약 15년 전 발매된 앨범으로 쇼미 더 머니보다는 홍서범의 '김삿갓'시대와 더 가까웠을 시기임을 인지한 후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특유의 열악한 환경에서 제작되었음을 참고하신 후 감상해야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會者定離 (회자정리) 


만남과 헤어짐은 실과 바늘 같지
시작과 끝과 같이
어떤 걸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치
좃 같지만 불가항력적인 것이기에
그 무엇도 탓 할수는 없지

만남과 동시에 결정되는 이별
칼루이스 보다도 빠른 세월 앞에
마이크타이슨도 당해낼 수 없어
세상 어디서도 예외란 없고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어
받아들일 수밖에

나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고
받아들이기까지는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뇌의 시간을 미리 치러야 했고
수많은 방황과 허무함 속의
바다 속에서 허우적대고

 어차피 측량 할 수도 없을 만큼의 깊이
인정하지 못하고 기피
언젠가는 이 세상 모든 것과
헤어져야 한다는 걸 마음 한구석에
 다 처박아 두고 살아가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만남이란 이별이라는
크나큰 벌에 대한 보상인가 봐
이별이란 만남이라는
크나큰 선물에 대한 대가인가 봐

 
현실으로 부터의 도피
입에 문 담배 한 개피
운명을 받아들이기까지의 어려움
이제껏 살아온 인생에 있어
셀 수 없을 만큼 끊임없이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 만나고 해어지고
또 만나면 해어지고

때로는 의미 없는 만남으로 시작해
가슴이 찢어지는 이별로 변하고
가끔은 절실했던 만남이
의미 없는 이별로 변하고

세상이치는 이치로도 예상할 수 없는
매덕스의 변화구 비상구를 찾지 못해
초조해 또다시 악송구를 범하고
감당할 수 없는 혼란 속의 미로
견디지 못하다가 악을 쓰고 울고불고
매달려도 변하는 건 하나도 없어
마음속의 정이 고갈 된 사람은 절대로
죽기 직전까지 이해 못해

만남이란 이별이라는
크나큰 벌에 대한 보상인가 봐
이별이란 만남이라는
크나큰 선물에 대한 대가인가 봐
 
운명이란 게 절대 뜻대로 되지도 않고
인연이란 게 참 웃기지도 않아
영원히 변치 않을 거라 여겼던
당연시했던 철없던 멈출 수 없는
직선의 인생을 원이 되길 바랬던
어린 시절 배 고픈거 외에는
걱정 없이 뛰어 놀았던 놀이터
뒤를 돌아보내 어느새 22m
거짓말같이 그어 져있어

지금 가장 가지고 싶은 것은 고무 지우개
딱 10m만 지우게 지나간 소중했던 시간들을
빠짐없이 기억 해두게 정해진 하늘의 순리를
한번쯤 배신 해보게 두 번 다시
돌이킬 수 없는 길이니 후회 없기를

 빈손으로 출발해 빈손으로 돌아오는 여행이 였음을
매순간순간을 감사하는 마음을 잊지 않기를

만남이란 이별이라는
크나큰 벌에 대한 보상인가 봐
이별이란 만남이라는
크나큰 선물에 대한 대가인가 봐


생과 사 사랑과 우정 믿음과 배신
그 속에 담긴 회자 정리의 원리






매거진의 이전글 #02. 떠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