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이기는 방법이 필요한 집사에게
겨울이 코앞이다. 눈이 기다려진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을 보았던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자고 있는 나를 집사가 번쩍 안아들고서 창가로 갔다. 감히 나의 단잠을 깨운 건방진 닝겐을 손을 깨물려는 찰나, 창밖으로 하얀 점들이 흩날리는 게 보였다. 별 조각이 쏟아지는 것 같기도 했다. 눈이 오면 유리창 너머 세상이 조용해진다. 내 구역을 벗어나는 걸 싫어하지만, 세상으로 나가 눈은 밟아보고 싶다. 나는 겨울이 좋다.
하지만 집사는 겨울을 매우 싫어한다. 매사에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뚜렷한 의견이 없는 집사가 유이하게 단호한 취향을 드러내는 게 바로 계절에 대한 선호다. 몸도 춥고 마음도 추운 겨울은 무조건 싫다나. 마음이 춥다는 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좀 찾아보니 계절이 변하고 일조량이 줄어들면 가벼운 정동장애를 앓는 닝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주말인데도 울적한 얼굴을 하고서 침대에 누워있기만 하는 집사를 보고 있자니, 조금 짠한 마음이 들었다. 태어난 김에 사는 거라는 말 따위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집사에게는 미술이라는 처방이 필요하다. 한 인생은 결국 그 의미를 스스로 '만드는' (인생의 의미는 찾는 게 아니다. 정해진 게 없기 때문이다.) 과정인데, 예술가들은 하등 쓸모 없는 - 어떻게 보면 무의미한 - 붓질 등의 행위를 꾸준히 하면서 본인만의 세계를 세우고 삶의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낸다. 무의미한 하루를 쌓고 쌓아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만들어 낸, 게다가 그 결과물이 아름답기도 한 예술작품들을 앞에 두고서 누가 감히 인생은 무의미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예술, 특히 미술과 문학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낸 <롤리타는 없다>(이진숙, 민음사)를 집사에게 읽어주고 싶다.
문학을 전공했으나 뒤늦게 미술에 빠져들어 유학길에 올랐던 저자는 한 미술작품과 문학을 소재로 사랑, 에로스, 혁명 등을 이야기한다. 본인의 전공 분야에 대한 내공은 기본이고 문학을 열렬히 사랑했던 이답게 필력도 좋아서 읽는 맛이 있다. 그중에서도 집사에게 들려주고 싶은 글귀들을 모았다.
(...) 다만 태어나서 죽을 뿐인 인간, 제아무리 오래 산다 한들 120년밖에 못 사는 인간이 시간 속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성숙이다. (...) 다만 태어나서 죽을 뿐인 인간, 제아무리 오래 산다 한들 120년밖에 못 사는 인간이 시간 속에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은 성숙이다. 아이가 노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가 노인이 되는 것이다.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시간의 흐름 속에 단지 부패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더불어 성숙하는 것, 더 좋은 인간이 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살면서 해야 할 유일한 일이다. (10쪽)
방황해라, 태만해라, 죄를 지어라.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돼라. 가급적 죄를 적게 짓는 것이 인간의 법이다. 죄를 전혀 짓지 않는 것은 천사의 꿈이다. 지상의 만물은 죄를 면치 못한다. - 빅토르 위고, <레 미제라블>에서
(...) 그래서 인간인 것이다. 그 어떤 무엇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삶에 대해 끊임없이 희망을 갖는 것. 그것은 살아 있는 인간이 해야 할 유일한 일이다. (82쪽)
기본적으로 근대 이후의 인간은 접속사 'or'이 만들어 내는 불확실성의 비극에 처한 인간들이다. 급격하게 사회가 변화하고, 모든 정보가 빠르게 전달되는 순간에 접속사 'or'이 만들어 내는 불확실성의 비극성은 극대화되기 마련이다. 우리 발밑의 안정성은 모두 깨져버렸다. (377쪽)
겨울이 코앞이다. 시간은 더 고달파질 것이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봄도 분명히 올 것이니, 겨울과 봄 그 사이의 시간 동안만 잘 버티면 된다. 기왕이면 버티기보다는 조금 더 나은 하루 하루를 위해 노력하길 바라. 나랑 책도 읽고, 가끔은 나 없이 미술관도 가고, 좋은 영화와 드라마도 찾아 보면서. 이 추운 겨울만큼은 내가 조금 따뜻하게 대해줄 테니, 집사가 조금 힘을 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