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행복의 비결을 궁금해하는 집사에게 권하는 책
"아이고, 부러워라~ 우리 고양이님 팔자가 우주 최고 같아."
집사가 나를 보며 종종 하는 말이다. 나도 번뇌에 빠져 고독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날이 적지 않건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적어도 집사보다는 행복하다. 집사에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를 알려주고 싶었다. 이 인간이 내 언어는 당최 알아듣지 못하는지라 답답하던 차에 버트런트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의 <행복의 정복(Conquest of Happiness)>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을 쓴 이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수학자, 철학자, 논리학자, 역사가이며, 20세기 천재를 꼽으면 항상 빠지지 않는다고 하더라. 과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아주 잘 정리해두었다.
불행은 당연한 것이 아니다
우리 집사에게 들려주고 싶은, 첫 번째 행복 정복법은 불행이 절대 인생의 디폴트 값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집사를 포함한 적지 않은 인간들이 염세적이다. 인간은 본디 악하고 약하며, 약간의 기쁨을 인생에서 종종 맛보다가 불행한 채로 죽는다고 믿는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멀리서는 여전히 폭탄이 터지고 아이들이 굶주리며, 가까이서는 항상 나보다 돈 많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 많은 게 요즘 인간들의 현실 인식이니 말이다. 물론 어느 정도 객관적인 팩터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원래 인간은 불행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행복해지는 데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째서 지레 인생은 불행한 것이라고 단정하고서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경시하는 것인가? 혹시 그런 노력을 하고 싶지 않아서, 그런 노력을 하면서 괴로워지기 싫어서 비겁하게 행복을 부정하는 것은 아닌가?
불행이 우주의 본질이라고 하는 견해는 너무 단순하다. 확실히 불행을 즐긴다는 우월감에는, 그리고 불행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통찰에는 약간의 보상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보상은 행복으로 인한 즐거움의 상실을 메워주기에도 부족하다. 나는 불행하다는 데에 어떤 이성적인 우월이 깃들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명한 사람은 사정이 허락하는 한 행복해지려고 노력할 것이며, 우주에 대한 사색이 어떤 한계점을 넘어 고통으로 다가오게 되면 우주 대신에 다른 일을 숙고할 것이다. (23-24쪽)
폭넓은 관심과 경험을 누려라
러셀 경이 <행복의 정복>에서 일관되게 하고 있는 주장이자 나 역시 동감하는 내용은, 행복해지고 싶다면 최대한 다양하고 많은 영역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경험해보라는 것이다. 마음에 불행이 들어올 틈을 만들지 말아라. 물리적으로는, 이런저런 취미 생활을 통해서 '인간은 불행한 존재야!'라는 시답지 않은 개똥철학이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올 시간 자체를 만들지 말 것이다. 그리고 이건 조금 더 어려운 것인데, 실제로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 집사는 보수적인 편이라 늘 안전한 것만 선택한다. 직장도, 음식도, 사람도. 하지만 가끔은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 늘 하던 것만 하려고 해서는 인생은 지겨워지기 마련이고, 권태에 빠진 인간은 자연히 부정적인 생각의 늪에 빠지게 마련이다.
행복의 비결은 다음과 같다. 가능한 한 폭넓은 관심을 가져라. 그리고 가능한 한 당신이 흥미를 가지고 있는 사물이나 인간에 대해 적대적이기보다 우호적인 반응을 보여라. (152쪽)
인생에서 처음 겪는 사건이 있다면, 부디 조심성은 접어두고 과감하게 뛰어들어보라. 나 고양이님 역시 처음 보는 장난감이건 인간이건 뭐든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간다. 그러니 인생이 늘 지겨울 틈 없다. 이게 행복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만, 적어도 불행할 틈은 없다. 인간들이 인생에서 조심성이 필요한 순간은 불과 우리 고양이의 발톱을 다룰 때뿐이다. 특히나 새로운 인연 앞에서는 절대 망설이지 말 지어다.
모든 형태의 조심성 가운데서도 사랑에 대한 조심성이 참된 행복에 있어 가장 치명적인 것이리라. (179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행해졌을 때는 어떻게 할까? 이에 대해서도 러셀 경이 아주 기가 막힌 현답을 내놓았다. 그건 별일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네가 지금 인생을 말아먹을 지경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그 일이 사실은 별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행복의 정복>은 시종일관 인간이 불행한 이유는 자아를 지나치게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으로만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에 누군가의 가시 돋친 말에 온 세상이 쪼개진 듯이 굴지만, 사실은 별 일 아니다.
어떤 불행이 닥쳐왔을 때 진지하고 신중하게 앞으로 일어날지도 모를 최악의 경우를 생각해보라. 일어날지도 모를 불행을 직시한 다음에는, 그 불행이 그렇게 두려운 재난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는 정당한 이유를 열거해보라. 그런 이유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나빠보았댔자 내 한 몸에 일어나는 일이 결코 우주적 중요성을 갖지는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당신이 얼마 동안 최악의 가능성을 응시한 후, 진정한 확인을 가지고 "좋아, 그까짓 것 별 문제 아닐 거야"라고 자기 자신에게 말했을 때 당신은 당신의 걱정이 놀라울 정도로 감소된 것을 알게 되리라. (77쪽)
당신이 소중하지 않은 존재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그저 그건 별 일 아닐 뿐이다. 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