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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이 Nov 10. 2018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 집사에게 읽어주고 싶은 책

 한심하게도, 나의 집사는 제 손으로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 물론 내가 이런 말을 했다는 걸 알면 분명 집사는 코웃음을 칠 것이다. 나야말로 식사부터 화장실 뒤처리까지, 집사 없이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고양이가 아닌가? 집사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집사는 제 손으로 밥을 지어먹지도, 옷을 만들어 입지도, 고장 난 전구 하나 갈지도 못한다. 

 이런 집사가 굶어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소비' 덕분이다. 식당이나 편의점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은 기본이고, 뭔가를 '요리해서' 먹고 싶을 때는 냄비에 넣는 순서가 적힌 봉지에 정량대로 재료가 들어 있는 쿠킹 박스를 산다. 아프면 자가치료 방법을 강구해볼 생각은 하지도 않고 무조건 약국이나 병원에 가서 의료 제품 및 서비스를 구매한다. 심적으로 힘들 때는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려고 한다거나 주변 사람들과 속내를 나누기보다는 온라인 서점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같은 키워드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책을 산다. 이렇게 모든 생활과 삶을 '소비' 하나로 해결하는 우리 집사를 지켜보면서 읽게 된 책이 바로 이반 일리치의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이다. 이미 1970년대에 발표된 책인데도 여전히 그의 비판이 가진 시의성은 빛난다. 



 저자가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이반 일리치는 근대 사회의 본질적인 특징을 '전문가 사회'로 규정한다. 저자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이윤 창출을 위하여 인간의 자연스러운 욕망과 생활을 이른바 니즈(needs)라는 시장 용어에 맞게 기획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전문가들만이 그 니즈를 해소해줄 수 있다는 신념이 사회 전체에 퍼지면서 사람들이 자율적인 생활 능력은 상실하고 얕은 소비에만 천착하게 된 데서 현대 사회의 병폐가 비롯되었다는 게 일리치의 주장이다. 능력의 상실에서 오는 새로운 형태의 '가난'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가리지 않고 영향을 미치는 이 산업화된 무력함은 그렇지가 않다. 현대의 새로운 가난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상품에 중독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죄악이거나, 또는 두 가지 다일 수 있다. 소비를 하지 않고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 그 결과는 인간의 무력함으로, 우리 시대에만 겪는 특별한 가난이다. (8쪽)
(...)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그전까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던 행위는 하찮은 것이 되어 버린다. 새로운 직업이 생겨나면 그동안 어딘가에 고용되지 않고도 해오던 일은 불법이 된다. 어떤 것이 좋은 것이고 옳은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전문가의 권력은 '보통' 사람이 자신의 판단으로 살아가려는 소망과 의지, 능력을 빼앗는다. (99쪽)


 1970년대에 이 책을 쓸 당시에 일리치는 그가 지적한 새로운 형태의 가난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영역이 의료 분야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 지역에 따라서는 20세기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탄생부터 죽음까지 생로병사가 가정과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가정에서 문제없이 해내던 치료(treatment)도 전문 의료 서비스 산업에 편입되면서 이제 사람들은 돈을 내고 얻은 병실에서 태어나고 병원에서 운영하는 장례식장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심지어는 연애를 어떻게 시작하고 진행하는지에 대해서 코멘트하는 서적들부터 소위'픽업 아티스트 클래스'까지 성행하는 시대이니, 이쯤 되면 현대사회는 인간의 생애 단계 하나하나를 상품화하고 있다고 하겠다. 



 소비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이라는 점에서 <무엇이 나를 쓸모없게 하는가>의 지적이 그다지 새롭지 않을 수 있다. 포드주의(Fordism)로 대표되는, 생산이 고도화되면서 나타난 분업 체제가 공장 밖으로 나가 사회 전반에 적용되었고, 나타나는 파편화된 삶에 대한 비판 의식은 익숙한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 무언가를 수행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며, 결국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간다는 점에 힘을 실어 이야기하고 있다는 게 이 책의 가치라고 본다.


(...) 하지만 나의 주된 관심사는 현대화가 일으키는 다른 결과들이다. 즉 자율은 무너지고, 기쁨은 사그라지고, 경험은 같아지고, 욕구는 좌절되는 과정에 있다. (12쪽)


 이미 만들어진 상품 및 서비스를 매개로 해서라야 삶을 체험하는 현대인들은 개별적이고 고유한 삶을 살지 못한다. 모두 이미 만들어진, 나와 소비력이 비슷한 사람들과 똑같은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특히 고도화된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보급된 현대사회에서는 인간들은 인지 능력도 상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 집사만 하더라도 뭘 제대로 기억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건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나오는데, 굳이 익히고 기억해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집사 부모님 세대만 해도 가지고 있는 생활의 지혜 같은 건, 집사에게 기대할 수 없다. 기술철학자 슈티글러(Stiegler)는 현대의 소비자들은 사브와 비브르(savoir-vivre), 즉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지식”을 빼앗기게 되어 인지적으로 빈곤화되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근대 사회학에서 소외 문제를 본격화하고도 세기가 바뀌었건만 평균적으로는 딱히 달라진 게 없거나 혹은 더 심화되었다는 게 참, 인간 사회의 미래가 걱정이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사회가 발전하면서 새로운 삶의 방식이 나타났다고 할 수는 있겠다. 생활의 많은 부분을 소비로 해결하면서 여가 시간은 더 길어졌고,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는 인간의 인지 능력은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만나면서 특정 정보를 저장하는 것보다는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데에 최적화되는 방향으로 변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우리 집사를 보면, 과연 그 새롭다는 삶의 방식이 그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집사가 농사나 글쓰기 같은 일에 환상을 품고 있는 건, 어느 것 하나 제 손으로 할 수 있는 터라 오롯이 자기만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뭔가를 가지고 싶어서가 아니겠는가? 이런 결핍을 안고서 그저 신용카드나 긁고 다니는  게 과연 행복한 삶일까? 집사를 보면 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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