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보다 사랑이 필요한 집사에게
나의 집사는 소위 말하는 결혼 적령기의 닝겐이다. 하지만 집사가 어언 삼년 째 '연애보다 우리 고양이!'를 외치고 있는 걸 보면, 내게 두 번째 집사가 생기는 일은 한동안 없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집사를 삼 년 동안 지켜본 결과, 그녀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결혼이 아니다. 연애도 아니다. 바로 사랑이다. 그것도, 아주 열-렬한 사랑. 집사의 마음은 흡사 가을의 억새밭 같다. 메마른 몸피를 부대끼며 사각사각 소리내는 억새밭 말이다. 바람이 불면 억새 나부끼는 소리가 참 고요하고 평안하며, 쏟아지는 볕이 따사롭기는 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고요하다. 아주 가끔씩 날아들었다가 떠나는 참새 한두 마리 정도가 기억할 만한 사건인 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집사는 원체 감정기복이 적고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게 몰두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매우 평안한 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세상에 자기 자신 말고 소중한 존재가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집사는 내가 있다고 하겠지만 나와 집사의 우주는 서로 달라서 오래지 않아 나는 집사를 떠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집사에게 사랑이 생겼으면 한다.
그렇지만 몇 년째 메마른 상태인 마음에서 사랑의 불꽃이 어디 그리 쉬이 타오르겠는가? 그래서 내가 집사에게 권하는 소설이 바로 이집트 출생의 미국 작가 안드레 애치먼(André Aciman)의 <그해, 여름 손님(원제: Call me by your name)>이다. 루카 구아디노 감독의 <콜 미 바이 유어 네임>(2018. 3. 22. 개봉 예정) 예고편을 보고 난 뒤에 홀린 듯이 원작 소설도 찾아 읽게 되었다.
까무라칠 정도의 황홀한, 첫사랑
주인공이자 화자인 엘리오네 가족의 여름 별장에는 매년 아버지가 초대한 젊은 학자들이 6주 정도 방문하여 함께 여름을 보낸다. 그해의 여름 손님은 미국에서 온 올리버다. 엘리오는 첫 눈에 올리버에게 반한다. 그리고 그를 향한 엘리오의 찬가가 시작된다. 소설 초반부터 중반까지, 엘리오와 올리버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엘리오가 올리버의 사소한 말 하나에도 일희일비하는 모습이 나온다. 장담컨대 소설에 넘쳐 흐르는 그 두근두근하고 간질간질하는 느낌이, 모든 신경이 온통 누군가를 향해 있는 시간들을 읽는 것만으로도 메말라버린 우리 집사의 연애 세포를 벌떡 일으켜 세울 것이다.
그해 여름을 돌아보면 '불'과 '까무러칠 정도의 황홀함'을 감수하려고 무던히 애써야 했지만 여전히 삶은 행복한 순간을 가져다 주었다. 이탈리아. 여름. 이른 오후의 매미 소리. 내 방. 그의 방. 온 세상을 차단해 버린 우리의 발코니. 정원에서 계단을 지나 내 방까지 부드럽게 나부끼며 올라오는 바람. 내가 낚시를 좋아하게 된 여름. 그가 좋아하니까. 조깅을 좋아하게 된 여름. 그가 좋아하니까. 문어와 헤라클레이토스, 트리스탄을 좋아하게 되고 새 울음소리를 듣고 식물의 향기를 맡고 화창한 날 발아래부터 올라오는 옅은 안개를 느낀 여름. 모든 감각이 항상 깨어 있어서 언제라도 자동으로 그에게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25-26쪽)
한번은 테이블에서 노트를 옮기다가 실수로 유리컵을 넘어뜨렸다. 컵은 잔디밭으로 떨어졌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가까이 있던 올리버가 일어나 컵을 주워 제자리에 놓았다. 그것도 노트 바로 옆에 놓아 주었다.
무슨 말로 고마움을 표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되는데." 마침내 내가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의 대답이 가볍거나 태평한 말이 아닐 수도 있음을 내가 알아채도록 충분한 시간을 주었다. "그러고 싶었어."
그가 그러고 싶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40쪽)
많고 많은 사랑 소설 중에서도 <그해, 여름 손님>을 집사에게 추천하는 이유가 있다. 엘리오는 올리버와 함께 한 여름을 지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보다 더 잘 알게 되고, 그러한 자신을 스스로 넘어서며 성장하게 된다.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끝까지 가 볼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어떤 곳에서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자기가 행복할 지 잘 알면서도 이런저런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행복 반대편으로 발길을 돌리는 닝겐들이 얼마나 많은가. 엘리오 역시 망설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여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어이, 말 그대로 불 같은 - 그 사랑에 타서 재가 되어 버릴 수도 있는 - 사랑에 발을 들이게 된다. 그리고 정말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대신 평생 소중하게 간직할 여름을 보내게 된다.
나와 당신, 일생에 단 한 번만
그 시절을 돌아보면 조금의 후회도 없다. 위험천만한 모험이나 수치심,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통찰력 그 무엇도 후회되지 않는다. 서정적으로 비추는 햇살, 한낮의 강렬한 열기에 고개를 꾸벅거리는 커다란 식물로 가득한 들판, 나무 바닥이 끽끽거리는 소리나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대리석 평판으로 재떨이를 살짝 미는 긁히는 소리.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제한적이었고 감히 헤아려 보지도 못했고 끝이 어떻게 될지 뻔히 알았지만 굳이 이정표를 살펴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생애 처음으로 돌아오는 길을 위하여 빵가루를 흘리는 대신 다 먹어 치웠다. 알고 보니 올리버가 소름 끼치는 인간일 수도 있고. 나를 영원히 바꿔 놓거나 망쳐 버릴 수도 있으며 시간과 소문이 우리가 나눈 모든 것의 내장을 드러내고 물고기 뼈만 남을 때까지 다 갉아먹을 수도 있었다. 내가 나중에 이 시간을 그리워할 수도 있고 훨씬 더 잘 살 수도 있지만, 그 시절 내 방에서 보낸 오후마다 내가 순간을 붙잡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항상 기억할 것이다. (201-202쪽)
(...) 난생처음으로 어딘지 무척 소중한 곳에 도착한 느낌, 이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영원히 나이기를 바라는 느낌, 두 팔이 후들거릴 때마다 완전히 낯설지만 익숙하지 않은 건 아닌 무언가를 찾은 듯한 느낌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나 내 삶의 일부였지만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찾지 못한 것을 그가 찾도록 도와준 느낌이었다. 꿈이 맞았다. 마침내 집에 온 느낌이었다.
(...) 그것은 내 꿈과 환상, 그와 나, 그의 입에서 내 입으로, 다시 그의 입으로 입에서 입으로 왔다 갔다 하는 욕망의 말을 완성하는 길이었다. 내가 외설스러운 말을 시작했는지 그가 부드럽게 따라 하다가 말했다. "네 이름으로 나를 불러줘. 내 이름으로 너를 부를게." 태어나서 처음 해 본 일이었다. 그를 내 이름으로 부르는 순간 나는 그 전에, 어쩌면 그 후에도 타인과 공유한 적 없는 영역으로 들어갔다. (167쪽)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가 되는, 남이던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 그려졌으니 말이다. 이 광활한 우주와 시간 속에서 어쩌다 두 사람이 만나서 몸과 마음을 나눈다는 게, 참으로 감동적이었다.
엘리오와 올리버처럼 살면서 그 어떤 순간보다 찬란한 한 때를 가졌다고, 그것도 그 순간을 함께 한 소중한 누군가가 있었노라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가? 집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분명 그녀는 입을 굳게 다물 것이다. 내가 고양이로서 할 말은 아닐 수 있지만, 엘리오 같은 여름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정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정말이지 집사에게 필요한 것은 남들이 해서 하는 결혼이나 연애가 아니다. 이 광활한 우주와 시간 속에서 운명처럼 만나 같은 곳을 보고 같은 것을 느껴보는, 그 사랑이라는 것이 그녀에게 필요하다.
우리가 자신을 내던진 그해 여름의 몇 주 동안 우리의 삶은 거의 닿지 않았지만 우리는 강 건너편으로 건너갔다. 시간이 멈추고 하늘이 땅에 닿아 태어났을 때부터 우리 것이던 신성한 걸 내어 주는 그곳으로. 우리는 반대편을 보았다.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지금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확인되었을 뿐. 우리는 한때 별을 찾았다. 나와 당신. 일생에 한 번만 주어지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