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마음에 잘 담지 않는다. 웬만해서는 흘려보낸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감정의 역치가 높은 편이다. 덕분에 스트레스를 잘 받지 않다. 하지만 평생 아끼며 마음에 품을 만한 추억도 거의 없다. 갓 서른을 넘었기는 하지만, 적어도 아직까지는 인생을 뒤돌아보면 내 모든 시간은 뿌연 무채색 같다. 칠흑 같은 순간은 없지만, 그렇다고 잊지 못할 빛나는 순간도 없다.
고양이는 이런 내 삶에 색채를 부여한다. 가족 외의 존재를 스스로 사랑하기로 선택한다는 게 이렇게 기쁘고 슬프며, 그래도 결국은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히 알아가는 중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그러모이고 단단히 매듭을 짓게 해준 게 글쓰기다. 감정도 휘발되지 않을 수 없는데, 그 감정을 (나의 애처로운 글솜씨로나마) 담아두었다가 나중에 꺼내볼 수 있는 행위니까 말이다. 고양이와 함께하는 생활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플랫폼에 비정기적으로 글로 남겨두고는 있었지만, 이번 11월은 매일 글을 쓰면서(물론 모든 글이 고양이에 대한 건 아니었다.) 무채색이 디폴트인 인생에서 다채로운 컬러값의 점들을 하나하나 찍어둘 수 있었다.
올해의 마지막 달도, 올 겨울도, 다음 봄도, 그 다음다음 여름도, 그리고 이런 매일 글쓰기 프로젝트가 언젯적 일인지 가물가물해지는 어느 해의 겨울까지도 나의 고양이와 함께 이 속없이 외로운 생을 끝내 행복하게 살아내고야 말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