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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eYa Jun 07. 2021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

여행이야기 - 두 번째

아르헨티나 살타에서 곧장 우유니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의 국경도시인 라끼아까를 거쳐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선택의 여지없이 라끼아까행 버스를 전날 예매해 두었다. 숙소 주인에게 부탁해둔 콜택시는 예정 시간보다 20분 정도 늦은 새벽 4시쯤 숙소 앞에 도착했고 배낭을 맨 채로 꾸역꾸역 차에 올라탔다. 택시기사는 한참 자야할 시간에 일하는 것이 억울하지도 않은지 자신의 삼성폰을 자랑하며 쌈쏭, 쌈쏭- 하고 웃었다. 그리고 나도 같이 웃었다.


해도 뜨지 않은 새벽녘 도착한 터미널에는 노숙하는 배낭여행객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틀고 있었다. 나 역시 터미널 어느 한 구석에 비닐봉지 하나를 깔아두고 앉아 어제 저녁 먹다 남은 엠빠나다로 이른 아침식사를 했다. 불쑥 큰 개 한 마리가 나타나 종아리께에 바짝 붙은 채로 털썩 앉기에 반죽을 조금 떼어 주었더니 킁킁 냄새만 맡고는 휙 고개를 돌려 버린다. 반죽 속 소시지를 떼어 다시 내어주니 그제야 날름 삼키고서는 두서도 없는 눈동자로 나를 멀뚱멀뚱 올려다본다. 나는 짐짓 태연자약하고 재빠르게 남은 엠빠나다를 다 먹어치웠다. 잠시 후에 개를 남겨두고 버스에 올랐다. 새벽 일찍 버스를 타느라 피곤했는지 자리에 앉자마자 잠이 들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버스 창밖으로 여태껏 보지 못한 생경한 풍경이 쏟아져 들어왔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야. 그 위로 밤송이처럼 송송 솟은 키 작은 나무들이 빼곡히 깔려 있었다. 풍경은 끝도 없을 것 같았고, 버스는 멈추지 않을 듯 달리고, 그러다가 구름이 점점 내려왔다. 아니 사실은 내가 올라간 것이었다. 고도가 높은 곳으로 향하면서 하늘이 점차 가까워졌다. 산의 능선마다 구름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나는 고산병에 대한 걱정도 잊은 채 점점 생생해져 쏟아질 것만 같은 구름 그림자를 창문 너머로 하염없이 건너다보았다. 물웅덩이처럼 여기저기 고여 있는 구름 자국들. 많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하여라. 간간히 꼬질꼬질한 털옷을 입은 양떼들이 시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것들은 풀을 뜯느라 저를 강렬히 염탐하는 눈빛도 알아채지 못하였다.






그렇게 국경마을 라끼아까에 도착했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기다림 끝에 출국도장을 찍고 몇 걸음 걸어 나가니 볼리비아였다. 걸어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경험이었다. 나라 하나를 건너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여권과 몸뚱이 하나면 충분한 일이었다.


하늘을 날지 않아도 걸음만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구나. 내 발로 할 수 있는 일이 이렇게나 많구나. 나는 그냥 걸었을 뿐인데 세상은 이렇게나 달라져 있었다. 어디선가 '깜비오(환전)-' 하고 외치는 소리가 환영인사처럼 들려왔고 물웅덩이 같은 구름 그림자가 빠르게 얼굴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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