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을사변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김광석이 부른 노래이다. 이 곡의 노랫말을 보면 위치 바꾸기가 자연스럽게 자행되고 있다. '물속으로 나는 비행기, '하늘로 나는 돛단배', '한여름에 털장갑 장수', '한겨울에 수영복 장수', '번개소리에 기절하는 남자', '천둥소리에 하품하는 여자' 등등. 이 중 단연 으뜸이 되는 반전은 '독사에게 잡혀온 땅꾼이 긴 혀를 내두른다'는 가사이다. 세상은 항상 강자가 지배하지만 그 룰은 언제 바뀔지 모른다. 아무리 강한 축구팀도 상대도 되지 않던 약팀에게 어이없이 깨지는 경우가 있고, 스펙에서 밀리는 지원자가 화려한 스펙을 가진 다른 두 사람 사이의 경쟁 속에서 어부지리로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세상은 예측하기가 어려운가 보다. 잘 나가는 연예인이 하루아침에 곤두박질치고, 미래를 책임질 것 같은 유망 정치인이 며칠 사이에 수갑 차는 신세로 전락하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는 지지리도 못나보였던 여고생이 나이 들어 동창회에 나갔더니 명품으로 치장을 한 재벌집 사모님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게다가 피부도 매끄러워졌고 매너도 좋아졌고 밥값도 내준다. 중고등학교 때 공부깨나 했다는 녀석들은 먹물티를 낸다. 지금까지 보면 평균적으로 하나같이 지질하다. 반면에 자그마한 도시라도 변두리 지역에서 하루에 서너 번 있는 시외버스로 통학하며 학교 다니던 촌놈들은 동창회에 나와 떵떵거리는 녀석들이 많다. 큰 상가 건물주부터 땅부자까지 변두리가 중심지가 되는 변곡의 시절에나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평가자와 피평가자, 교사와 학생, 구매자와 판매자, 의사와 환자, 군대에서 상관과 부하, 여자와 남자, 장애인과 비장애인, 노인과 청년, 부자와 가난뱅이, 채무자와 채권자, 힘센 자와 약한 자, 키가 큰 놈과 작은놈, 관객과 배우,... 이들 관계는 없어지려야 없어질 수 없는 관계이고 우리가 사는 삶의 모든 곳에서 발생하는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를 인정하지 못하거나 이러한 관계 속에서 갑의 위치에 처한 자가 과도하게 권한을 행사하게 될 경우에는 사회 문제가 된다. 적당히 해결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라면 괜찮겠지만 서로 총질하거나 칼싸움으로 번지게 되면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게 바로 갑질문제이다.
음식점에서 음식을 가지고 서비스를 문제 삼아 종업원이나 주인에게 갑질하는 경우, 백화점 고객이 판매원을 무릎 꿀리고 소리치는 장면은 폐쇄회로에 찍혀 심심찮게 우리 사회에 이슈를 던져주곤 한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상식을 벗어난 관계 설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이런 갑질문제가 속시원히 해결되었다는 소식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이런 이유 저런 변명으로 인해 가해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잘도 법망을 피해나간다. 이러한 배경에는 무죄추정의 원칙 같은 사법영역의 암묵적인 철학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무죄추정의 원칙이 형사법의 대원칙인 것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처벌받게 될 확률을 최대한 낮추고자 하는 사회적 공감대로부터 나온 원칙이다. 이 원칙 때문에 설사 죄를 짓고도 무죄 판결을 받는 운이 좋은 범죄자가 생길 수 있기는 하지만, 미꾸라지 몇 마리를 놓치더라도 애꿎은 무죄인 사람이 이유 없이 벌을 받지 않도록 하자는 취지이다. 그래서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을 보호하는 데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다.
매스컴에서 갑질과 연관된 사건이 이슈가 될 적마다 나는 분개하는 마음에 이런 갑질 종족들을 응징하는 자결단을 만들어 세상을 깨끗이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를 한 번도 실천해보지 못해 본 찌질이지만 기회가 되면 꼭 해보고 싶다. 세상 일에 부처님 가운데 토막 같은 사람만 다 살면 세상의 갑질 종족은 누가 제거할 것인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갑질 종족 제거는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기는 하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분명 피해자와 가해자가 확실한데, 법은 증거불충분, 범죄구성 요건에는 해당되지만 법률상 범죄는 성립이 되지 않는다는 둥, 공소권이 없다는 둥, 혐의가 없다는 둥, 피고인의 인권보호도 중요하거나 개인정보 보호 등을 들어 피의자를 보호하는 둥,... 이러한 사유로 인해 법 없이 산다는 일반인의 보편적인 정신적 응징은 정신세계에서만 가능하다. 실제로 응징이라도 하면 법은 응징의 대가를 분명히 치르도록 처리하고 있다.
최근에 ChatGPT가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세상 돌아가는 형태를 바꿔놓고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생겨 무작정 무료로 진행되는 AI실무자 훈련과정에 등록을 했다. 두 달짜리 프로그램으로 온라인 강의와 오프라인 강의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인데, 대부분이 젊은이들로 이뤄져 있는 강좌이다. 이 강좌의 강사는 나중에 알고 보니 까마득하게 어린 대학 후배였다. 후배와 선배 사이이기는 하지만 AI분야에서는 지적으로 월등히 뛰어난 후배에게 배우면서도 잘 이해를 못 하는 나를 보며 한숨만 나온다. 꿈을 꾸었는데 그 후배한테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듣다가 진땀을 흘리며 후달짝 깨기도 했다.
또한 창업을 하는 이를 도와 일을 하고 있는데 창업을 위한 과제발표를 위해 배석자로 참석하게 되었다. 초조한 마음으로 밖에서 기다리다 발표장에 들어가니 심사위원 중에 후배가 있었다. 후배가 우리 사업의 향배를 판정하는 주요한 사람이었다. 식은땀이 등골을 타고 내려갔다.
세상은 언제 갑을이 바뀌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꿈에라도 아니 어떤 우연한 기회여도 갑질하지 않으면서 세상을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어제는 분명 저 자리에 내가 있었는데... 오늘은 그게 아니네...'복잡하고 아리송한 세상 위로'... 김광석의 노래가 저리로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