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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 Apr 23. 2023

국도사랑

교장선생님 감사합니다

초등학교까지 가는 길은 거의 논두렁 길로 흙길이었다. 학교 근처에 가야 비로소 아스팔트가 깔려있는 신작로였다. 차선도 없는 길이었지만 걷기 편하고 먼지도 없는 멋진 길이었다. 내가 살던 도시에는 군사용 비행장이 있었다. 초등학생이던 우리는 어느 날 선생님이 수업을 하다 말고 운동장으로 모이라고 했고, 수업보다 노는 게 더 즐거웠던 애들은 들뜬 마음에 옹기종기 모여 선생님을 기다렸다. 선생님은 군인 아저씨들이 어디를 간다고 하는데 그 장병들을 환송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어린 학생들은 두 명씩 짝을 맞춰 신작로 길을 따라 학교에서 좀 떨어진 차가 다니는 더 큰 도로까지 이동을 했다.


양쪽 길가에 두 패로 나누어 도열한 애들은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선생님이 나눠준 가는 대나무 깃대에 종이로 만들어진 태극기를 손에 들고 좌우로 흔들며 멀리서 뭐가 오나 하고 도로가를 힐끔힐끔 쳐다보며 서로 재잘거리고 있었다. 한참을 지나도 햇살은 뜨거운데 아무것도 보이질 않는다. "선생님 언제 와요?"하고 짜증 섞인 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금세 올 거야!" 하며 인자하신 선생님도 뙤약볕에 김지미 사진이 있는 둥근 종이부채로 머리를 가리며 앞쪽을 바라본다.


드디어 멀리 커브길을 돌아서며 작은 물체가 다가오기 시작했다. 점점 가까이 오는 걸 보니 지프차 한대가 쌩 하고 지나간다. 뚜껑이 없는 지프차에는 어깨에 하얀 밧줄 같을 걸 매고 반짝이는 철모를 쓰고 검은 안경을 쓴 헌병 두세 명이 타고 있었고 우리 앞을 지나갈 때 우리는 종이 태극기가 찢어지도록 신나게 흔들었다. 근데 겨우 지프차 한대 휘~익 지나가곤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에게 겨우 이거야?", "선생님 이게 다예요?", 선생님은 "좀 기다려봐!" 하신다. 한 오분쯤 지났을까 멀리서 다른 지프차 한 대와 그 뒤에 군용 트럭이 웅장한 소리를 내며 시커먼 매연을 뿜으며 그리 빠르지 않은 속도로 우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군용 트럭의 본네뜨 앞쪽에는 요새 말하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는데, "이기고 돌아오라!", "백마 부대 용사들아..."... 온갖 슬로건으로 도배가 된 군용 트럭의 뒷 의자에는 철모를 쓰고 턱줄을 아랫입술 밑에 질끈 동여맨 군인들이 총을 들고 질서 정연하게 앉아서 서로 마주 보고 있을 뿐 우리 쪽으로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정말 멋지고 늠름한 그 모습에 국뽕온기가 온몸에 퍼지는 것 같았다. 트럭도 새로 칠을 했는지 삐까 번쩍였고, 타이어도 닳지 않은 정말 까만 윤기가 나는 쌤삥이었다. 부아~앙 하고 한 대가 지마면 그 뒤를 이어 또 다른 트럭이 부아~앙 하며 지나갔다. 우리는 길가에서 트럭에 탄 군인 아저씨들을 위해 힘차게 태극기를 흔들어댔다. 태극기를 얼마나 세게 흔들었는지 마지막 트럭이 시커먼 매연을 남기고 지나갈 즈음에는 거의 다 찢어져서 너덜너덜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대부분의 애들 손에 들려있던 태극기는 작살이 나고 말았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아빠 월남이 어디야?", "되게 좋은 덴가 봐 다들 엄청 환영하던데...! 나도 크면 한 번 가볼까 봐...", 아버지는 그냥 눈만 껌뻑이면서 "그런 나라가 있어... 얼른 들어가서 씻고 밥이나 먹자!" 하셨다.    


중학교 시절에도 군인 아저씨들은 계속해서 월남이란 곳에 가고 또 돌아오곤 했다. 중학교도 하필이면 군인아저씨들이 자주 이용하는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그랬는지 우리는 아주 여러 차례 군인 아저씨들을 환송했다. 군인들은 가기만 하는 건 아니었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돌아올 때에도 우리는 개선장병 환영식 같은 데 동원되어 태극기를 흔들곤 했는데, 초등학교 때만큼 열정적으로 흔들지는 않았던 거 같다. 행사가 끝난 뒤에 태극기는 대부분 멀쩡했던 걸 생각해 보면 말이다.


가끔씩 도로에 나가 어느 나라 높으신 양반이 근처 공장 탐방이라도 오면 꼭 우리 학교 근처의 도로를 이용해서 왔기 때문에 종이로 만든 국기를 흔들러 길가에 나가 쪼그리고 앉아서 그들이 지나갈 때 힘차게 흔들 준비를 하곤 했다. 잘 생각이 나질 않는데 초등학교 3학년 때였나 미국 대통령 쫀슨이라는 사람이 우리 도시 근처의 어느 중학교에 방문한다고 해서 그날은 아침부터 오후 늦게나 돌아올 수 있는 먼 길까지 나가 태극기를 신나게 흔들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왜 왔는지 잘 몰랐고 아프리카건 어디건 외국 원수라도 오면 괜스레 국뽕감정이 뽀그르르 샘솟는 그런 때였다.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와서는 수업 대신에 학교 근처 도로로 나간다고 하면 "우~공부해야 하는데... 선생님 안 가면 안되나요나요나요?"하며  공부하기 싫은데 잘 되었다 하고 주르르 따라나서던 시절이다.


흔들 태극기를 주지 않고 길가에 동원되는 경우도 있었다. 전국 구간마라톤 선수들이 가슴에 띠를 두르고 아스팔트 위에 마라톤화가 스치는 철픽 철픽 하는 소리를 내며 내 앞을 1초도 안 되는 순간 휘익 지나갈 때도 플라타너츠 나무 아래 응달에서 우리는 박수를 치고 있었다. 학교에서 멀지 않은 도로에 전국 도로 사이클 선수가 지나간다는 소식이 있기만 해도 한 시간 전이나 두 시간 전부터 도로에 나가 기다리는 일이 자주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선생님들도 앞 도시에서 언제 출발했다는 것만 알았지 언제 지나가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미리 애들을 데리고 나와 있어야 했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이런 간헐적 행사를 꽤나 좋아했다. 교실에 처박혀 수업을 듣느니 바람 시원한 도로가에 나가 조잘대며 언제 오나 하고 기다리는 게 훨씬 재미있었다. 선생님들도 가르치는 게 꽤나 지겨웠는지 밖에 나가면 교실서는 엄격했던 선생님도 동네 아저씨처럼 애들에게 엄청 너그러졌다. 어떤 날은 우리 도시 근처 군에 있는 한 공고 학생이 세계기능올림픽챔피언이 되었다고 우리 도시까지 덩달아 환영 무드로 가득 찼고 아니나 다를까 카퍼레이드를 했고 그게 하필이면 또 우리 학교 근처의 도로를 지나갔다. 이런 일이 부지기수였다.


그 도로는 1번 국도였고 1번이 1등이니까 매우 중요한 도로라는 생각이 들었고 없어서는 안 되는 길이었던 것 같다. 편도 1차선밖에 되지 않았지만 참 많은 차들이 지나다녔다. 승용차가 그렇게 많지 않은 시절이라 도로는 한산했고 길가에는 꽃을 심어놓아 사계절 무척이나 예뻤다. 중요한 길이었다는 걸 몸으로 체험하며 배웠기 때문에 요새도 운전을 하다 혹여 1번 국도를 만나면 가슴이 울컥할 때가 있고, 옆에 타고 있는 사람이 잘 모를까 봐 그 국도의 중요성에 대해 일장 연설을 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우리는 시골 소도시이긴 해도 그 도로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경사는 거의 다 알 수 있게 해 준 고마운 길이었다. 사실 학생으로서 나라의 경사를 모르게 지타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내가 다녔던 학교 교장 선생님들은 학교 근처의 도로에서 일어나는 일에 정말 진심인 분들이었기 때문에 1번 국도 근처에서 일어나는 온갖 경사는 모두 알고 있었고, 행사에 늦기 전에 여지없이 우리들 손에 태극기를 쥐어줬고 우리는 길가의 코스모스처럼 바람에 흔들렸다.


도로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는지 어떤 때는 새로 생긴 지하철이라는 철로길에 가서도 태극기를 흔든 적이 있었다. 우리 지방 도시까지 오는 지하철 개통식에서 전동차 앞에 커다란 꽃다발은 달고 천천히 철로 위를 스르륵 미끄러져 가는 걸 보고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이렇게 도로와 가깝게 된 연유는 초등학교 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교장 선생님들의 노고가 매우 컸다. 그들은 나라의 1번 국도 전문가이며 그 도로에서 일어나게 될 일을 사전에 파악하고 전교생과 그 의미를 나눠야 한다는 독특한 취미 또는 사명감이 투철한 분들이었다. 교장 선생님들이 어떻게 같은 취미를 갖게 되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긴 하지만 그들 덕에 우리가 일일이 신문을 따로 찾아보지 않아도 세상 물정에 뒤떨어질 일이 없었다. 적어도 1번 국도 근처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대해서 만큼은 어느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다.


하~ 근데 요샌 길이 너무 많아졌고 다른 길에서 더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지금 사는 곳도 1번 국도 근처인데 사이렌 소리만 나도 창가로 쪼르르 달려가는 나는 국도사랑 중독자의 때를 못 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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