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두기 Apr 20. 2023

호구구타

구타 유발자 

"형! 오늘 아침에 3학년 어떤 뷔~o시~ㄴ ㅅㄲ ㅈㄴ 얻어터지는 거 봤지?" 우리 형제는 서울 근처 위성 도시의 한 고등학교에 같이 다녔다. 교련이 매우 중요한 시절이었고 국가는 항상 위기가 아닌 적이 없었던 시절이었다. 

매주 월요일하고 수요일 아침에는 열병식이 있었고, 국방색 개구리 교련복을 입고 목총을 들고 멋지게 도열해서 열병에 참여해야만 했고 행진도 본부석에서 지켜보는 교장 선생님 이하 주임 교사들을 위해 줄을 잘 맞춰 걸어야 했다. 키가 큰 애들은 앞에 서고 꼬맹이들은 뒤에서 따라가야 했다. 체격이 좋고 키 큰 애들의 보폭에 맞춰 행진을 하려면 가랑이 찢어져라 따라가야 했는데 그 모습을 보면 가관이었다. 3학년이 되어서도 전국교련시범학교라는 명목으로 총검술, 화생방 훈련, 제식훈련, 각개전투 등 다양한 군사 훈련을 참관인들을 위해 멋들어지게 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씩은 공설운동장에 단체로 참가해서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과 연합 열병식을 해야 했고 경쟁해서 더 멋지게 해야 학교로 돌아와서 집에 일찍 갈 수 있었다. 다른 고등학교보다 열병을 잘 못하면 그날은 학교로 돌아와서 교련 선생님의 화가 풀리는 날이 어둑해질 때까지 열병을 두 번 세 번 더 해야 했다. 한 개인의 마음에 들 때까지 천명이 넘은 학생들이 집에도 못 가고 목총을 들고 북한 애들을 겁줘야 했다. 민주국가에서 정치인이 국민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인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상한 나라의 징조는 그때도 있었던 거 같다. 

하필이면 내가 고등학교 학생일 때 월남이 패망했기 때문에 그 영향은 우리 학생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신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철학 이론 때문에 윤리 시험이 너무 어려워졌다는 거였고, 골 때리는 이념 교육을 소화해서 가르쳐야 하는 윤리 선생님의 개똥철학 수업을 듣는 게 외계인하고 대화를 하는 거 같아서 힘이 들었다. 육체적으로도 충격의 여파는 작지 않았는데 아마 교련 선생이 재소집되어 전쟁터로 끌려갈 까봐 충격이 더 컸었는지 그 결과로 그가 학생들을 더 때려잡아 나라를 지키자는 신념을 굳혀가던 시기여서 힘이 들었다. 그런 교련 선생의 국가에 대한 은닉적인 애국심 때문에 그의 횡포를 그 어느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당시 방귀깨나 뀐다는 집안 자식이 교련 훈련이 싫어서 그 부모가 민원을 넣었지만 훌륭한 교장선생님은 그 교련 선생님을 잘 방어했다. 한편으로 어린 청년들의 생각에도 교장의 방관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 거라는 학생회 차원의 미약한 형식적 민원이 있기는 했었다. 나중에 세상 물정을 알게 되면서 그 당시를 회상해 보면 당시 교장 선생님과 교련 선생님 이하 대부분의 기름진 피부를 가진 대부분의 선생님들이 모두 누이 좋고 매부 좋은 한패였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우리는 교련 선생을 '호구'라고 불렀는데 왜 그렇게 부르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눈은 항상 초점이 없고, 입술을 지탱하는 근육이 좀 너덜너덜했고, 벌어진 앞니 사이로 터져 나오는 슬로 톤의 어눌한 목소리와 침 튀기던 그 모습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 생각된다. 한편 천진난만한 듯하면서도 그가 사용하는 얕고 천박한 기만전술이 눈에 빤히 보여서 그를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생각되기도 한다. 아니 오히려 남의 집 머슴이 주인의 높은 뜻을 잘 이해도 못하고 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들을 줘 팰 때의 그 순진무구한 듯 뭔가 냄새가 나는 애국심이 너무 겉으로 드러나 보여서 그랬던 거 같기도 하다.  

그날도 무거운 목총을 어깨에 메고 열병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렇게 덥지도 춥지도 않았고 교정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나던 봄 날이었다. 그날도 운동장 아니 연병장 먼 쪽에서 열병을 준비하고 있었다. 맨 앞줄에 서있는 큰 애들과는 다르게 뒤쪽의 꼬맹이들은 애국심도 키나 체중만큼 비례하는지 큰애들만큼 미치지 못해서 그런지 줄도 안 맞춰 서서 시시덕 거리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날은 왠지 모르게 다들 기분이 상쾌한 날이었다. 열병식을 해본 한국의 남녀들은 모두 알겠지만 먼저 경례를 할 때는 목총을 뜨거운 가슴 앞으로 들어 올려 반듯하게 세운 뒤 '받들어 총' 명령에 맞춰 "충성"을 목이 터져라 외쳐야 했다. 교장 선생님 이하 엉덩이 깨나 무거운 주임 교사들이 아직 단상에 올라오기 전에 교련 선생인 호구는 애들이 혹시 실수라도 하면 교장선생님의 얼굴에 먹칠을 하는 일이므로 한 시간은 먼저 나와 호되게 열병 연습을 시켰다. 호구 마음에 들을 정도로 외침의 데시벨이 올라야 연습이 끝나고 진짜 조회가 시작하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쉴 수 있었다. 호구는 우리에게 구호를 외칠 때와 구호를 외치면 안 되는 때가 있다는 걸 여러 차례 강조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는 조용히 뜨겁고 열정이 넘치는 가슴 앞에 목총의 가늠자가 가슴에 닿을 듯 말 듯이 왼 손으로 목총의 중심부를 왼손으로 잡아 올리고 오른손 엄지와 집게손가락 사이에 개머리판 상부를 받쳐들며 그 무게를 버텨야 했다. 그러면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는 절대로 구호를 외쳐서는 안 되며 입술을 꽉 깨물고 침묵해야 한다고 했다. 왜 그런지는 아마 국가를 지탱하는 유신 철학이나 조선시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 궁금증을 호구는 한 번도 설명해 준 적이 없었다. 왜 동일한 충성심을 보여야 하는 대상인 임석상관에 대해서는 소리를 질러야 하고 국기에 대해서는 소리를 내면 안 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국기는 무생물이고 임석 상관은 생명체라 그런 건가? 아님 애국심은 조용히 마음에 새겨야 해서 그렇고 임석상관은 노골적으로 충성심을 표현해 줘야 겨우 아는 돌대가리들이라 그랬던 건지 잘 모르겠다. 

그날도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에 수능도 멀지 않았는데 열병 연습이 끝나고 임석 상관들이 본부석에 막 올라왔고 밴드부는 차이코프스키인지 브람스인지 행진곡 같은 노래를 가끔씩 삑싸리 내면서 불어대고 있었다. 드디어 '국기에 대하여 받들어 총'하는 연대장을 하던 우리 반 반장 녀석의 목소리가 저 앞쪽에서 들려왔다. 고요하고 엄숙한 애국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 순간에 목검이 일제히 하늘을 찌르며 올라가는 '촤~악' 하는 소리만 들려야 하는 순간 어디선가 한 미친놈 같은 ㅅㄲ가 하늘이 찢어져라 "충성"을 외쳐댔다. 소리친 놈은 어쩔 줄 몰라 넋이 나갔고 근처에 있는 애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목도 움직이지 못하고 눈동자만 돌려 애처로운 듯이 그 우렁찬 목소리 소유자에게 연민의 정을 보내고 있을 뿐이었다. 

"어떤 ㄱㅅㄲ야!" 하는 구령대 위에서 허리에 두 팔을 올리고 있던 호구의 침 튀기는 목소리가 온 연병장에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번개처럼 구령대를 박차고 뛰어내려와 지휘봉을 휘두르며 "충성"소리의 여운이 가라앉기도 전에 달려오고 있었다. 그 소리의 진원지까지 둔탁하면서도 성큼성큼 군화에 먼지를 날리며 뛰어 오면서도 호구는 "어떤 ㅅㄲ야~ 나와~!"를 반복해서 외치고 있었다. 주변의 친구들은 한결 같이 "나가지 마~" "나가면 너 뒈져~ㅅㄲ야  나가지 마!" 호구가 외침의 원점인 그라운드 제로 근처에 와 있었다. 천둥 같은 목소리에 굵은 침방울을 튀겨가며 황소 같은 눈을 부라리고 그 한 ㅅㄲ를 찾아내고야 말겠다는 듯이 애들을 밀쳐가며 들이 닥쳐왔다. 

아! 그의 얼굴은 핏빛으로 꺼멓게 죽었고 눈동자는 이미 풀어져서 누가 봐도 그 우렁찬 함성을 질렀던 패기와 기상 있는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주변의 친구들 권고를 따른 걸 바로 후회했지만 자수하기에는 너무 늦었다.  누가 봐도 그가 범인임이 확연히 드러났다. 개같이 목덜미가 잡혀 대열에서 끌려나갔다. 퍼억 퍼억 지휘봉으로 맞으면서 어떤 저항도 하지 못하는 모습이 짠했다. 애국심이 충만했던 그 어린 청년은 남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한 창조적 애국심 때문에 천명이 넘는 사람의 주목을 받았다. 가깝게 지켜보던 친구들은 애틋한 마음으로 마음에서 "우~" 하는 부당함과 동정심을 표현해 줬고, 여러 개의 중대로 편성된 대열 중 사건 현장에서 먼쪽 중대에 속한 저학년 학생들은 현장을 감으로만 느낄 "와~" "조져라!" "호구~호구!"를 외쳐댔다. 그때 마침 임석 상관인 교장과 알랑방구 교사들이 단상으로 올라오고 있었고, 덕분에 호구의 응징은 멈출 수밖에 없었다. 분이 덜 풀린 호구는 잡고 있던 목덜미를 놓고 씩씩 거리며 단상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먼지가 퍼석대는 맨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그 가여운 청년은 민망하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땅에 뒹굴던 목총을 끌어안고 대열로 돌아와 퍼억 퍼억 교련복 아랫도리의 먼지를 털었다. 그날의 열병식은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이 잘 마무리되었다.

"응, 그래 그 ㅂㅅㅅㄲ ㅈㄴ 깨지더라!" 나는 너무 슬픈 모습으로 자신감이 땅에 떨어진 채 한 마디 하고는 밥숟가락으로 저녁밥을 퍼억 퍼억 퍼서 입에 쑤셔 넣고 있었다. 나의 사랑하는 두 살 아래 동생은 암과 싸우다가 55를 못 넘기고 세상을 달리했다. 너무 슬펐고 지금도 슬프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이 계절이 되면 먼저 간 동생이 불현듯 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소심복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