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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기 Apr 13. 2023

소심복수

"아니... 잠깐만... 으악!"

"30년 전 샤오린파 고수 뿌푸초우를 기억하느냐?", "뭔 00소리야? 들어본 적도 없는데...", "내 할아버지다. 천둥 치고 번개 치던 30년 전... 아니 29년 전 그 봄밤에 처절하게 피 토하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지금까지 기다렸다. 잘 가거라...", "아니... 잠깐만... 으악!" 좀 이해하기 어렵지만 대부분의 무협지는 대를 이어가는 복수가 핵심이다. 복수를 위해 복수를 하고 그 복수가 또 다른 복수를 이어가고... 어쨌든 복수의 순간에는 누구나 권선징악에 손뼉 치고 통쾌해 한다. 하지만 뒷맛이 개운치는 않다. '친절한 금자씨'에서 '더 글로리'에서 복수는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복수는 소설, 영화,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이다. 우리의 삶에도 그 강도만 다를 뿐 복수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꼭 다른 사람을 죽여서라도 복수를 해야 할 정도의 피해를 입어서 복수를 강행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도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복수를 한다. 나는 살면서 운이 없던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렇게 큰 복수를 할만한 일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복수해야 할 일을 찾자면 대부분 중학교 때 일어났던 일로 복수를 하고 싶다. 동기생들한테 삥 뜯겼던 일은 별로였지만 학교 교사들에게 아무 이유 없이 얻어터진 데 대해서는 언젠가는 복수할 때가 오겠지 하는 어린 생각을 품어온 적도 있다. 하지만 나이 육십이 넘어서도 그 복수를 구체적으로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마음에서 용서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중학교 3년 담임이었던 그 체육 선생(님자를 붙이지 않는 소심한 복수)은 운동선수 출신이라고 했고 틈만 나면 애들 팰 건수를 만드는 것처럼 보였다. 키는 자그마하고 얼굴은 햇볕에 새까맣게 그을려 그렇지 않아도 왜소했던 목 가늘고 톡 치면 부러질 듯한 팔다리를 하고 있던 그 어린 중학생들에게는 첫인상이 무서운 사람(여기서 한 번 더 소심한 복수)이었다. 툭하면 교무실로 불러들여 다른 선생들 보는 앞에서 내가 이렇게 멋진 선생이야라는 듯이 철제 캐비닛 뒤에서 마대 자루로 퍼억 퍼억 패 댔다. 총각이었던 그(좀 높아진 소심한 복수)는 예쁘장한 여선생님(이 분은 내가 복수할 이유가 없다)을 좋아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아마 그래서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왕성했는지 뻐기고 싶어 애들을 그렇게 패댔나보다.

내가 그때 그의 나이가 되었을 즈음에 알게 된 것이 동물 수컷이 암컷에게 자랑질하는 과정에 중학생들을 제물로 썼을 거라는 확신이다. 지금은 이해가 가지만 왜 꽃을 보낸다던가 멋진 레스토랑에서 밥을 먹자고 청한다던가 하는 다른 방법도 많았을 텐데 그 수컷 성징이 하필이면 애들을 패는 걸로 발전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유언비어가 판치던 시절이었다. 정치도 그랬지만 중학교도 거기서 일도 벗어나지 않았다. 유신이 한창이던 시절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둘이서 그렇고 그렇다는 얘기와 함께... 영화관서 나오는 걸 봤다는 둥.. 심지어는 어느 여관에 들어가는 뒷모습을 봤다는 둥... 그럴듯한 소문이 학생들 사이에 떠돌던 무풍지대 교사권력이 넘실대던 시절이었다.

복수할 일이 생겼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는 그 예쁜 여선생님과 결혼을 했고, 자식도 낳고 남은 교편생활도 교장까지 무탈하게 마쳤다고 했다. 그 여선생님은 내 고향의 한 여고에서 교장까지 마쳤지만 불행하게 암으로 생을 마감하셨다고 했다. 마음이 꽤나 좋지 않았다. 당시 내심 중학생의 순진한 마음에 좋아했던 선생님이었는데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들은 소식에 의하면 이 체육선생이 실버타운에 혼자 살고 있다고 한다. 건강을 그런대로 유지하고 있기는 한데, 하나뿐인 자식과의 틀어져 외롭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소심한 복수의 염력이 작동했던 걸까? 그가 행복하지 않다는 게 마대자루나 빨래 방망이로 맞아 피가 나고 욱신대던 엉덩이와 손찌검에 붉어졌던 얼굴과 얼얼했던 뒷목덜미에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드디어 그 힘세고 거세고 말이 통하지 않고 손마디가 굵었던 그를 가랑거미 같은 겁먹은 표정으로 맥없이 그를 빤히 바라보며 얻어터지던 육체를 가진 중학생이 이겼다. 시간이 그것을 달성하게 해 줬다. 정신적으로는 그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도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자부할 수 있었지만 육체적으로 그를 이겼다는 게 아주 크고 큰 소심한 복수였다. 마음이 편치 않다.

그는 아마 지금도 모를 거라고 생각한다. 육십 명이 넘는 애들이 얼마나 담임 선생님을 무서워했는지를... 마지막 소심한 복수로 그 선생님께 이렇게 말하고 싶다. "000 선생님 자식과 화해하시고 남은 생을 평안히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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