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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햇님 Oct 23. 2019

좋은 사람은 좋고, 싫은 사람은 싫어

남편의 인간관계는 곧은 일직선


‘이만큼 손이 가는 게 또 있을까?’


살림을 할 때마다 절로 드는 생각이다. 밀리면 가장 피곤한 게 청소에 정리정돈이고, 매일 밥 세 끼 챙겨 먹는 것도 나름의 정성과 창의력(?)이 요구된다. 지난주 뵙고 온 시골 시외할머님이 바리바리 싸주신 싱싱한 재료들은 더욱이 그러하다. 보관 및 사용이 편리한 마트 제품과 달리 양이 많고, 흙도 다 털어내지 않은 자연 그 자체의 산물이라서, 손질도 먹는 것도 기한이 있다. 할머님이 싸주신 재료를 만질 때마다 농사란 얼마나 사람을 부지런하게 만드는지 새삼 깨닫는다. 이걸 내가 다 손질하고 있다니.

몇 시간째 껍질을 벗기고 삶아낸 뒤 간장 양념으로 달달 볶아낸 고구마 줄기는 겨우 반찬통 하나에 담겼다. 눈으로만 봐도 다섯 되는 족히 넘을 것 같았던 어마어마한 양의 밤은 벌레 먹은 걸 골라내느라 한참을 물에 헹구며 뒤적였다. 사골 우릴 때나 쓰는 커다란 솥에 넣어 삶아내고 보니 세 식구 먹기에 너무도 많아 경비실 아저씨께 나눠드렸다. 아직 냉장고에는 호박과 무, 가죽 나물 등이 남아있다. 나는 계속 더 부지런해져야 한다. 저 재료들을 다 소진할 때까지!  


할머님의 사랑. 한 솥 삶아둔 밤, 부지런히 먹어야 한다.


정성을 있는 대로 다 쏟아도 기쁨의 순간은 잠시이다. 사람 살지 않는 집이 금세 낡고 허름해지듯이 집 정리도, 요리도 꾸준히 관찰하고 신경을 써야 그나마 가지런하다. 생각해 보면 내게는 사람 관계도 그렇다. 살림하듯이 애지중지해야 하고, 진심을 전하려는 일말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 나와 잘 맞든 아니든, 내게 마음을 돌려주는 상대든 그렇지 않든, 나는 나대로 꾸준히 좋은 사람이고 싶다.




‘친화력 완전 갑!’ ‘너라면 어딜 가도 잘할 거야.’


지인들이 내게 하는 이런 말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먹고 사느라 바빴던 부모님, 일찍부터 운동을 시작해 종종 합숙한다고 집을 비우던 오빠. 나는 홀로, 알아서 야무지게 자라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몇 번인가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고, 여자 셋이서 붙어 다니다가 둘의 싸움에 눈치만 보다가 나만 튕겨져 나온 기억도 어렴풋하다. 그 나이 때는 그런 소소한 일들이 제법 큰 고민을 낳기도 한다. 누구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고단한 날들은 먼지처럼 사라지고, 나는 좋은 게 좋은, 누구에게나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을 스스로 택해 걸어왔던 것도 같다.

남편도 관계를 허투루 맺고 이유 없이 끊어내는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관계가 자신을 망치고 있는지 아닌지는 나보다 더 고민하는 편이다. 그래서 아닌 것 같은 관계에 미련을 두지 않는 쿨한 스타일. 즉, 누군가에게는 ‘싸가지’, 간혹 어떤 이에게는 ‘츤데레’일 테지만, 소수 정예의 몇몇에게는 뒤돌아보면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언제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배려해주는 ‘단 한 사람’으로 기억될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관계를 관리하는 동안, 많이도 다투었다. 남편 말로는, 내 인간관계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흩어져 있어서, 귀한지 어쩐지 생각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난무해 보였다고 한다. 나는 반대로 남편의 관계가 지나치게 협소해 보였다. 특히 사회적 관계는 영 신경을 쓰지 않는 사람처럼 보여 늘 답답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 나는 관계에 대해 여느 때보다 고민이 많았다. 결혼하면서 한 단위의 가정을 형성한 나는 남편에게 책임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기존에 맺어오던 관계에 소홀해지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오랜 솔로 시절, 나와 함께 쏘다녀준 친구들, 편집자로 일하며 인연을 맺은 작가 및 예술가들, 회사 동료와 거래처 사람들까지. 이런저런 모임과 약속이 많았다. 더도 덜도 없이 똑같이 잘하려던 내 마음이 남편에게는 더없이 부족했던 것 같다. 남편 기준으로는 다른 관계에 비할 수조차 없는 관계가 ‘부부’였을 테니 말이다.

에너지를 밖으로 쏟는 게 내게 지속적인 스트레스였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나는 분위기를 풀어주거나 상대의 말을 들어주는 쪽이었고, 정작 내 얘기를 토로할 친구들은 순위가 밀려 오히려 짧고 급하게 만나고 헤어져야 했다. 관계에 무기력이 찾아온 가장 큰 원인은 나름 애지중지하던 상대와 사이가 멀어지면서였다. 일로 맺은 관계였어도 사회 초년생 때 만나서 오랜 시간 일, 취미, 앞으로의 인생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이었다. 각자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외주 일을 부탁했다가 그 사달이 났다. 나는 외주를 요청하는 사람 입장에서 의견을 말했을 뿐인데, 상대는 사적으로 기분이 상해서 정색을 했다.

돌아온 말들로 나도 상처를 받았다. 상대방의 태도로 한 번 마음을 다치면, 그다음부터는 그 사람의 말 한마디, 문자 한 줄에도 여러 가지 고민을 하게 된다. 내 입장에서 느끼는 그이의 태도로 볼 때, 나는 ‘있으면 좋고, 없어도 크게 아쉬울 게 없는’ 딱 그 정도의 관계였다. 내가 이 만남을 유지하려 하지 않으니 상대도 감감소식이었다. 서서히 관계는 서먹해졌다.


“나는 그에게 동료도 뭣도 아니었나 봐. 그 한마디로 이렇게 연락이 끊기다니.”

“가까이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한테나 잘해. 너 인생 짧다? 중요한 사람들 한 번 더 보고, 챙기기에도 시간이 모자라요.”


남편은 애매한 사회적 관계망(사실 그다지 많지는 않다)에서 펼쳐지는 경조사에는 주로 돈만 부친다. 꼭 참석하는 자리가 있다면 장례식. 스무 살에 어머님을 잃어서 인지 누군가를 애도하는 자리에는 되도록 찾아가 인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나에게는 모두가 친구 혹은 친한 사람인데, 남편은 그렇지 않다. 대학 동기는 동기, 회사 동료는 동료, 동아리 선배는 선배, 그 외에는 주로 아는 사람, 어쩌다 알게 된 사람 등으로 구분이 명확하다. 연애 때부터 지금껏 남편에게 소개받은 친구는 ‘앙, 또, 붕’이라 부르는 세 명의 어릴 적 친구들과 대학 동기 셋이 전부이다. 정말 신기한 것은 이 몇 안 되는 친구들이 때마다 우리 삶을 들여다봐주고 응원과 위로를 전하는 것은 물론, 때로는 물질적 지원에도 아낌이 없다.


우정과 사랑과 감사. 사진을 다 올릴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나는 그동안 남편에게 이름도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소개했다. 후배, 동기, 동료, 선배 심지어 거래처 디자이너 실장님까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면 무조건 소개부터 하고 본다. 부부가 되고 보니 부부끼리 만나 노는 것도 재미있다 싶은데, 남편은 불편함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라서, 선택적 ‘낄끼빠빠’, 즉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까다로운 남자다. 대체로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과는 어색하고 쑥스러워도 같이 만나길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내게 불량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라면, 미안하게도 평생 부부 동반 모임은 불가능할 것이다. 내가 이렇게 비싼 남자와 살고 있다.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준비에 이어 본격적인 일본 생활을 하는 동안, 실은 나도 관계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소원해진다더니 꼭 그렇게 일단락된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들과 연락이 닿아 고마움을 느낀 적도 있다. 입덧이 잠잠해질 무렵, 느닷없이 주소를 물어 밑반찬과 김치를 보내준 친구도 있고, 출산을 하자 득달같이 아기 장난감이나 선물을 척척 보내온 친구도 있다. 철이 덜 든 것처럼 보일 법도 한데 우리 부부의 모든 날들을 응원해준 사람들도 있었다. 여느 외국보다 가깝지만 선뜻 오기는 어려운 거리를 큰맘먹고 날아와 밥을 사주고 간 지인들도 잊지 않으려 한다.

남편이 볼 때 내 관계는 여전히 얽히고설킨 복잡한 거미줄 같을 것이다. 이전보다는 조금 정돈되어 보이려나? 적어도 이제는 먼저 챙겨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정도는 안다. 아기가 태어나고는 우선순위를 이 꼬맹이가 거의 차지해버렸지만, 아이 돌봄으로 마음이 지칠 때는 여지없이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그들도 마음이 가라앉는 순간, 나를 떠올릴 거라 의심하지 않으며 소식을 넣는다.


"실수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제대로 하도록 해.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 제대로 마음을 담는 거야."
_ 《매일매일 좋은 날 日日最好日》 중에서


일일호시일. 매일이 좋은 날이라 생각하며 종종 가던 교토 떡집. 좁쌀떡과 함께 말차가 나온다.


다도 생활 40년간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은 모리시타 노리코 씨의 글이다. 영화를 먼저 보고 영상이 주는 고즈넉함에 반해서 책으로도 읽었다. 그녀의 스승은 차를 내리는 일련의 동작 하나하나에 마음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련에 가까운 그 동작들을 익혀가며 노리코 씨는 가족과 여타 관계들, 자신의 꿈과 일, 상처와 치유, 웃음과 행복 등을 이야기한다.

숙성한 찻잎을 맷돌로 곱게 간 뒤 뜨끈한 물을 붓고 가루를 갤 때 생겨나는 미묘한 변화들. 진하고 탁했던 가루는 점점 봄을 닮은 연둣빛으로 변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는 팔 동작의 기울기, 차선을 움직이는 손놀림, 곧으면서도 힘을 뺀 자세 같은 것들에 주의한다.

나처럼 다양한 관계를 즐기는 것도, 남편처럼 협소한 관계를 탐험하는 것도 무엇이 옳고 그르다 정의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다만 보다 중요한 관계에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남편의 말에는 나도 공감을 하게 되었다. 찻잎 가루에 물을 붓고 저으면 잠시 동안 전분가루 뭉친 듯 끈기 있는 상태가 이어진다. 그것들이 곱게 풀어질 때까지 물 양을 조절하며 개면 그제야 미세한 거품이 균일하게 퍼진 고운 빛깔의 차 한 잔이 나온다.

마음을 쏟아 차를 내는 다도의 과정처럼 소중한 사람에게 한 번 더 마음을 표현하는 게 결국 관계일 거라는 생각을 한다. 남편에게 이런 당부를 하고 싶은 밤이다. 거미줄처럼 복잡한 내 관계들을 하찮게 여기지 말아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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