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햇님 Nov 17. 2019

“왜 맨날 나만 나쁜 놈이야?”

드라마 속 로맨틱한 남자의 말 못 할 고충

좋다. 비도 오고 아침에 통화도 하고, 좀 있으면 우리 만나고.

목소리를 못 듣고 자서 그런지 잠을 설쳤어. 반짝이 식사 잘 못 챙겨 먹어서 걱정이 많이 돼.

- 2012년 연애할 때


마누울~ 정말 오랜만에 편지 쓴다. 이게 뭐게(백화점에서나 살 수 있는 매니큐어였다)?

이런 선물, 한동안 못해 줄 것 같아서. 지치거나 힘들 때, 기분 좋게 발라요.

내가 꼭 행복하게 해줄게. 지금도 행복하지만. 그렇지?

- 2014년 유학을 결정하고서


연애 때부터 유학을 떠나기 전까지 남편은 내게 종종 편지를 썼다. 오늘은 로맨틱했던 남편의 과거 모습을 떠올리려고 내 보물상자(소중한 사람들에게 받은 편지를 모아두는 목적)를 뒤졌다. 지금 봐도 흐뭇하게 미소가 번지는 편지 둘을 골라 슬쩍 옮겨 적는다. 사실 연애 시절, 남편의 적극적인 표현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남편은 늘 직진이었고, 나는 그 마음을 막아서기 바빴다. 조금만 천천히, 뜨거운 거 말고 따뜻한 게 좋다고 여러 번 얘길 했던 것도 같다.




“저기, 그러니까 저는 레모나가 좋거든요. 수험생 때 가끔 먹던 알약으로 된 비타민은 물 없이 삼킬 수가 없잖아요. 그건 너무 자극적이라 싫어요.”


남편은 시무룩해졌지만 노력하겠다고 했다. 이제 와서 새삼 그때를 떠올리며 나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너 정말 싫었어?”

- 아니. 실은 심장이 터져버리는 줄 알았어.

“근데 왜 그렇게 말했어?”

- 그냥… 너무 급하게 왔다가 뒤꽁무니 빼면 어떡해. 뒷모습을 보는 건 싫어.


드라마나 영화 속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처럼 남편은 나를 향한 설렘을 감추지 않았고, 나를 챙기고 싶은 자신의 마음을 귀찮아하지도 않았다. 찬물을 끼얹는 건 언제나 나였다. 그래서인지 요즘, 남편은 내게 든든한 보호자이긴 해도 섬세하고 다정한 남자친구는 아니다. 그래도 나는 보호자라도 있지, 남편의 처지는 골골대는 마누라와 천방지축 아들내미를 태운 돛단배로 망망대해를 가로지르는 어부 격이라서 말도 못 하게 고단해 보인다.


이번 주 월요일, 나는 거의 5년 만에 출근이란 걸 했다. 남편은 본격적으로 ‘집사람’이 되었고, 주에 나흘은 프리랜서 업무를 위해 애를 데리고 거래처로 간다. 회사에서는 아기가 울면 업고 달래며 일 혹은 회의를 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아침에 싸간 도시락 뚜껑을 열어 아이 입에 밥도 퍼 넣는다. 대여섯 시간쯤 업무를 보고 집에 돌아오면 또 아이 저녁을 먹이고 씻기고 어질러진 집을 정리한다. 안쓰러운 마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어서 나는 나대로 ‘퇴근하면 빨리 돌아가서 남편 쉬게 해줘야지’ 마음도 먹는다.


아빠 직장 따라가서 휘젖고 다니는 녀석. 이런 걸 이해해주는 회사라니 정말 최고입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종이 체력인 나는 퇴근해서도 남편에게 별 도움을 주지 못했다. 출근 첫날, 팀 사람들과 점심 회식을 하고는 그대로 얹혀서 오후 내내 화장실을 들락거렸기 때문이다. 몇 차례 속엣것을 다 토해내고 흐느적거리며 집에 돌아온 나. 그 여파로 이번 주 내내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나는 일하는 게 즐겁고,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하지만,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충분히 시간을 들일 것. 친해지는 데도, 회사 분위기에 적응하는 데도 남보다 곱절의 시간이 드는 게 나란 사람임을 잠시 잊고 지냈다. 고약하게도 주변에서는 아무도 알 수 없고, 때로는 내 의식조차 인식을 못하는데, 정직한 몸은 그 긴장을 생생히 기억했다가 이런 결과를 낸다.

남편의 가족과 처음 식사를 했을 때에도, 결혼하고 맞이한 첫 명절날에도 나는 먹은 음식이 위장 한구석에 팍 걸려서 며칠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어느 날부터 남편은 시부모님이 내게 음식 권유하는 걸 나무랐다.


부모님과 같이 식사하는 자리에서,

“그만 주세요. 반짝이 이거 먹으면 집에 가서 체해서 고생해요.”

고구마전을 비롯한 부침개를 챙겨주시려던 어머님께,

“기름진 거 싸주지 마세요. 반짝이 고구마도 별로 안 좋아해요.”

심지어 며칠 전, 밥 사주신다고 나오라던 시부모님께,

“그날 미세먼지 심하대요. 반짝이 비염 있어서 안 돼요.”


스타카토와 악센트가 버무려진 남편의 화법은 상대의 말문을 막는 특징이 있다. 아니, 그 다정하고 부드럽던 콘트라베이스 같던 남자는 어디 갔어? 남편의 말투는 나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특히 체력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을 때, 이제껏 내 부모에게 듣고 자란 잔소리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따가운 말들을 듣는다.

남편이 내게 줬던 편지를 주섬주섬 읽으며 나는 조금 반성했다. ‘곰보다 여우’라더니 섬세한 남자가 곰 같은 날 만나서 성깔만 사나워졌구나. 그러면서 부부싸움의 끝에 남편이 항상 내뱉던 말도 번뜩 생각이 났다.


“왜 맨날 나만 나쁜 놈이야? 아주 천하의 쓰레기지, 내가!”


남편은 내가 무리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왔다가 컨디션이 무너졌을 때, 체력 생각하지 않고 늦게 잠이 든 다음날 주로 화를 낸다(만약 이 글을 올리고, 내일 아침 재채기와 콧물이 동반된다면 나는 또 혼날 것이다). 대체로 우유부단하고 거절 못하는 내 성격 때문에 다투게 될 때가 많은 셈인데, 그런 남편의 마음이 결혼 6년 만에 이해가 되다니. ‘너 아프면 나만 손해야!’라는 말이 그렇게도 서운했는데, 알고 보니 다 맞는 말이었다.


신혼 초, 저 호숫가에서 남편과 오리배를 탔었다. 그때도 열심히 홀로 페달을 밟았던 남편. 수고가 많아요.




고작 일주일 일했을 뿐인데, 교토에서 남편이 홀로 벌이를 하고 내가 살림을 도맡아 할 때의 일들이 무작위로 스쳤다. 남편이 퇴근길에 잔뜩 장을 봐오던 모습, 저녁을 먹고 아이를 씻기던 모습, 아침마다 분주히 분리수거를 하던 모습. 나도 살림을 안 해본 게 아니니, 집과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수고로운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직장에 다니게 되어도 집에 돌아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빈자리를 메울 각오를 하고 있었다.

현실은 사뭇 달랐다. 아직 적응이 덜 되어 그런 건지도 모르지만, 아이는 하루 종일 보이지도 않던 엄마가 돌아오자 잠까지 내쫓으며 나와 놀려고 했고, 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놀다가 재우는 두세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고단함을 느꼈다. 쓰레기 분리수거, 설거지, 아이 목욕 같은 것들은 내 체력으로 언감생심 넘볼 수도 없는 영역이었다.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가 떠올랐다. 노인이 거친 파도와 비바람 속에서 사투를 버리던 장면을 머릿속에 그렸다. 남편은 배 안으로 차오르는 물을 바삐 퍼내는 노인으로 둔갑했고, 나와 아기는 그 위태로운 배 한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다. 상상만으로도 정말 도움이 안 되는 조합이다.

남편 말대로 나는 나를 너무 모르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잘할 수 있다고, 내가 하겠다고 촐랑거리는데, 사실은 몸을 사려야 하는, 그런 사람인 건 아닐까? 이제 나란 사람은 남편의 잔소리 포인트를 좀 줄일 수 있도록 무리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다시 나긋나긋한 과거의 그 남자로 돌아올 가능성은 크게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남편과 함께 하려면 적어도 스트레스는 주지 말아야겠기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중에 ‘이상한 놈(좋은 놈은 또 매력이 없어요)’ 정도로 남편의 포지션을 정해 본다. 안 하던 말을 하려니 쑥스럽기도 하지만, 남편에게는 전달되지 않을(남편은 혹시라도 상처 받을까 봐 절대 내 글을 읽지 않는다) 짧은 메시지도 남긴다.


“여보, 고마워. 경력 단절됐다고 애타 하는 오빠를 보니, 82년생 김지영이 아니라 ‘83년생 남편’이구나 싶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하며, 계속 행복하자. 브로맨스 같은 우리 사이, 영원하라!”




작가의 이전글 주식회사 남편, 직원은 나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