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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햇님 Sep 12. 2020

역지사지

아홉 살의 나를 떠올리며 세 살 아들 이해하기

코로나 때문에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부터 아이 어린이집 등원을 함께하기로 했다. 그전에는 20분 정도 내가 먼저 나가면 남은 시간 동안 남편이 끙끙거리며 아이를 씻기고 입혀 아이 투정을 다 받아주며 집을 나섰다. 무조건 “아니, 싫어”를 입에 달고 사는 세 살 아이는 씻는다고 했다가 안 씻는다고 했다가, 자기가 양치한다고 칫솔을 가져가 장난만 치곤 했다가, 문을 열고 나서서는 어린이집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곤 했다. 아무튼 자기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을 다 실천했다.

어느 날 아침, “오늘은 엄마랑 같이 어린이집 갈까?” 했더니 10분 만에 준비를 다 마치고 “나 다했어, 가자~”라고 하며 스스로 운동화를 신었다. 요즘 그래서 아침에 세 가족이 짧은 산책을 하며 어린이집으로 향하는데, 그새 요령이 생긴 아이가 가장 자주 하는 말, “오늘 어린이집 안 가!” (참을 인, 참을 인...)

그럴 때는 어린이집 근처 벤치에 앉아 같이 요구르트를 나눠마신 뒤 헤어진다. 그래도 남편의 심적 부담, 나의 미안함, 아이의 서운함 같은 것들이 조금씩 희석되어 묘하게 균형을 맞춰가니 다행은 다행이다.

물론 이건 내 마음에 일말의 여유가 있을 때나 가능한 이야기다. 아이의 투정을 온전히 받아준 날에야 만끽할 수 있는 평화로운 아침 장면인 것. 다그치고 혼내며 어린이집까지 끌고 간 날에는 꼬맹이의 눈물바람으로 하루를 시작해 출근 지하철 안에서 내내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참지 못하는 어른이 되었나’를 곱씹으며 후회의 일기를 적어야 한다.


평화로운 아침이었던 날, 아침 하늘에 뜬 달을 발견하고 기뻐했다.


아이와 실랑이를 할 때마다 내가 주의하려 하는 부분은,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인권이다. 내가 아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대하고 있는지를 물으면 어른의 행동 수정이 비교적 빨리 이뤄진다. 내 뜻대로 아이를 이끌고 가려다가도 ‘아차’ 하면서 잠깐 숨을 고른 뒤 아이와 대화를 시도하는 식인데, 그러면서 은근히 허황된 기대를 한다. 아이가 최대한 빨리 울부짖고 떼를 쓰는 이 시기를 뛰어넘어 고등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거다. 허허, 거 참 욕심 많은 엄말세.

할머니가 된 엄마가 지금의 내 나이일 때 나는 겨우 아홉 살 코흘리개였다. 방학 때였나, 내가 우겨서였던가, 동네 목욕탕에 처음으로 혼자 다녀온 날이었다. 수건 물기를 하나도 짜지 않고 가방에 넣은 채 걸어와 엄마한테 한소리 들었던 기억이 난다. 수건에서 물이 흠뻑 빠져나와 가방 안을 찰랑찰랑 적셨는데, 그래서 걸어오는 내내 물이 발 뒤꿈치 쪽으로 뚝뚝 흘렀을 텐데, 이걸 왜 짤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들고 왔냐는 꾸짖음이었다. 굼뜨고 자주 멍 때렸던 나는 아마 바지런한 엄마를 자주 답답하게 했나 보다. 정작 나는 혼나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아니,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아마 내가 아이를 다그치거나 한숨을 내쉴 때도 비슷한 상황이 많을 것 같다. 아이는 그저 즐거워서, 좋아서, 마음이 시켜서 하는 행동일 테지만 어른(의 탈을 쓴)인 나는 그 아이의 작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해 답답함을 느낄 뿐이다. 그렇다면 고등적인 대화와 같은 헛된 기대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충족될 수 없다는 말이 되나? 아휴, 큰일이네.

견소왈명, 수유왈강(見小日明, 守柔曰強)이라 했다. 작고 사소한 것을 볼 수 있는 밝음, 부드러움을 지킬 수 있는 강함을 가지고 있는 게 나란 사람이면 좋겠지만 그 경지는 여전히 아득하기만 하다. 아이를 키우며 참 많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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