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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햇님 Aug 11. 2020

거창한 나날

 매일 모순을 실천한다


책상 앞에 앉아 30분 넘게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 노트북을 열었다. 이게 다 공상과 걱정 때문이다. 하고 싶은 게 많고 그에 비해 늘 시간이 부족한 나는 목표를 세우고 나면 그걸 지키려다가 금세 에너지를 잃는다.

최근 내 새로운 계획은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 합격이다. 처음에는 그저 공부한 것들이 뇌에서 사라지는 게 아까워 다시 되살리자는 취지였는데, 언제나처럼 공부는 계획이 되고 또 목표가 되어 매일 일정 시간에 내 마음을 초조하게 하는 무언가로 변모했다. 정말 이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 네이버영화 <코쿠리코 언덕에서>

균형 있는 삶을 동경한다. 즐겁게 일하고 몸에 좋은 것들을 행하고 지혜와 지식에 대한 갈망을 멈추지 않는 것. 어찌 보면 소박한 것 같지만 삶에서 이 모든 것들을 두루 챙기기란 쉽지 않다. 때로는 가장 가까운 관계, 삶과 직결되는 밥벌이가 내가 그토록 원하는 ‘균형’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 그 견고함을 지켜가는 과정이 내게 이타심을 요구하게 될 거라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그 이타심은 시간과 돈, 음식을 나눔으로써 내 사람들과 추억, 감정을 공유하게 한다. 그래서 가끔 가족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희석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빛깔을 얻는 중인지 모호할 때가 있다.


한국에 돌아와 취업을 하고 회사 생활에 적응하는 데 6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이 걸렸다. 남들은 새로 이직하고도 3개월이면 적응을 마친다는데, 사실 나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업무에 있어서 허둥대거나 실수를 연발한다는 게 아니라(마치 변명 같다) 내 마음이 그 정도로 길게 부대낀다는 뜻이다. 새로운 환경과 사람들을 받아들이기까지 꽤나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서. ㅠ

그러는 사이 근육이 뻣뻣이 굳고 자주 두통을 느꼈다. 밤에 맥주를 찾는 일이 늘었고 거북목 현상도 심해졌다. 건강을 되찾고 싶었고 내 삶의 비타민인 ‘딴짓’이 그리웠다. 갈증이 여러 갈래로 나뉠 때, 나는 더 조심했어야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엄밀히 따져봤어야 했는데.


출퇴근 시간 책 읽기와 더불어 일본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무려 일본어로 국제 뉴스 읽기. 필라테스를 등록해 평일 점심 시간에 두 번 정도 운동을 한다. 언제나처럼 기획을 하고 편집을 한다. 동양고전 읽기에 도전했다. 출퇴근 시간, 한두 정거장 먼저 내려 20~30분 걸어보기로 했다. 가을에 들을 만한 기획이나 마케팅 관련 강의가 없는지 기웃거린다. 아직 다 안 적었는데 이미 속으로 ‘미쳤네, 미쳤어’를 연발하고 있다.

가끔은 일찍 출근해 회사 근처를 배회한다. 카페의 한적함이 좋다.

근데 더 큰 스트레스는 거창한 계획을 따라가지 못하는 내 느슨한 실천이다. 나더러 열정적이라는 속 모르는 친구들에게는 ‘쉬엄쉬엄 하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속으로는 제대로, 완벽하게 소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나는 나이면서 엄마이고 아내이다. 모든 일을 무리해서라도 다 해치우고야 마는 슈퍼우먼이 되고 싶지는 않다. 원래도 나는 완벽과는 거리가 있는 어딘가 부족한 사람이고, 어떨 때는 한량 같은 내 모습에 스스로 취해 흡족한 웃음을 짓기도 한다. 그러니까 나는 매일 모순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때때로 그런 내가 좋다. 만족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한다니 정말 앞뒤가 안 맞는 사람이네. 답답한 마음을 맥주 한 캔과 글로 달래 본다. 오늘은 조급증을 내려놓고 일찍 좀 자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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