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초 작업, 입으로 다했다
아침 7시가 되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뒷마당에 있는 풀들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마음을 다지고 잔 다음 날이었다. 여름 내내 놀라운 번식력을 보여준 풀들은 이제 뒤쪽 베란다 창을 찌를 정도로 무성해졌고, 거미들은 부지런히 오가며 풀과 풀 사이를 이어 거대한 집을 지었다. 좁고 긴 직사각형 형태의 뒤뜰은 거의 정글 수준이 되었지만, 이 녀석들을 정리하려면 가장 먼저 거미가 지은 집들을 부스고 그 틈을 뚫고 들어가야만 한다.
마당이나 뜰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사실 그 방법을 배워본 적은 없다. 그런데 무서운 속도로 집을 둘러싸는 푸른 잎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구석이 불안했다. ‘곧 잡아먹히고 말 거야. 내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게 분명해.’ 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은 이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웃집 할머니, 할아버지는 항상 바빠 보이지만 요즘은 밭 일부를 정리하고 땅을 고른 뒤 대파와 무, 배추 등 새로운 작물을 심느라 유난히 더 분주하다.
‘좋아, 일단 뒤뜰에 있는 저 풀들부터 다 뽑아내자.’ 모기에게 뜯기지 않으려 복장부터 점검했다. 긴 바지와 긴 팔 셔츠, 등산화와 목장갑, 등산용 모자를 푹 눌러쓰고 제초용 긴 가위를 들었다. 집 옆쪽 뜰부터 시작해 뒤뜰까지 말끔히 정리하는 게 오늘 오전의 목표다.
“이게 뭐유? 잘라버려어~”
있으나 마나 한, 낮은 담을 끼고 사는 옆집 할머님이 며칠 전 우리 집 매실나무 뒤로 높이 자란 잡초를 보고 하신 말이다. 그래서 매실나무 주변 잡초부터 시작해 뒤뜰 입구를 가로막은 이름 모를 작물들을 뜯어 헤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 시간이 흐르자 뜰은 얼추 정리가 되었다. 뒤뜰 한쪽 구석만을 남기고 거의 모든 풀을 뽑아내 가지런히 쌓았다. 그러는 동안 새로이 알게 된 사실도 있다. 뒤뜰은 완벽한 음지라 생각했는데, 풀을 걷어내니 실은 꽤 햇볕이 드는 곳이었다. 그리고 또 알았다. 우리 집 뒤뜰은 머위와 블루베리, 작은 감나무를 제외하면 다 잡초인 줄 알았는데, 완전 알짜배기 땅이었다. 울창해진 작은 숲에 영양을 뺏겨 올여름에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한 무화과나무가 있었고, 굵은 풀줄기 아래를 끄집어 당기니 감자가 줄줄이 따라 올라왔다. 옆집 할머니 말로는 어떤 풀은 약초라고 했다.
동이 트고 얼마 안 되고부터 계속 마당 정리하는 소리가 들려서인지 옆집 할머니가 나보다 더 신이 나셨다.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누군가 일하는 소리가 들리면 이상하게 고독감이 줄어든다. 나는 그저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한 인간이 되고, 땅과 나무가 내뿜는 축축한 풀 비린내는 언제까지고 그리워했던 낙원의 냄새처럼 그윽하게 느껴진다.
할머니는 대파 구근을 두 줌 정도 건네며 뜰에 심어 보라고 하셨다. 블루베리 옆 비교적 볕이 잘 드는 곳으로 자리를 정했다. 흙 속으로 파 구근을 쏘옥 눌러 넣으며 왠지 모를 쾌감을 느꼈다. ‘앞으로 이 검지로 씨앗이나 구근을 꾸욱 누를 일이 더 많아지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나머지 땅에는 무얼 했냐, 가을 야생화 씨앗을 흩뿌렸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조금은 사늘하게 느껴질 무렵, 뒤뜰에는 야생화가 필 것이다. 따끈한 핸드 드립 커피를 내린 아침, 나는 뒤쪽 베란다에 앉아 그 꽃들을 바라보며 차가운 가을의 기분을 몸소 기억하려 한다. 꽃들아, 대파야 무사히 씨앗을 틔어 내게로 와주렴.
이 모든 건 거짓이다. 나는 뒤뜰을 정리한 적이 없다(남편의 제초 작업을 구경하며 상상했을 뿐). 땅을 고르기는커녕 앞마당 정리도 제대로 못 해 남편에게 자주 잔소리를 듣는 입장이다. 장미 잎, 해충이 갉아먹지 않게 자주 좀 들여다보라고, 해바라기 쓰러졌으니 좀 세워 주라고, 옆 마당에 있는 남천은 물이 부족하지 않게 신경 써야 한다고… 이상하게 내가 움직이려 마음먹을 때는 한발 늦은 순간이다.
무더운 여름날, 남편이 내게 준 숙제는 단 하나였다. 오후 4~5시경 앞마당과 옆 마당 식물에 물을 줄 것. 곧이곧대로 시키는 일을 아주 잘하는 나는 비 오는 날이 아니고서는 하루도 빼먹지 않고 물을 줬다. 그리고 비가 내리는 날, 물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입이 귀에 걸렸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식물들은 물 주는 것만으로는 무사하지 않았다. 잎 아랫면을 자주 들춰보지 않으면 금세 잎벌레가 자리를 펴고 앉았다. 깻잎은 따기도 전에 구멍이 숭숭 뚫렸고 장미 잎도 마찬가지였다. 비가 너무 많이 온 이후에는 고추가 물렀고, 부추꽃을 피운 부추는 줄기가 억세서 먹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골 마당 있는 집에 살면서 나는 깨달았다. 나는 살림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우습게도 나는 내가 요리와 청소를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40년 가까이 착각하고 살았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개 있고, 집안을 나름 정돈하며 살 줄 아는 그저 보통 사람일 뿐이었는데 것도 모르고. 그런데도 남편이 마당을 가꾸는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있노라면 땅을 고르며 땀을 흘리는 그의 평온한 속내가 들리는 것만 같다. 식물을 만지며 품는 남편의 소박한 기대와 소망, 삶의 터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모두 다 땅속으로 쑤욱 밀어 넣는 듯한 경쾌함 같은 것들.
그리고는 이내 착각에 빠져든다. 올가을에는 나도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잡초는 가을부터 정말 누구보다 잘 정리할 수 있을 거라고, 그리고 곧 해충 박사가 되고 말 거라고. 지역 평생학습관에서 정원 관리사 수강생을 모집한다고 한다. 실은 나, 그런 거라도 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민하는 사이, 하루 만에 마감). 하루 중 이 집에 가장 오래 머무는 사람은 남편이 아니라 나인데, 앞으로 내가 이 공간을 잘 가꿔갈 수 있을까?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