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년간 살게 된 Vaasa는 인구 6만 정도의 작은 도시인데, 방금 구글에서 찾아보니 내가 교환학생에 갔던 2007년과 인구수는 별반 달라진 게 없는 듯하다.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 다음으로 큰 도시는 탐페레, 투르크 정도가 있고, 바사는 5~6위 정도의 도시라고 알고 있었는데 조금 변화가 있는지 아니면 나의 정보에 오류가 있었던지 지금은 인구 수로는 10위 정도이다.
도시 중앙에 광장 같은 마켓 스퀘어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호수를 건너면 바아사 유니버시티가 있고, 거기서 좀 더 올라가면 내가 다닌 어플라이드 사이언스 유니버시티 (편하게 Polytechnic이라고 했었다)가 있었다. 마켓 광장 근처에 기차역이 있는데, 그 바로 근처에 내가 살던 아파트가 있어 다른 도시를 오갈 때 집이 가까워 좋았던 기억이 난다. 이 글을 쓰고 있자니 학교에 오가던 길과 그 한적한 분위기가 생생히 떠오른다.
아파트는 학교에서 주선해 준 공동 주거 형태였기 때문에, 룸메이트를 내가 고르는 시스템이 아니라 배정된 친구들과 한 아파트에서 주방과 거실을 공동으로 사용하고 각자 방을 썼다. 복층형 아파트였는데 나는 1층에 있는 방에 배정되어 거실과 주방, 1층 화장실까지 혼자 독채를 쓰는 느낌이고 독일에서 온 친구랑 폴란드에서 온 친구가 2층 방과 2층 화장실을 공유하는 구조라 처음엔 너무 행운이라 생각했지만, 곧 두 친구가 번갈아 친구들을 데려와 파티를 할 때마다 밖엘 나가지 못하고 화장실 갈 때마다 눈치가 보여 고역이었던 기억도 남아있다.
교환학생에 가서 다른 나라에서 온 모르는 아이들과 주거를 공유하는 경험은 많은 인사이트와 충격을 내게 주었는데, 그중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 하나는 독일 친구의 설거지 방식이었다. 설거지를 물에 불려놓고 세제를 수세미에 묻혀 거품을 내서 그릇을 닦고 그 거품을 깨끗이 씻어 건조대에 말리는 우리 설거지 방식과는 다르게, 독일 친구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 친구여) 싱크대를 고무마개로 막아 물을 받고, 거기에 세제를 풀어 거품을 낸 다음 그 물에 그릇들을 담가놓고 불린 후에 그릇을 건조대에 걸쳐놓고 물기를 마른행주로 닦아서 썼다. 응?! 뭔가 빠진 것 아니냐고? 그릇을 안 헹구고 그냥 이렇게 건져놓냐 물어보니 원래 자기네는 이렇게 한단다. 세제를 먹으면 건강에 안 좋지 않겠냐 하니 원래 이런 용도로 만든 건데 그럴 리가 있겠냐 한다. 그리고 자기네는 물에 세제를 희석해서 쓰니까 닦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가끔 친구가 닦아 둔 그릇에는 작은 음식 찌꺼기도 붙어있고 해서 처음엔 너무 이해가 안 되었던 부분이었다. 교환학생 와서 서로 잠시 거쳐가는 살림이다 보니 그릇과 수저가 많지 않아 친구들을 부르거나 하면 룸메이트 그릇과 수저를 사용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미리 설거지를 박박 하고 룸메이트가 내 그릇을 썼던 적이 있으면 쓰기 전에 다시 박박 닦아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물이 부족하고 수돗물에 석회 성분이 있는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라 그들의 생활방식에 맞춰 적응된 설거지 방식일 거다. 처음에는 나와는 다르거나 처음 본 일 들이 적지 않은 충격이었던 적이 많았는데, 지내다 보니 아 저 친구는 그렇게 하는구나, 저 나라에선 저게 보통이구나 하는 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주가 넓어져갔다.
내가 핀란드에 갔던 당시는 지금보다 유로 환율이 훨씬 비쌀 때라 1년간 쓰려고 용돈으로 가져간 천만 원이 금세 사라졌다. 이불과 월동 장비 (학교에 가기 위해 방수 등산화와 방수 고어텍스 점퍼를 샀다)를 구매하다 보니 몇 십만 원씩 쓰는 건 일도 아니었다. 핀란드 물가는 식재료는 한국보다 싼데 밖에서 외식을 하는 건 너무 비쌌고, 집세와 휴대폰 비용, 자잘한 생활비 등 절약하려고 해도 한 달에 100만 원은 너무 적게 잡고 온 것이었다. 이렇게 가다간 6개월도 못 가서 또 엄마에게 손을 벌려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친구들은 주말이나 연휴에 저가항공을 타고 인근 도시나 옆 나라에 여행을 가자고 했고, 나는 그럴 마음도 굴뚝이었지만 무턱대고 돈을 써대기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도 들었었다. 그러다 학교 교환학생 학생지원처에서 한국어를 할 수 있는 인턴을 찾는 회사가 있어 학교에 있는 한국 학생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학교를 다니면서 일 할 수 있는 기회인데 관심이 있냐고 해서 뒤돌아 볼 것 없이 관심이 있다고 했다. 알고 보니 바르질라라는 핀란드에서 꽤나 큰 대기업인데 조선업을 하는 회사라 한국과의 거래가 많았고, 한국과의 거래 송장이 작은 벤더들 사이에서는 한국어로 된 자료를 첨부하는 경우가 많아 그 나라 언어를 하는 사람이 필요한 거였다. 학교에서 추천한 한국 교환학생은 두 명, 바아사 대학에 있는 한국 학생까지 세 명인가 면접을 봤을 거다. 그중에서 다행히 내가 뽑히게 되어서 일주일에 20시간씩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핀란드에서 교환학생 신분으로 일을 하려면 주 20시간까지만 일을 할 수 있게 되어있고, 기업에서도 근무 시간이나 근로 조건을 철저히 준수해야 해서 학교 생활과 병행할 수 있는 워라벨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거지만 한국의 근로조건과 비교하면 핀란드는 정말 앞서있는 선진국이었는데, 나는 회사라는 곳에 소속되어 본 것이 이때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원래 회사생활은 이런 거구나 했던 기억도 난다.
다음번에는 바르질라에서 일했던 소중한 경험에 대해 좀 더 자세하게 이어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