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Mar 23. 2021

영화에세이2- 길을 잃어버린 이유

로스트 인 파리

 

 

        살다가 길을 잃어버렸다 싶을 때 보면 좋은 영화      


영화 로스트 인 파리(Lost in Paris, 2016 제작)  감독 도미니크 아벨, 피오나 고든      


태생적 길치인 나는 자주 길을 잃고 헤맨다. 오래전 취재를 하기 위해 약속 장소인 건물을 한 시간 동안 찾아 헤맨 적도 있다. 지금처럼 지도맵이 활발한 시절도 아니고, 한여름 땡볕에 한 시간여를 헤매다 보니 숨이 턱턱 막혀왔다. 길을 헤맨 지 삼십분이 넘어서면서 든 생각은 건물이 지상에서 없어진 것은 아닐까, 하는 과도한 상상력에 버무려진 자가당착적인 물음이었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친 뒤 우여곡절 끝에 취재는 마쳤지만, 길을 잃는다는 것은 분명 어웅한 심연 속에 혼자 떨어진 듯한 불안과도 아주 유사했다.      


그렇다. 길을 찾지 못 하는 것은, 그리 즐거운 경험이 아니다.      


영화 <로스트 인 파리>의 주인공 피오나도 나처럼 걸핏하면 길을 헤맨다. 사진을 찍다가 첨벙 강물 속으로 사라지기까지 한다. Lost in Paris(로스트 인 파리), 제목 그대로 영화는 파리에서 길을 잃은 이야기다. 배우들의 몸동작이 과장된 채 엎치락뒤치락 정신없어서 서커스단의 공식지정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시종일관 유쾌하다.      


피오나가 파리로 간 것은, 요양원에 들어가기 싫은 이모 마르타가 피오나에게 도와달라고 편지를 썼기 때문이다. 이모를 만나러 캐나다 눈덮힌 심심산골에서 파리로 건너간 피오나. 어찌된 일인지 도통 이모와 만나지지 않는다. 이왕 온 김에 파리 시내라도 구경하자 싶 거리를 걸어가다 세느 강에 빠지는 바람에 피오나는 가방을 잃어버리고, 우연히 가방을 발견한 파리의 노숙자 돔은 가방에서 피오나의 옷을 꺼내 입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가서 피오나의 돈으로 저녁을 먹. ( 영화 보기 5분전에 읽은 존 버거의 에세이에 나오는 르 막스 레스토랑과 이름이 똑같다니! )       


우연이 중첩되면 운명이 되는 걸까? 레스토랑에서 돔은 피오나와 만난다. 그것도 모자라 그녀와 춤까지 춘다. 그런데 피오나는 뭔가 이상하다. 돔이 갖고 있는 물건들이 죄다 어디서 많이 본 듯 낯이 익다. 황홀한 현기증을 동반하는 기시감은, 파리도 마찬가지다. 사진과 그림으로 하도 많이 본 덕분에 관광객들의 머릿속에 이미 수 십 번 도착한 파리의 에펠탑은 실제 낡고 거대한 쇳덩어리일 뿐.

     

사진출처 daum


상상과 실제의 간격을 확인하는 것, 여행이란 그런 거다. 날마다 똑같은 접사 렌즈의 일상을 광각렌즈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다. 전혀 다른 프레임으로 삶을 바라보도록 하는 힘이다. 그때 비로소 일상에 납작하게 눌어붙어있던 뇌는 자유를 되찾고 춤을 춘다.      


어쩌면 피오나는 처음부터 길을 잃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단지 길을 못 찾았을 뿐. 돔이 피오나가 길을 찾도록 도와준 것은, 아마도 운명적으로, 예정된 일이었을지도 모를 일! 이모를 찾고 싶은, 아니 더 확장된 프레임으로 살고 싶었던 피오나의 숨은 갈망이 돔에게 sos 주파수를 보낸 것일 수도.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겠지만 말이다.       


몇 해 전 몸 상태가 전천후로 안 좋아서 두어 달 한의원에서 침을 맞은 적이 있는데, 그때 한의사는 통증이 주는 신호를 잘 들여다보라고 말했다. 통증은 단지 아프다는 사실을 넘어서 무언가 필요하다는 신호일 수도, 몸이 더 나아지려고 애쓰는 신호일 수도 있다.


삶의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마찬가지 아닐까. 진정 나만의 길을 찾기 위한 진통은 아닐런지...!


피오나와 돔이 이모의 유골함(?)을 센 강에 던지자 강물은 소리 내어 흐르기 시작한다. 마치 마법에 풀려난 듯. 그 소리가 참 좋다. 한참을 듣고 있자니 귀가 맑게 씻기는 기분마저 든다. 길을 잃은 것은, 지금과는 다른 새로움으로 흘러가고 싶은 거라고, 그러니 톡톡, 마음을 두드리는 소리를 잘 들으라고, 말하는 것 같다.      


영화가 끝나고 갑자기 오래전 파리의 골목길을 헤맨 뒤에 노천카페에서 먹었던 크루아상이 나는 너무 먹고 싶어졌다. 길을 잃고 혼자 서 있다 보면 어디선가, 처음으로 보는 누군가가 짠 나타날 것도 같은 느낌.


삶의 낯익은 흔적들과 함께!             

작가의 이전글 영화에세이1- 지금, 여기의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