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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윰윰 Mar 20. 2023

두려움 자가치료법 3

#3 바다


 철썩.

 파도 소리라고 하면 낭만일 것이고 구타 소리라고 하면 공포일 의성어.

 낭만이 뭔지는 잘 몰랐지만, 책에 적힌 '파도가 철썩이는' 따위의 표현은 여름과 바다를 좋아하는 아이에게 언제나 설레는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반면에 구타 소리에 해당하는 '철썩'은 파도 소리보다 더 익숙한 단어였다. 잦게는 학교 선생님의 몽둥이부터 드물게는 아빠의 손바닥까지 그것들이 몸에 와 부딪힐 때 정말 '철썩'하는 소리가 났으니까. 그 경우의 '철썩'은 소리가 나기 직전에 눈을 질끈 감을 만큼 무섭다가 소리가 '벌어진' 후엔 차라리 안도감이 든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3학년 여름방학의 어느 날, 열살 여자아이는 새로운 '철썩'의 느낌을 경험하게 되었다. 철썩은 단지 파도 소리 혹은 구타 소리가 아니라, '파도의 구타 소리'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바닷물 속에서 몸이 예상치 못한 큰 파도에 휩쓸려 한 순간 어딘가로 훅 밀려 갔을 때, 아이는 정말로 파도에 구타당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했다. 낭만적인 파도소리와 무서운 구타소리가 합쳐졌으니 그럼 낭만적으로 무서워야 하는 거 아닌가? 응, 아니었다. 그것은 선생님이나 아빠의 구타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오롯한 공포 그 자체였다. 한 순간 생사여탈권을 앗아간 바다는 아이가 알던 낭만적인 바다가 아니었으니까.


 아이는 튜브에 탄 몸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물 밑 모래를 발로 방방 차며 앞으로 나아가다 마침내 발 밑이 허전해졌을 때도 딱히 두렵진 않았다. 튜브가 나를 지켜줄테니까. 그러다 갑자기 어느 방향에서 온지도 모를 파도에 된통 얻어맞고 나서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지만, 곱게 반성하고 물밖으로 나가기엔 너무 늦었다. 바다는 튜브만 믿고 성큼성큼 깊은 곳까지 온 아이를 용서하고 돌려 보내줄 생각이 없었다.


 처음엔 그래도 제 딴에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열심히 발버둥을 쳤더랬다. 당최 무슨 어리석음이었는지 무려 튜브를 벗어서 팔로 붙잡아 누르려고 했다. 그렇게 하면 더 안정적일거라 판단했을까. 하지만 준엄한 파도는 어리석은 판단을 한 아이에게서 급기야 튜브까지 홱 낚아채 갔다. 열살 여자아이는 수영을 열심히 배웠지만 그러한 위급상황에 대처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짠 물은 벌컥벌컥 코와 입으로 들어오고, 몸엔 힘이 점점 빠졌다. 바다는 아이의 머리채를 쥐고 사정없이 흔들다, 이번 기회에 아주 더 혼나보라는 심보였는지 미니보트 선착장의 철골 구조 방향으로 아이의 몸통을 날려버렸다. 떠밀려 다니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물 속 깊숙이 박힌 두터운 철기둥에 머리가 퉁, 하고 부딪히니 아이는 마침내 몸부림을 완전히 포기했다. 그러고 나니 말도 안되게 잠이 왔다. 아 이게 기절이구나. 이렇게 죽을 수도 있겠지? 죽기 직전에 살아온 날들이 머릿 속에 스쳐가는 걸 뭐라 그러더라. 주마등? 뭐 그런 단어였던 거 같은데. 근데 아무것도 생각 안 나네. 그거 다 뻥이었구나. 아무도 안 죽어봤으면서. 뻥쟁이들 같으니라구.


 그러나 아이는 죽지 않았다.

 키 작은 아이에겐 아주 깊은 곳까지, 아주 오래 떠밀려온 것처럼 느껴졌지만 사실 그리 멀리 가지 못했고 허우적대던 시간도 그저 찰나에 불과했다. 아이가 힘이 쭉 빠지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 바다 수영에 능숙한 어른 남성이 곧장 아이를 발견했고, 지체없이 물밖으로 끄집어 냈던 것이다.

 낯선 아저씨가 모래사장에 축 쳐진 작은 몸을 눕혀 놓고 툭툭 치며 '괜찮나?' 하고 묻자 아이는 금세 눈을 떴다. 그러자 무심한 생명의 은인은 딱히 고맙단 말을 들을 생각도 없이 조심해래이~ 한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어딘가로 사라졌다.


 물에 떠밀려 다닌지 오래되지 않아 구조된 탓에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여유도 없었다. 소동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은 아이가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여전히 깔깔대며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아이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죽음의 문턱에서 갓 돌아온 아이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지만, 가족들이 둘러앉은 백사장 풍경은 평화롭고 분주했다. 아빠는 친구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심각한 대화에 빠져 있었고, 엄마는 가스버너에 삼겹살을 굽느라 바닷가에서 노는 아이를 살필 여력이 없었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긴 한 건가? 싶어 잠시 그대로 멍하니 앉아있던 아이는 모래를 철벅철벅 밟으며 엄마에게 달려가 최대한 과장된 목소리로 외쳤다.


 "엄마, 내 방금 물에 빠져 죽을 뻔했다!"

 "아이고~ 마 조심 좀 하지."

 심드렁한 엄마의 대답. 그 뿐이었다. 더운 날 햇빛 쨍쨍한 야외에서조차 쉬지 못하고 남편 술상 봐주느라 짜증이 좀 났거니와, 조금 전 딸에게 벌어진 상황에 대해 자세한 브리핑을 듣지 못했으므로 그저 튜브 타고 놀다 실수로 바닷물이나 한 모금 벌컥 했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인데. 그기 아인데. 내 진짜, 죽을 뻔했는데. 하지만 부모와 긴 대화를 하는 게 점점 귀찮아지기 시작한 열 살 여자아이는 부연 설명을 하는 대신 그저 엄마 곁에 주저앉아 삼겹살 한점 입에 넣는 것으로 그날의 해프닝을 종료했다.


 비록 그 누구와도 사건의 심각성을 공유하지 못하고 싱겁게 끝이 났지만, 그 일은 나에게 바다에 대한 깊숙하고 내밀한 트라우마를 안겨줬다.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이렇게 텍스트로 남을 만큼. 물론 나는 그 일 이후로도 여전히 바다를 사랑하며, 여름 바다엔 여전히 몸을 내맡긴다. 그리고 수영도 꽤 오래 배워서 곧잘 하는 편이다. 그러나, 바닷속 나의 용기는 딱 발이 닿는 지점까지다. 열 살 여름의 그 사건이 내게 선을 그어준 셈이다. 두 발로 설 수 있는 곳까지만. 니가 어떤 구명장치를 했든 수영을 얼마나 잘하든 더 이상은 안 돼. 어른이 되고 한참 동안은 그 선을 넘지 않으며 별 탈 없이 바다와 잘 지냈다.

 사랑하지만 무서운 바다. 사랑하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나를 죽일지도 모르는 바다. 사랑하지만 적당히 거리를 두고 언제든 두 발로 도망칠 준비를 해야 하는 바다. 계속 그렇게 살았으면 아무 문제없었을 거다. 바다에 대한 애증의 서사도 여기에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게속 이야기를 이어 나가려 한다. 그 말인 즉슨 선을 넘게 되는 일이 생겼다는 거다. 깊이, 아주 깊이. 그냥 발이 안 닿는 정도가 아니라 무려 수심 20미터라는 아득한 깊이까지.


 결혼 초기 남편과 나는 시간만 나면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곤 했다. 그저 구경만 하는 여행이 슬슬 질려갈 때쯤 무언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액티비티를 찾기 시작했고, 마침 우리의 눈에 띈 게 스쿠버다이빙이었다.

먼저 경험한 친구들이 SNS에 올린 수중 사진은 바다를 두려워 하면서도 사랑하는 내 시선을 확 끌어당겼다. 그러니까 이게... TV다큐 같은 데 나온 장면이 아니라 내가 직접 목격할 수도 있는 풍경이라고? 검푸른 배경 속 각종 찬란한 산호와 물고기 떼의 모습에 바다에 대한 두려움은 잠시 잊은 채 마음이 흥분으로 요동쳤다. 수많은 수중 사진과 인터넷 정보들을 자꾸 들여다보니 그 풍경을 직접 목격하고픈 마음이 점점 커졌다. 오빠, 우리 할 거면 제대로 하자. 몇 만원 내고 가이드 손잡고 몇 걸음 걷다 나오는 건 하지 말자. 아예 스쿠버다이빙 자격증을 따자.


 2014년 여름, 그렇게 나는 바다 공포증을 까맣게 잊은 채 다이버의 성지라 불리는 태국의 작은 섬 꼬따오로 향했다. 스쿠버다이빙 오픈워터(초급) 자격증을 따는 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론 수업을 듣고, 제한수역(수영장)에서 실기를 진행하고, 개방수역(바다)에서 몇 번의 다이빙 기록을 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4일 정도였다. 이론 수업과 시험은 특별히 어려울 게 없었고, 수심 5미터 정도의 수영장 실습도 강사님의 밀착 지도 덕에 무난히 잘 해냈다. 문제는 마지막 관문이자 진짜 다이빙의 시작인 바다였다. 산소통을 비롯한 각종 장비를 챙겨 몸에 달라붙는 다이빙 수트를 입은 채 바람을 맞으며 배를 타고 바다 한 가운데로 나아가는 건 매우 상쾌한 경험이었지만, 설렘과 흥분의 뒤에 숨어 있던 공포심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파도가 치지 않는 고요하고 푸른 다이빙 포인트에 도착했을 때 배가 멈추고, 산소통을 매고 오리발을 착용한 다이버들이 하나 둘씩 뛰어내리기 시작했다.


 수영을 전혀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운동신경과 담력이 장착된 남편은 오히려 나보다도 겁이 없었다. 그가 망설임 없이 가볍게 물에 뛰어드는 모습을 보고도 내 심장 속엔 커다란 파도가 들썩였다. 하지만 별 수 있나. 거기까지 가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꼭 내 눈으로 바다 밑 세상을 봐야만 했다. 그러려고 이 먼 곳까지 왔다. 배의 난간에서 일단 발을 뗐다. 풍덩. 다행히 물에 뛰어들자 마자 잠수를 시작하는 건 아니고, 머리만 동동 뜬 채 일행들과 다이빙 시간을 정하고 수심 몇 미터까지 내려갈 건지 등을 공유하는 잠깐의 브리핑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발이 닿지 않는 바다 위에 떠있는 것만으로 겁에 질려 있었기에 강사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긴장한 걸 티 내지 않으려 차분한 척했지만 사실 거의 혼이 나갈 지경이었다.


 내가 패닉 상태인 걸 딱히 눈치채지 못한 야속한 강사는 마침내 다이빙의 시작을 알렸다. 잠수를 시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BCD라 불리는 부력조절기의 공기를 빼내는 일이었다. 그러고 나면 몸에 매단 무거운 추 때문에 천천히 바다 속으로 가라앉게 되는 것이다. I WILL BE BACK을 외치며 조용히 불꽃 아래로 가라앉던 터미네이터처럼, 동동 떠있던 사람들의 머리가 바다 속으로 하나 둘씩 사라졌다. 너무 무서웠지만 나 혼자 계속 망망대해에 떠있는 것도 무섭긴 마찬가지였다. 눈을 질끈 감고 부력조절기의 버튼을 눌렀다. 누가 아래에서 부드럽게 당기듯 몸이 쭉 내려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몸이 바닷속으로 완전히 들어왔다. 첨엔 겁이 나다가도 막상 물 속에 들어가면 평온해질 거라는 강사의 말과는 달리 나는 더 큰 패닉에 사로잡혔다. 공포에 가려 아무런 풍경도 보이지 않았다. 바로 전날 호흡법을 숙지한 게 무색하도록 거친 숨을 몰아 쉬었다. 산소통을 매고 호흡을 거칠게 하면 그만큼 산소가 빨리 줄어들어 물밖으로 나가야하는 시간이 앞당겨진다. 나의 상태를 인지한 강사가 심호흡을 하라고 했지만 당연히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제대로 숨 쉬는 게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모질이였다. 어릴 적 그날을 머릿속에 떠올린 것도 아니었는데 몸은 그 잠깐의 절망을 기억하고 있었다.


 안되겠다 싶었는지 강사가 다른 일행들을 물 속에 잠시 대기시키고 내 BCD 버튼을 눌러 물 밖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다시 머리만 동동 떠있는 바다 위. 바다처럼 깊고 고요한 눈빛을 가진 여자 강사는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앞으로의 내 인생에 바다보다 더 깊게 각인될 한 마디를 건넸다.


 "심호흡과 패닉은 같이 올 수 없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공포라는 안개에 가려졌던 시야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특별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심호흡을 하라는 주문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가 던진 단어의 조합은 묘하게 나를 안심시키는 화법이었다. 패닉에 빠지지 않으려면 심호흡을 '하세요' 가 아니라 심호흡과 패닉은 같이 '올 수 없어요'라는 확신의 화법. 내가 해내야 할 행위나 의지를 강조해서 부담감을 주는 게 아닌, 심호흡이 있다면 패닉은 존재할 수 없다는 가능성의 차단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네가 다이빙을 잘 하든 못 하든, 일단 심호흡만 불러내면 패닉은 너에게 존재할 수도 없어. 숨만 잘 쉬면 너는 안전해. 걱정하지마. 와 같은 의미로 전달되었던 거다.


 후.

 하.

 남아있는 산소량을 잠시 잊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길게 뱉었다. 그리고 다시 BCD의 버튼을 눌러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더이상 패닉은 오지 않았다. 대신 아까는 보지 못했던 바다 속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땅 위에서 보던 푸른색과는 다른 질감의 푸름 속에서 다양한 색깔로 반짝이는 무언가들이 보였다. 그것들은 떼로 모였다 흩어지기도 하고, 내 앞을 천천히 지나가다 빠른 속도로 사라지기도 했다. 직접 보게 될 거란 생각을 한 번도 하지 못했던 풍경들을 눈에 담으며, 오픈워터 다이버 최고 수심인 20미터까지 내려갔다. 커다란 오리발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살면서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신비로운 평온함과 마주했다. 분명 다른 사람들과 함께 유영 중인데도 혼자 있는 것같은 고요한 여유를 맛보며, 그렇게 나는 바다공포증과 조금은 멀어졌다.


 이틀간 총 네 번의 개방수역 다이빙을 무사히 끝내고 초급 다이버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 그 후 자주 다니진 못했지만 더 아름다운 다이빙 성지를 찾아 다니며 물 속에서 바다거북이와 눈맞춤 하는 행운도 누렸다.


 아직도 나는 바다가 두렵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심호흡과 패닉은 같이 올 수 없다는 걸.

 바다가 아닌 일상 속에서도 발이 닿지 않는 듯한 아득한 우울감이 밀려올 때, 나는 깊게 숨을 들이쉰다. 그리고 두 번째로 다이빙을 위해 방문했던 필리핀의 어느 작은 섬 다이버샵에 적혀 있던 근사한 글귀 하나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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