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벌레
그날 아침,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설 땐 기분이 제법 상쾌했다. 보통은 시간에 쫓겨 손에 집히는 대로 대충 주워 입고 나가곤 하지만 그날의 코디는 스스로 보기에도 왠지 신경 쓴 티가 났기 때문이다. 파스텔 그린 색 봄 코트, 시폰과 니트가 혼합된 베이지색 원피스, 밑단이 레이스로 된 블랙 레깅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꺼내 신은, 내가 참 좋아하는 메쉬 소재의 빨간색 운동화까지.
사실 본격적으로 실감할 수 있는 봄은 따뜻한 공기나 길가에 핀 꽃보다, 살에 닿는 옷의 무게와 색깔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그날은 봄과 함께 하는 첫 출근처럼 느껴졌다. 가벼워진 기분만큼 입도 가벼워져서, 함께 출근하는 애인과 헤어져야 하는 강남구청역까지 쉴 새 없이 떠들며 갔던 거 같다.
나무색 헤드폰을 귀에 끼고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윤종신의 '부디'를 흥얼거리며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날씨에 어울리는 노래는 아니었지만 그냥 어떤 노래든 기분 좋게 흥얼거릴 수 있을 만큼의 정신 상태였다. 횡단보도를 막 건너고 회사 건물을 눈앞에 둔 순간이었다.
어?
왼쪽 발 안쪽 바닥에 무언가 느껴졌다. 그러니까 왼쪽 운동화 바닥에 무언가 들어있고, 내가 그걸 밟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뭐, 회사 도착해서 신발 벗고 털면 그만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가던 길을 계속 걸어갔다.
한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그런데… 이게 뭘까.
난 뭘 밟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네 걸음. 다섯 걸음... 여섯……걸음.
걸음을 옮기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그래도 멈출 순 없었다. 옆을 지나치던 수많은 사람들이 왠지 이상하게 쳐다볼 것 같았다. 언제나 머릿속에 장착하고 사는 ‘쪽팔린 행동 회피 기능’이 가동되었다. 느려졌더라도 걸어야 했다.
불현듯 떠오르면 안될 단어가 머리에 떠올랐다.
벌레?
벌.레. 이 두 글자로 이루어진 단어에 대해 말할 것 같으면, 내 인생 최고의 숙적이자, 여러 두려움의 대상 중 최상위권에 올라있는 존재요, 내 영혼을 닥치는 대로 갉아먹는 무서운 포식자라 할 수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벌레를 무서워하며, 아직까지도 모기 한 마리조차 맨손으로는 잡지 못한다.
물론 보통의 청결한 아파트에 사는 현대인들은 대체로 집안에서 모기를 제외하곤 벌레를 마주할 일이 별로 없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무슨 기가 막힌 인생의 모순인지, 벌레를 그토록 무서워하는 나는 경제적인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된 후에도 아파트라는 주거 형태가 싫어서 독립한 이후 줄곧 주택만 고집하며 살고 있다. 아파트에 비해 맨땅과 큰 차이 없는 높이에서 살아야 하는 주택은 아무리 신경 써서 관리해도 가끔은 다양한 벌레들을 마주하게 되는 법이다. 그것에 대비한답시고 매달 돈을 내가며 세스코에 우리 집의 방충과 나의 심신 안정을 전적으로 맡기고 살고 있지만, 인생의 난관이 어디 그렇게 간단히 해결되던가.
원래 벌레는 무서워하는 자의 눈에 더 잘 띄는 법이다. 나도 모르게 바닥과 벽을 눈으로 훑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아무리 대비를 해도 남들 눈엔 띄지도 않는 벌레를 먼저 발견하는 일이 잦았으며, 그래서 호들갑이 유난하다는 말도 많이 들었다. 봄옷을 차려 입고 출근하던 그날도 회기동의 옥탑방에 거주하던 시절이어서 특히 벌레의 출몰에 대해 노이로제가 올 정도로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나날들 중 하루였다.
다시 그날의 출근길로 돌아가 보자. 길을 걷던 내 왼쪽 발 안에 무언가 밟혔고, 무심코 걷다가 혹시 벌레? 하는 생각이 떠올랐고, 벌레라는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동시에 그 근거가 되는 세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촤라락 펼쳐졌다.
1. 이 신발은 거의 6개월 이상 신발장에 머무르다 오늘 오랜만에 꺼냈다.
2. 신발장은 현관문에 딱 붙어있다.
3. 신발장 위쪽 천장에서 (바퀴라 믿고 싶지 않은 무언가의) 벌레를 목격한 적이 두어 번 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느린 걸음은 절뚝 걸음으로 바뀌었다. 발이 아픈 게 아니었다. 내가 밟고 있는 것이 벌레라면, 적어도 무게를 최대한 싣지 않아서 내 발에 짓이겨져 붙어버리게 되는 것만은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온몸을 휘감고 있던 봄이라는 공감각이 온데간데없어졌다.
회사에 들어갔다. 자리에 앉았다. 책상 옆에 휴지통이 있다. 신발을 벗어서 휴지통에 톡톡, 털면 그만이다. 그래 벗자. 그냥 벗자. 그전에.
일단 왼쪽 발을 바라봤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빨간 운동화를 신은 평온한 발이었지만 내 머릿속은 몇 초 후의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기 시작했다.
경우1. 신발을 벗는다. 휴지통에 턴다. 휴지통에 떨어진 죽은(심지어 눌린) 벌레를 보게 된다. 끔찍해진다.
경우2. 신발을 벗는다. 휴지통에 턴다. 휴지통에서 살아 움직이는 벌레를 보게 된다. 벌레가 기어 나온다. 더욱 끔찍해진다. 비명도 지른다.
경우3. 신발을 벗는다. 휴지통에 턴다. 아무것도 떨어지지 않는다. 왼쪽발을 본다. 발에 붙어서 죽은(심지어 눌린) 벌레를 보게 된다. 끔찍해진다. 발을 자르고 싶어진다. 아니, 그전에 기절한다.
어떤 경우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그 당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였다. 그리고 셋 중 두 가지는 창피함까지 무릅써야 한다.
일단 나가자.
화장실로 갔다. 변기에 앉아서 신발을 벗고, 휴지통에 신발을 털고 바로 도주하자! 그래. 그런데. 왠지 그렇게 하면 오늘 하루 종일, 혹은 내일도, 여자 화장실에 들어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산 벌레든 죽은 벌레든, 내 눈에 띄기 위해 벌레가 잠복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터무니없는 생각이었지만 공포에 잠식당한 뇌는 이성적인 방향으로 가동되지 않았다.
다른 데로 나가자.
발에 계신 벌레님이 불편하실까 봐 왼발에 무게를 싣지 않기 위한 절뚝거림을 유지하며, 건물 밖으로 나와 야외 흡연실로 갔다. 우리 회사 사람들은 없었지만 다른 회사 아저씨들 몇 명이 아침 공기와 담배연기를 함께 들이마시고 있었다. 늘 그렇듯 내가 오면 슬쩍 쳐다들 본다. 당시만 해도 그 공간에 등장하는 몇 안 되는 여자라서. 하지만 그들에게 신경 써줄 여유가 없었다. 겁에 질린 티 나지 않게 노력하며, 오른쪽 발에만 무게를 실은 채, 담배를 피웠다. 그러나 불안할 때 피우는 담배는 심신 안정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불 붙인지 얼마 안 된 장초를 비벼 끄고 벤치에 앉았다.
신발을 벗어야 한다. 그래. 신발을 벗어서 벤치 아래에 툭툭 턴 다음, 결과물을 쳐다보지 말고 잽싸게 다시 신고 회사로 들어가자. 그런데 그 순간 경우3이 떠올랐다. 발에 벌레가 붙었다면, 그래도 용케 기절까진 하지 않는다면, 얇은 발목 스타킹을 그 자리에서 벗어 던져버려야 할 것이다. 아마 침착하게 벗진 못할 거다. 기겁을 하며 히이익, 하는 바보 같은 괴성과 함께 던지겠지. 그렇다면 그 모습을 본 흡연자 아저씨들의 표정은 어떨까. 며칠 후, 혹은 오늘 오후에 또다시 나를 마주치게 되었을 때의 그들 표정은 또 어떨까. 공포심 속에서도 ‘쪽팔린 행동 회피 기능’은 정상 가동 중인 듯했다.
앉은 채로 담배를 한 대 더 물었다. 그리고 또 장초를 버렸다.
안되겠다.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자. 흡연실에서 건물 바깥쪽 계단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도 벤치가 있었지만 사람들이 들락날락하는 구역은 아니었다.
앉았다. 자. 이제 정말 벗자.
벗자... 벗자.
도저히 손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사람이 있어서도 아니고, 내가 눈으로 목격할까 봐서도 아니고, 그냥 왼쪽 발에 뭔가 움직임의 변화를 줘야 한다는 자체가 무서웠다.
어떡하지.
그저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간혹 한두 명씩 내 앞을 지나가곤 했다. 그들은 아마, 패닉이 된 내 표정을 보고 오늘 아침에 급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받은 계약직 직원이거나, 사내연애를 하는데 남친한테 차인 여자라 생각할지도 몰랐다. 그러거나 말거나. 근데 맞다. 나 남친 있었지.
내 남자친구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연애 초기, 나와 같은 동네에 살던 그는 새벽에 갑자기 전화해서 벌레 잡으러 지금 당장 우리 집에 와줘! 하고 전화해도 졸린 눈을 비비며 한달음에 오던, 나만의 세스코(!) 같은 존재였다. 그래, 내 남자친구 그런 사람이었지.
그에게 전화해서 와달라고 할까.
삼성역에서 고속터미널역까지 와서, 우리 회사 건물에 온 다음, 여자친구의 신발을 벗겨주고, 필요하다면 스타킹도 벗겨주고, 내가 볼 수 없게 벌레도 좀 처리해 주고, 가. 라고 할까. 하지만 불행히도 그날은 연애 초기가 아니었다. 우린 여전히 사이가 좋았지만, 그렇다고 각자의 일상을 멈춰가며 겨우 벌레나 잡으러 와줄 만큼의 애절함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 시기였다. 그런 이유로 회사에 와 달라고 하면 당연히 거절할 게 뻔했다. 아마도 바보 같다며 한바탕 웃어 제끼거나, 그가 바쁘거나 기분이 좋지 않은 타이밍이라면 욕을 먹을 수도 있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아무 죄도 없는 그에게 순간 불합리한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 세상에 그런 요구를 들어줄 남자는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있긴 할까. 있다면 날 만나줄까.
바다를 떠다니는 유리병 속 편지 같은 생각들을 둥둥 띄워 보내다 결국 아무 결론도 대책도 얻지 못한 채 다시 사무실의 내 자리로 돌아갔다. 아마도 그 순간 세상에서 최고로 한심해 보였을 자발적 절름발이는 그저 무기력하게 의자에 앉았다.
벌레에 병적인 공포를 가지고 있다.
아니, 병적인 게 아니라 병이지.
세상에 이런 인간이 또 어디 있어.
에이. 난 참 진짜 한심하다. 벌레가 뭐라고...
그래, 맘을 가라앉히자. 그냥 벗으면 그만이야.
신발에서 발을 빼내기 전에, 고사를 지내는 마음으로 두 발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두 발은 가지런히 붙어있지만, 그것은 완벽하게 다른 세계였다. 공포와 평화, 지옥과 천국, 불행과 행복. 운동화 매듭이 지어져 있는 모습도 달랐다. 왼쪽 발의 사정을 모르는 천진난만한 오른쪽은 빨간색 끈이 리본 형태로 발등 위에 다소곳이 매어져 있었다. 그리고 왼쪽은.
어?
왼쪽 신발 위에 매듭이 없다. 분명 끈은 지그재그로 들어가 있는데 발등에 올려져 있어야할 매듭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갔지?
어?
아!
아......
어디 갔지. 라는 의문과 동시에, 더 이상의 용기도 필요 없이, 아니 그저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마침내 신발을 벗었다.
뽀얀 스타킹이 덮고 있는 나의 왼발엔 아무것도 붙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무언가 밟히던 신발의 안쪽 부분엔, 급하게 신느라 미처 제자리에 자리 잡지 못하고 안쪽으로 말려들어간 신발 끈이. 벌레로 오해 받기 좋을 정도의 부피로 둥그렇게 몸을 말고 있던 그 신발 끈이, 눈이 있었다면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을 모습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