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윰윰 Apr 15. 2023

두려움 자가치료법5

#5 누가 훔쳐 가면 어쩌지?




안녕하세요. 맨날 이렇다 저렇다 혼자 독백하는 게 지겨워서 오늘은 제 글을 읽게 될 당신에게 말을 걸어볼까 합니다. 잠시만 시간을 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무도 관심 없을 것 같지만 혹시라도 언젠가, 누군가의 시선이 잠시나마 머물지도 모를 사적인 이야기. 그런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쓰는 마음으로 아직 제대로 들여다본 적 없는 마지막 두려움에 대해 쓰고 싶습니다. 직업상 공손한 태도로 무언가를 팔아야 하는 광고 카피를 주로 써오다 보니 존댓말이 더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네요.


저에겐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알 수 없는 생각이 있습니다.

중요한 깨달음이나 커다란 감정의 변화는 대개 분명한 계기가 있기 마련이지만, 지금부터 얘기하려는 두려움은 계기가 다소 불분명합니다. 실체도 없고 막연하지요. 그래도 하나 분명한 건, 제가 느끼는 이 두려움은 매우 개인적이지만 동시에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공감할 수도 있는 두려움 아닐까 하는 것입니다. 분명하다고 해놓고 '아닐까' 라니. 거참 모순적인 태도지요. 그래도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 놔야 마음이 편한 것 아니겠습니까? 어쨌거나 제가 꺼내 놓는 이 두려움을 당신도 이해할 수 있길, 그래서 당신이 읽기에 조금은 덜 쓸 데 없길 바라는 소망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직 생일이 지나지 않은 저는 지금 딱 40세입니다. 아, 윤석열 정부가 6월부터 깎아주는 나이 기준으로 하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인생을 반추하기엔 다소 이른 나이죠. 그래도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제 지난날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짚고 가야 할 것 같아서요. 저의 20대는 평범했습니다. 평범했다는 건, 대한민국 대다수의 20대가 스스로에게 느끼듯 '아, 나는 지금 존나 불행해!'라는 생각을 달고 살았다는 겁니다. 평범하게 연애와 이별을 반복했고, 평범하게 취업 실패를 겪었고, 거지 같은 회사에 들어갔다 도망쳐 나오길 반복하며 돈 역시 매일 없었죠. 평범하게도요. 살집은 많고 자존감은 부족해서 다이어트와 요요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한 것 역시 평범한 인생의 발자취 중 하나입니다. 그래도 제법 기특했던 점은 스스로의 처지를 남들과 비교하거나 불행에 매몰되지 않고 그럭저럭 담담한 태도로 버텨냈다는 겁니다. 나는 지금 ‘존나 불행’하지만 그 불행이 영속적이진 않을 거라는 예감 같은 게 있었거든요. 이렇게 구차하게 연애하고 자괴감 느껴지는 회사에 다녀도, 뭐 평생 이러진 않겠지, 하는 게으른 낙관을 지닌 채 20대를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그렇게 편의점에서 과자 사 먹듯 평범한 불행을 습관적으로 복용하던 20대를 지나, 30대가 되어서는 인생의 마음가짐이 좀 달라졌습니다. '나 좀... 행복해졌는데?'라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죠. 신세는 똑같은데 마음가짐만 달라졌냐고요? 아, 저는 그렇게까지 자발적으로 긍정적인 인간은 아닙니다. 물리적인 환경이 조금씩 나아졌어요. 자괴감을 덜 주는 안정적인 회사에 입사했고, 영영 헤어진 줄 알았던 전 남친과 재회해서 결혼을 하고, 해외여행이라는 것도 조금씩 다니기 시작했거든요. 보증금을 갉아먹어가며 월세를 퉁치는 만행도 그만둘 수 있었죠. 


그래, 행복이라는 게 나에게 찾아왔구나. 하지만 이 행복을 불행과 마찬가지로 '평범'의 범주에 넣어도 되는지에 대해서는 조심스럽습니다. 다들 손에 쥔 불행에 대해서 얘기하는 건 거리낌 없어 보였습니다. 가진 불행의 양이 제각각인데도 한결같이 자기가 더 많이 가졌다 주장하더군요. 반면에 행복에 대해선 또 다르더라고요. SNS 상에서는 모두가 행복을 소유한 것 같았지만 현실 세계에선 다들 그런 건 손에 쥐어 본 적 없다는 것처럼 말하길래 말이죠. 참 혼란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불행이니 행복이니 보잘 것 없는 개똥철학은 됐고. 그래서 너의 두려움이 뭔데?라고, 지금쯤 생각하실 테죠? 네. 바로 그 시점, 제가 어렴풋이나마 '행복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30대부터 두려움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이걸 어떻게 말로 정의해야 할지 참 난감한데요. 고민을 거듭한 끝에 이런 문장이 제 마음 속에서 튀어나왔어요.

"이 행복, 누가 훔쳐 가면 어쩌지?"

네, 맞습니다. 행복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순간부터 이게 과연 계속 내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겁니다. 아니 세상에 무슨 이런 황당한 쫄보가 있나 싶으시죠? 잘 이해가 안 된다면 이런 거라고 여기시면 됩니다. 길에서 돈 만원 주워 놓고 혹시 누가 소유권을 주장할까 봐 끊임없이 주변을 둘러보는 사람. 그런 사람 말이에요. 그게 바로 접니다.


무슨 대단한 행복을 누렸길래 그런 생각씩이나 하냐?라고 물으신다면, 사실 할 말은 없습니다. 로또에 당첨된 것도 아니고, 부모님께 물려받을 막대한 재산 같은 것도 없었답니다. 그저 회사 다니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여행 다니고, 고작 그 정도에도 그런 감정이 들었거든요. 저도 제 자신이 잘 이해가 안 돼서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지만 쉽게 답을 내리기가 어려웠어요.

혹시 20대까지 너무 불행해서, 그러니까 불행이 습관이라서, 작은 행복조차도 너무 낯설어 이토록 낯을 가리는 건가? 하고 생각해 봤지만... 글쎄요. 말씀드렸다시피 20대의 제 불행은 너무 평범했거든요. 그렇게까지 존재감 괄괄한 불행은 아니었던지라. 차라리 이 두려움을 ‘절대로 행복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욕심'이나, 행복의 성취 과정에 대한 과도한 '겸손' 정도로 치환해 보면 그나마 이해가 되는 것도 같네요. 뭐 그 수많은 생각 어느 지점엔가 진짜 이유가 있겠지만, 아직까지도 딱 하나 이렇다 할 원인은 못 찾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 두려움은 30대 중반, 아이를 갖게 되면서 더 커졌습니다. 이 원인만큼은 매우 간단합니다. 소소하던 행복이 훨씬 크고 선명해졌거든요. 행복이 커지면서 두려움도 커졌으니까요. 아마도 비례의 법칙이 작용한 것이겠죠. 더 커진 행복과 두려움이 아주 명징했던 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저의 첫째 아들이 만 두 살쯤 됐을 무렵이었던 거 같아요. 해가 넘어가고 하늘이 푸르스름해지며 상점 간판에 불이 하나둘씩 켜지는 초여름의 초저녁, 사랑해 마지않는 서촌이라는 동네에서도 더욱 다정한 공간인 통인시장 앞 정자에 저와 남편과 아들이 동네 마실을 나와있었죠. 저는 정자에 앉아있고 남편과 아들, 그리고 동네 아이들 몇몇이 정자 앞 마당에서 뛰어놀고 있었어요. 아이들과 놀아주는 데 있어 상당한 프로페셔널인 남편은, 꺼내서 흔들기만 하면 꼬맹이들 다 홀린다는 비눗방울을 여기저기 흩뿌리고 있었고, 제 아들과 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비눗방울을 잡으러 뛰어다니고 있었어요. 초여름의 상냥한 바람과 바로 옆 꽈배기 가게에서 풍겨오는 달큰한 설탕냄새를 온몸으로 느끼며 그 광경을 바라보는데, 세상에. 너무 행복한 것 아니겠습니까.  

'아, 진짜 행복하다. 이런 게 찐 행복이구나.'

속으로 이런 상투적인 감상을 늘어놓았더랬죠. 거기서 끝났으면 좋으련만, 두려움은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더군요. 그날 그 순간에야말로, 정말 강렬하게, '누가 훔쳐 가면 어떡하지'를 느꼈습니다. 뒤에서 누가 왁! 하고 놀래킨 것 같은 강도로 말이죠. 누구한테 하는 말인지도 모르게 이렇게 빌 정도였어요. 

'제발, 우리 가족의 이 행복을 절대 훔쳐 가지 말아주세요.'


언젠가 지인들과 술을 마시면서 저의 이런 감정을 고백한 적이 있습니다. 나, 요즘 조금 행복한데, 그래서 불안하기도 해. 금방 없어져 버릴까봐. 그랬더니 곁에 있던 지인들 중 참으로 현명하고 고마운 한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얘기해 주시더라고요.

"너는 너의 행복을 단지 행운이라고 여겨서 그런 거 아닐까? 우연히 갖게 되었으니 우연히 잃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런데 다시 생각해봐. 사실 너의 행복은 그냥 운이 아니라 다 네 선택으로 얻은 결과인 거야. 니가 선택한 방향의 아웃풋이 너의 행복인 거지. 거저 얻은 게 아니니 누가 함부로 훔쳐 갈 수도 없어."

와... 이 지점에서 제가 막 부럽고 그렇지 않으세요?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었다니! 물론 지금은 연락이 뜸해진 분이지만, 마음 속으로는 항상 고마움과 존경심을 갖고 있는 지인이랍니다. 이 글을 계기로 한 번 연락을 드려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네요. 아무튼 이날 이 말을 듣고 나서는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답니다. 시야가 맑아지고 후련한 느낌이었어요. 곰팡이가 낀 마음에 락스를 싹싹 칠한 것 같았다고나 할까요. 물론 백 퍼센트 맞는 말은 아니죠. 30대 이후의 행복이 다 나의 선택이라고 말하기엔 여러 번의 행운과 주변의 크고 작은 도움이 떠오르거든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쭈글쭈글하던 신세가 조금이나마 펴지게 되는 변화의 기점에서 제 선택들이 한몫을 한 것도 사실이긴 하니까요. 저의 마음이 어느 쪽에 무게를 더 싣느냐의 문제겠지요. 그때만큼은 '나의 선택을 믿자'라고 마음먹었던 거 같아요. 길에서 만 원을 주운 게 아니라, 사실 만 원은 내가 번 거였어! 그러니 아무도 못 가져가. 그렇게, 잠시나마 저는 두려움과 조금은 멀어졌었지요.


하지만 잠시나마라는 단서가 붙는 건, 앞에서 말했듯이 그 현명한 위로가 백 퍼센트의 진실은 아니었기 때문일 겁니다. 사실 저는 30대를 넘어 40대가 시작된 지금도 여전히 행복 도난 우려에 시달리고 있답니다. 다소 생뚱맞고 거창하지만 마이클 샌델 어르신을 잠시 소환해 보도록 할게요. 돌아가신 제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한 살 많은 그 어르신께서는, '모든 건 나의 선택이다'라고 안심했던 제 뒤통수를 가격하며 이렇게 꾸짖으시더라고요. 

"그 행복, 다 니가 이룬 거 같니? 아니야 인마, 착각이야. 겨우 부모 잘 만나고 시대 잘 타고난 주제에 시건방 떠는 꼴 하고는." 

제가 오해한 게 아니라면 그분의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이 그런 내용인 걸로 알고 있어요. 방송에서 본 강연과 인터뷰가 전부였고,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책 모서리로 맞는 느낌이었지요. 제가 뭐 금수저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 정도 알량한 능력은 펼칠 수 있는 환경을 타고나서' 행복한 거라고 합디다. 조금 억울한 느낌도 없지 않지만 사실 맞는 말이죠 뭐. 어찌나 기가 팍 죽는지. 세계적인 석학이 그렇게 얘기하는데 별 수 있나요. 여전히 '어쩌다 얻게 된 면이 없지 않아 있는' 행복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불행에 대해 결연한 방어 태세를 갖추며 사는 수밖에요. 


어쩌면 저라는 인간은 불행을 끌어다 곁에 앉혀 놓아야 마음이 편한 타입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 이렇게 말하면 또 오해의 소지가 있겠군요. 기어이 불행해야 마음이 편하다, 뭐 그런 소리가 아니고요! 불행이 언제 다가올지 모른다는, 그러니까 불행이 곁에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태도'를 항상 마음에 품고 있어야 안심이 되나 보다, 뭐 그런 뜻이랍니다. 휴. 방금 저의 입방정으로 불행해야 마음이 편한 줄로 오해한 누군가가, 친절을 베푼답시고 불행을 한 봉지 안겨다 줄 뻔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네요. 아이고. 자나 깨나 말조심하겠습니다. 


저도, 그리고 이 글을 읽어준 고마운 당신도 손에 쥔 작은 행복을 놓치지 않는 하루가 되길 빕니다. 혹시나 쥐고 계신 게 불행이라면 죄송합니다. 제가 뭐 어떻게 해드릴 순 없지만, 손바닥 흙먼지 털어내듯 마음 한 번 털어내 보시라는 말 밖에… 무책임한 빈말로 위로를 건네기에 이만한 비유가 또 없네요. 그래도 우리의 오늘이 무사히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진심이에요. 저의 두려움이 진심이듯 말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두려움 자가치료법 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