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롱 Feb 22. 2022

쓰레기 줍다가 (가짜)권총을 주웠다

선량한 소시민의 심장 떨리는 대박 사건

     영국에는 하프텀이라고 불리는 일주일짜리 미니 방학이 있다. 하프텀이 시작한 월요일, 느지막이 일어난 것도 모자라 해가 중천에 떴는데도 아이들은 아직도 잠옷바람이다. 바람도 쐬며 애들 산책도 시킬 겸, 좋은 일도 할 겸 단지 경계를 따라 난 오솔길을 걸으며 쓰레기를 줍기로 했다.


     쓰레기 줍는 막대의 매직인가. 요것만 손에 들면 쓰레기 줍기인지 보물 찾기인지 애들이 신이 나서 쓰레기를 찾아 나선다. 저만치 앞서서 쓰레기를 줍던 아이들이 갑자기 “엄마 엄마!” 나를 찾으며 헐레벌떡 뛰어왔다.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 가보니 권총 한 자루가 흙바닥에 놓여있었다. 당연히 플라스틱 장난감이겠거니 하고 주워 들었는데 차가운 촉감과 묵직한 무게에 소름이 돋았다. ‘뭐야 진짜 총이야?’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땅에 반쯤 파 묻혀있었던 걸 아이들이 파냈다는 말에 순간 어지럽기까지 했다.

우리가 주운 (가짜)권총


     설마 진짜 총일까? 신고해야 하나? 장난감이면 어쩌지? 허위 신고자가 되는 건가? 그냥 가자… 싶었다가 혹시 범죄에 쓰였던 건 아닐까? 두고 갔다 범죄에 쓰이게 되면 어쩌지? 동네에 꼬맹이들이 많은데 괜찮을까? 누가 다치기라도 하면… 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두 아들과 나는 이리저리, 왔다 갔다, 안절부절못하다 용기 내서 999를 통해 경찰에 신고했다. (세상에 영국에서 긴급 출동을 요청하게 될 줄이야…)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한마디 한마디 이어갔다. 수화기 너머에 있는 경찰(이겠지?)은 내가 말하기도 전에 내 위치를 추적해냈다. 그러더니 경찰이 곧 도착할 테니 현재 위치에서 기다리란다. 부슬부슬 비가 오기 시작했다. 신고하자던 아이들이 춥고 배고프고 무섭다며 그냥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이제 와서야...


   십여 분 뒤 발신자가 뜨지 않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경찰이란다. 그런데 아무리 둘러봐도 경찰차는 안보였다. 저 멀리 서있던 시커먼 BMW가 슬슬 다가오더니 나한테 손짓을 한다. 경찰인가? 차에서 두 사람이 내렸다. 갑자기 더 무서워졌다. 나는 경찰 제복을 입고, 그 위에 Police라고 쓰여있는 형광 조끼를 입고, 무전기를 들고 있는 보통 체격의 경찰 아저씨나 경찰 아줌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일단 엄청난 체격에다 한명은 무지하게 짧은 스포츠머리 스타일, 또 다른 한 명은 빡빡 밀은 민머리였다. 우락부락한 근육에 쫄티가 되어버린 등산복(?) 같은 옷을 입은 떡대 형님 두분이 저벅저벅 걸어오는데, 내 눈에는 경찰이라기보다는 갱단 우두머리 같아 보였다.


     얼마  저녁에 공원을 가로질러 집에 가던 여자가 경찰에게 살해당한 사건이 떠올랐다. 믿어도 되는 경찰일까 의심스러웠다. 아님  신고 전화를 검은 조직이 낚아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완전 범죄가 탄로 날까  증거를 찾은 나랑 애들을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하려나 하는 무시무시한 상상까지 했다.    명이 엄청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기 전까지는.


     다행히도 그들은 경찰이었다.(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경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경찰이라는 말만 했지 경찰 배지나 신분증 같은 것도  보여줬는데 어떻게 그렇게 덥석 믿었을까 싶다) 그들은 총을 보자마자 2차 대전 때 많이 쓰던 독일 luger pistol 모델이라고 했다.  진짜인지 아닌지는 뭐랑 뭐랑 뭐를 확인해봐야 한다고 했는데  알아들었다.  키가   작은 빡빡 머리 경찰이 차에 가서 작은 상자를 가져왔다. 예전에 한창 열심히 보던 CSI Miami 나오던  같은 은빛 상자를 말이다.  수술실에서나  법한 베이지색 고무장갑을 꺼내 끼고, 이것저것 문지르고 쑤시더니 가짜!!라고 했다. 알루미늄으로 만든 air pressure 총이라나 뭐라나. 가짜 총을 갖고 경찰을 오라 가라   아닌지 민망했지만, 난생처음 권총을 봤으니 내가 알았을 리가 있나 . 암튼 가짜 총은 경찰서에 폐기하겠다며 경찰들이 가져갔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경찰이 뒤돌아 가는 순간 아이들과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달리기 시작했다. 얼른 집에 가서 셋이 꼭 붙들고 숨어있고 싶었다. 총도 없고 우락부락한 경찰도 없는 안락하고 따뜻한 내 집으로 피신해야겠다는 생각이 온몸을 지배했다. 힘껏 달리자 달려, 우리 집으로!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모험 같은 스토리를 들려주었다. 결국 가짜 권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도 말하는 내내 심장이 벌렁거렸다. 권총에, 긴급신고에 사복경찰까지! 지극히 평범한, 선량한 시민의 삶을 살고 있는 내게 오늘 일은 너무나도 큰 사건이었다. 앞으로 두고두고 이야기할 대단한 무용담이 될 것이다.


쓰레기 주우러 나왔는데, 총을 줍다니!

암튼 대단한 쓰레기 줍기였다.


이미지출처

https://unsplash.com/photos/KGRZFB1U25I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