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기도 했고, 나쁘기도 했던, 뜨거웠던 한 해를 보내며...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나는 2021. 올 한 해, 코로나 때문에 단 한 번도 마음 놓고 휴가다운 휴가를 즐겨본 적이 없었다. 봄 방학에도 집, 이사준비로 바빴던 여름 방학에도 집, 짧은 가을 방학에도 집. 정말이지 집!집!집! 영국으로 이사 온 지 2년이 다 되어가는데, 집에서 십 리 밖 구경을 나가본게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2주도 넘는 이번 크리스마스 방학. 어떻게든 보상받고 싶었다. 나는 2차 백신까지 맞았으니 자가 격리가 면제라는데 백신 미접종자인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거지? 자가 격리를 하고 며칠이라도 좀 한국 공기를 쐬는 건 어떨까? 이도 저도 골치 아프면 나 혼자라도 갈까? 대범하고 저돌적인 귀소 본능이 이성을 지배하려던 즈음, 두둥! 오미코론이 등장했다. 영국 일일 확진자 수(누적 확진자 숫자가 아니라, 일일 확진자 숫자다)가 10만을 훌쩍 넘기는 심각한 상황. 이성은 생존 본능이라는 동맹군을 만나 귀소 본능을 물리쳤다. 한국으로 가겠다는 계획은 그렇게 안드로메다로......
"이 쌍노무(?) 코로나! 이 망할놈의 오미크론!"
집에 박혀 있는 내내 코로나를 원망했다. 아이들이 듣지 않을 때는 쌍욕까지 섞어가면서 말이다. 한국도 얼마전 까지 지내던 독일에도 눈이 내려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되었다는데. 영국은 비가 오는 것도 그렇다고 안 오는 것도 아닌 우중중한 쟂빛 크리스마스. 쌍욕을 날릴 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궁시렁궁시렁. 짜증섞인 모진 말들을 입에 문 채 마른 오징어마냥 질정질정 씹어댔다.
주중충한 날들이 이어지는 연휴동안 집에 박혀 할 수 있는 일들은 많지 않았다.
온라인으로 장을 봐서 삼시세끼 해 먹었고,
넷플릭스를 신청해 하루에 두세편씩 영화랑 다큐멘터리를 봤고,
아이들과 1000피스 짜리 퍼즐을 맞추거나,
시간이 오래오래 걸리는 모노폴리를 했으며,
매년 이맘때 즈음 만드는 가족 앨범 작업을 시작했다.
꿍시렁 꿍시렁. 감옥살이가 따로 없군. 부글거리는 짜증과 일렁이는 우울함을 꾹꾹 눌러가며 컴퓨터 앞에 앉았다. 남편과 내 핸드폰을 꺼내 2020년 한 해 동안 찍은 사진을 컴퓨터에 깔린 앨범 만드는 프로그램에 옮겨 담았다. 주르륵 주르륵 마우스를 긁어 내리고 또 긁어 내려야 할 정도로 모니터에 가득찬 2021년 사진들. 집에만 있어서 사진 찍을 일도 없었을텐데. 언제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진을 찍었나 싶었다.
한 장 한 장 보고 또 봤다. 코로나 때문에, 락다운 때문에, 맘 놓고 여행을 못했기 때문에… 수많은 이유로 2021년이 힘들고 괴로웠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감사하고 즐거운 추억이 많아 사진을 고르기가 힘들 정도였다. 앨범에 들어갈 사진을 심사숙고해 고르고, 계절 순서대로 앨범 페이지 안에 보기 좋게 배열했다. 색감및 수평을 보정한 후 약간의 뽀샵은 필수.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우리 식구들의 얼굴을 매만지고 또 매만졌다. 분명 고되고 힘든 하루 하루가 있었다. 서로에게 화내고 소리친 날도 있었고. 그러나 봄, 여름, 가을, 겨울.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계절이 없었다.
얼추 완성된 가족 앨범을 보니 지난 2021년은 말그대로 희노애락. 기뻤고, 고됐고, 슬펐고, 즐거웠다.
락다운으로 이렇게나 집에 콕 박혀있어야 하나 했지만,
덕분에 아이들을 양 옆에 한 놈씩 끼고 고농축 24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고.
코로나 여파로 미뤄지던 완공일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던 내 생애 첫 집은,
우리 부부가 그동안 알뜰살뜰 모은 돈으로 마련했다는 벅찬 감동을 안겨줬다.
(물론 대출을 엄청나게 받았다)
재취업을 위해 호기롭게 제출한 입사 원서는 내는 족족 떨어졌고,
경력 단절 10년, 외국인, 아줌마라는 삼단 콤보 핸디캡을 가진 나는 정말 안되는건가 싶었다.
우울하고 무기력했던 날들이 적지 않았지만 (아니 많았지만) 버티고 버틴 덕분에,
올 해까지만 버텨보자며 정했던 데드라인을 한 달 앞둔 11월, 원하던 곳에 내 자리 하나 마련하는데 성공했다.
무엇보다도 일일 확진자수가 세계 1,2등을 앞다투는 영국에서 사느라 갑갑하고 힘들었지만,
우리 네 식구 모두 무사히 살아남았다.
일년 내내 몸과 마음이 축축한 진흙탕 구덩이와 햇빛 따끈한 잔디밭을 오갔던 것 같다. 괜찮다 싶을때면 와서 밀치고, 밀어 넘어트렸다가도 어떻게든 다시 나를 양지바른 곳으로 끌고 나왔던 2021년.
그래서 좋았던 한 해 였는지, 나빴던 한 해 였는지 헷갈린다.
그래도 주저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던 애증으로 뜨거웠던것 만큼은 확실하다.
잘 가라 2021. 뜨거운 안녕이닷!
이미지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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