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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Mar 12. 2021

365통 편지의 수신자는 한 사람

매일매일 그렇게 사랑을 썼어

남자는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고 누가 그랬을까.

여자에게도 첫사랑은 잊히지 않는다. 물론 절절하게 남아 그립고 그리운 감정이 아니라, 모두에게 한 번뿐일 처음은 특별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성인이 되어서야 시작한 첫 연애는 곧 첫사랑이었다.

아마 그 사랑만큼 순수하고 모든 감정을 다 바쳐 사랑하는 게 다시 가능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숨 쉬듯 사랑을 말했고, 눈을 감아도 떠도 보였고, 심장을 달음박질치게 만드는 사랑이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다가도 ‘보고 싶어’ 문자 한 통에 하루의 수업을 뒤로하고 달려갔다.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며 내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또 상대가 좋아하는 것들에 늘 관련되고 싶어 했다.

물론 지금은 그렇게 하기 힘들겠지만, 그 일들에 아쉬움이나 아까움이 있었냐고? 오늘 생각해봐도 전혀 없다.


우리는 매일 만났다.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늘 숨을 쉬듯이, 둘은 늘 함께여야만 했다.

그저 가만히 서로의 눈을 들여다보아도 행복했고, 늦은 밤 집으로 바래다주는 길에 캔커피 하나면 되었다.

아무 일이 없어도, 어떤 일이 있어도, 매일 통화를 하고, 어제 얼굴을 보았어도, 오늘 또 마주 보고 싶어 했다.

그렇게 늘 함께했다.


그리고 이미 적었듯이 나는 매일 손편지를 적었다. 그것도 연애 내내!

무슨  말이 그리도 많았을까.

어렴풋이 떠오르는 생각을 더듬어보자면 그저 사랑을 썼던 것 같다.

넘치는 사랑을 전할 길이 없어, 사랑한다고 사랑했다고 사랑하겠노라고 써 내려갔다.

너의 어떤 점이 사랑스러운지, 어떤 마음이 고마운지, 무엇을 주고 싶은지, 모든 것을 전했다.

그리고 고맙게도 그는 늘 편지를 감사히 받아 들고선 얼마나 튼튼하고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는지를 자랑했다. (처음엔 선물 상자에, 다음엔 커다란 밀폐용기 통에 보관한다 했다.)

또 매일 밤 그 편지를 읽는다 이야기했다. 어쩌면 매일 똑같은 사랑의 속삭임이었을 그 편지들을.


하지만 그렇게 귀했던 사랑이 끝난 순간은 천둥번개가 치듯 찰나였다.

소중했던 감정이 빛나는 보석과 같았으나 그만큼 쉬이 깨질 것을 염려하지 않았고,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으나 상대를 빌려온 사람과 같이 조심스럽게 배려하지 못했다.

그저 사랑하고 사랑하고 앞으로만 전진했다.

핑계를 대자면 나는 사랑이 처음이었기에 방법을 몰랐던 듯싶다.

작은 다툼에 자존심을 부렸다.

손 한 번 내밀어 잡으면 되었을 일을, 미안해 한 마디면 되었을 일을, 품에 끌어안았으면 되었을 일을, 그 알량한 자존심으로 망설였다.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냐면. 그것으로 정말 끝이었다. 2년이나 점점 깊어지고 짙어지기만 했던 사랑의 끝은 그렇게 허무했다.

대신 나는 꼬박 열 달을 후회하며 울었다.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밥을 먹다가도 왈칵 울음이 터졌고, 학교 가는 스쿨버스에서도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커튼에 닦아댔고, 커다란 아이팟에서 그 노래가 나오기만 하면 수도꼭지가 열린 듯 뚝뚝 울었다.

그렇게 울면서도 또 그 작은 자존심을 지키느라 어떤 말도 건네지 못했다.


그때부터 사랑에서 만큼은 자존심을 지웠다.

나를 위한 자존감은 필요하지만, 사랑 앞에서 고집부리는 자존심만큼 쓸데없는 것은 없다는 것을 열 달이나 꾹꾹 후회하고 울며 깨우쳤으니까.

물론 그때나 지금이나 미안하지도 않은 일이라면 절대 사과를 하진 않는다.

다만 작은 속상함에 나의 책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내 사과가 이 사람의 상처를 달랠 수 있다면, 그리고 순간의 자존심보다는 관계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경험을 통해 깊고 깊은 교훈을 얻었지만, 삶에서 그러한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이곳에 있다.

과거도 미래도 아니고, 언제나 현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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