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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ssorim Apr 07. 2016

이상한 베를린의 앨리스.

_베를린, 베를린의 거리에서 만난 음악.


앨리스 피비 루.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앳된 얼굴, 작은 체구의 금발 소녀의 이름이다. 그 이름만큼이나 그녀에게는 신비스러운 구석이 있다. 작디작은 체구의 앨리스는 베를린 거리의 음악가이다. 그녀는 넓고 반듯한 베를린의 거리에 그녀의 목소리를 커다랗게 울려낸다. 작은 몸에서 퍼지는 그 힘 있고 깊은 목소리는, 언제나 나를 하얀 베를린의 거리로 돌아가게 만든다.


나와 또래라는 것이 더욱 놀라운,

안녕, 나의 친구 앨리스.


photo by Jan Broeze, from https://www.facebook.com/alicephoebeloumusic/?fref=ts


_

그녀를 처음 마주한 건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많은 여행지에서의 나는 자유로웠다. 주뼛거리던 처음의 날들도 있었지만, 많은 날 공원 한 귀퉁이의 나무 그루터기에 걸터앉았고 때때로는 햇살 가득한 한 가운데의 눅눅한 푸른 잔디 위에 드러눕기도 했으며 이따금 포근한 단잠에 빠진 날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많은 날 바닥에 털썩 주저앉기를 즐겼고 처음 앨리스를 마주한 날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의 베를린이었다. 유럽의 일요일은 곧 벼룩시장이 열리는 날. 나는 베를린에서 가장 커다란 '마우어 파크'의 일요 벼룩시장을 찾았다. 여기서 마우어는 벽을 의미했다. 독일의 그 '벽'은 여전히 우리나라를 반절로 끊어내는 '벽'과는 달리 허물어진 지 오래였고, 그 오랜 잔재는 세월이 내려앉아 중후하게 빛바랜 물건들의 더미와 그를 사고파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베레모를 쓰고 덥수룩한 흰수염에 뒤덮인 할아버지에게서 삼유로 짜리 반지 하나를 사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알 수 없는 무언가에 이끌려 나는 북적이는 벼룩시장을 약간 벗어난 공원의 한 귀퉁이로 향했다. 그리곤 자그마한 금발 소녀가 기타를 매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녀의 목소리를 분명히 알아들을 수 없었다. 무대가 아닌 거리에서의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무언가에 홀린 듯 털썩하고 노래하는 그녀의 바로 앞 돌계단에 주저앉았다. 많은 사람들의 틈에 끼여 그 자그마한 금발 소녀의 앞에 앉았다. 귀를 기울였다.


_

Alice Phoebe Lou - Society

맑은 날의 베를린, 그 거리와 음악과 사람들이 어우러진 온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영상.


그녀는 자신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온 거리의 음악가라고 소개했다. 당찬 말투로 말괄량이의 웃음을 지었다. 그리곤 커다란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다. 거리의 음악가로서 늘 함께 하는, 늘 공존하는 홈리스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들의 삶이 과연 그들 스스로만의 책임일까 하는 자신의 생각에 대해 말했다. 그 의문에 대한 자신의 노래를 소개했다. 영화 '샌프란시스코에서 하룻밤'의 주인공 '로즈'는 진정한 포크싱어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사람을 말한다고 말했다. 문득 당차던 영화 속의 로즈가 떠올랐다. 앨리스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갑자기 아름답던 그녀의 목소리가 더욱 그윽해졌다. 보다 힘이 있게 다가왔다. 나는 어느새 그녀의 텅 빈 기타 가방에 십 유로짜리 지폐를 던져 넣었고 설렘의 손으로 그녀의 CD를 한 장 집어 들었다. 이는 내가 삼 주간의 베를린 여행에서 가장 잘했던 일이라 믿는다. 나는 그 CD를 사서 결코 십 유로가 아깝지 않을 만큼 듣고 듣고 또 들었다. 무수히 많은 베를린의 하얀 거리를 걸어내는 동안 나는 값을 매길 수 없는 그녀의 목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렇게 무수한 베를린의 곳곳에 그녀의 목소리를 입혔다. 그녀의 음악에 베를린을 입혔다.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언제고 베를린의 거리를 걸었다.



앨리스의 목소리를 들을 때면 나는, 언제든 베를린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앨리스는 내게, 언제고 하얀 베를린으로 안내하는 한 마리의 흰 토끼가 되었다.


일요일의 마우어파크.
흰 천막들 너머로 가득가득 벼룩시장 판매대가 있었다.
마우어파크에서 오분쯤 걸어가면 또 하나의 보석 같은 벼룩시장이 나온다. 조금더 세련된 느낌? @Arkonaplatz
Mitte의 어느 상점에서 마주한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되고 싶은 마음에 사진에 담았다.


Alice Phoebe Lou


'앨리스 피비 루'는 남아공에서 날아온 자그마한 금발 소녀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내면 무언가의 강한 부름에 의해 그녀는 짐을 싸 아프리카를 떠났고, 이리저리 방랑하다 흘러든 베를린에서 어떠한 강력한 인연의 힘에 의해 '거리의 음악가' 생활을 시작했다고 한다. 사람들에게서 '너의 음악을 만나 행복한 하루가 되었어'라는 말을 듣곤 하는 그녀는, 결코 거리에 나가는 일을 그만둘 수가 없다고 말했다. 스쳐가는 사람들을 위한 일종의 '사회적 의무감'을 느낀다며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었다. 힘 있는 목소리를 가지게 되면 그를 자신보다는 모두를 위해 쓰고 싶다고 말하던 그녀의 따뜻한 눈웃음이 빛이 났다.


그녀가 세계 일주를 하고 있지 않은 매주 일요일, 마우어파크에서 앨리스를 만날 수 있다. from https://www.facebook.com/alicephoebeloumusic/


나는,


나의 앨리스가 영원한 이상한 나라에 남기를 바랐다. 나 또한 그 이상한 나라로 데려다 주기를 바랐다.



_베를린을 노래하기 때문에 수없이 들었고 수없는 베를린을 담았던 노래,

Alice Phoebe Lou - Berlin Blues

아마도 첫번째 앨범의 표지.


_'밤하늘만이 유일한 친구가 되어주는 밤,' 가만히 떠오르는 노래,

Alice Phoebe Lou - Girl on an Island

덤으로 발랄한 앨리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상.



_내가 사랑한 베를린.

우반 Rosa-Luxemburg Platz 역. 나의 첫 숙소와 제일 아끼던 카페 바로 앞이었다.
늘 앉던 자리의 풍경.
늘 앉던 자리의 불빛.
또 다른 카페. 두사람의 뒷모습. 키위 바리스타가 있었다. 언제나 탐스럽던 케익은 결국 먹어보지 못했다.
인연이 닿았던지 일찍이 찾던 곳은 새 숙소의 바로 근처에 있었다. 베를린과 호주 사이의 카페.
베를린은 유럽치고 물가가 싼 편이었으므로 이따금 나는 거한 후식으로 사치를 부렸다.
"이 정돈 되야 베를린이지?!"



_

곧 앨리스의 새 앨범(Orbit)이 나온다. 그녀는 나를 또 하나의 이상한 나라로 이끌 것이다. 나는 준비가 되었다.

그러나 앨리스 피비 루, 언제나 나의 베를린이 되어주기를.

언제든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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