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좀 지나 되새긴다
벌써 2주나 지났다.
함양 대회가 끝난 지...
2주가 지났을 뿐인데 웬걸 한 달은 지난 거 같은 이 느낌적인 기분은 뭘까? 함양 대회(6월 29일)가 끝나고 곧바로(7월 1일 자) 근무지가 바뀌었다. 처음 며칠간 직장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왕창 받았다. 내가 왜 옮겼을까? 에서부터 시작해서 아냐, 잘 왔어, 잘 적응하면 된다고 끄덕거리기까지 수십 번은 되돌려본 거 같다.
나 혼자만의 가정이지만,
나의 탁구실력이란 게 몹시 불안정하여,
큰 톱니바퀴 크레바스 사이처럼 상승과 하강 사이 뾰족하게 형성된 실력이,
아주 조금이나마 모래로 메꿔지고 있다는 거다.
맘 편히 평평하게 발 디딜 공간이 1도 없는 그런 실력이,
미세하게 채워지는 거 같은 느낌.
예선에서 일반 러버 실력자를 꺾고 핌플 러버 실력자에게 패해 2위로 진출했다. 이른바 롱뽕 아저씨에게 나는 될 듯 말 듯 이길 듯 말 듯 미세한 변화를 끝끝내 알아차리지 못하고 패했다. 커트를 주고 백플릭으로 거니 네트에 걸리고 민볼로 주고 커트드라이브를 거니 파워가 없고, 그러다 랠리로 들어가 어느 한 구질이라도 놓치면 찬스볼을 주고 결정타를 맞아 스코어를 허덕허덕 따라가는 형국. 뭐 하나 확실한 방식이 만들어지지 않으니 당최 이길 수가 없었다.
이 선수는 7부 시절 단체전에서도 만났었다. 그때 나는 6부였는데 그러고 보니 작년이다. 작년에 핸디 1점을 주고서 시원하게 3대 0으로 패했다. 그냥 깔끔하게 졌다. 이 선수는 큰 키에 덩치도 산도적처럼 컸다. 크고 두꺼운 몸으로 이따금 웃어주는데 그렇게 다정할 수가 없다. 웃지 않을 때의 평상시 얼굴은 역시나 무섭다. 큰 덩치에 반해 그가 잡은 펜홀더 라켓이 그렇게 작아 보일 수가 없었다. 작은 라켓으로 파워풀하게 치는 스타일이다. 어지간한 너클 볼은 쇼트로 밀어 버린다. 비유하자면 황소가 돌진한다는 느낌. 조금이라도 뜬 볼은 냅다 스매싱을 꽂아버린다. 어떻게 보면 나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랄까?
스타일이 비슷한 우리가 개인전 본선 1회전에서 붙었다. 첫 세트를 지고 둘째 세트를 이기고 셋째 세트를 지고 넷째 세트를 이겼다. 마지막 5세트 9대 9였다. 네트에 맞고 공이 넘어와 실점했다. 그가 손들어 미안하다고 했다. 이번엔 탁구대 끝에 에지가 나 실점했다. 나는 11대 9로 장렬히 패했다. 패했지만 나름 소득이 있었다. 대등하게 싸웠다는 것. 작년처럼 무참히 돌아서지 않았다는 것. 허망하게 웃지 않았다는 것. 작년에는 리시브부터 못해 계속해서 두드려 맞았다. 맞다가 끝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름 리시브도 해냈다는 것. 찬스볼을 많이 주지 않았다는 것. 물론 나의 득점에는 그의 실수 지분이 많지만 그래도 좋았다.
거제 김 선수는 지난 대회에서 6부 개인전 우승을 하여 5부로 승급했다. 승급한 첫 대회가 함양이다. 지난 대회 개인전 우승할 당시 단체전에서 나와 붙었다. 당시 나는 3번이었다. 우리 팀 1, 2번이 나란히 패했다. 나까지 지면 4번은 게임도 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했다. 결연한 심정으로 김 선수와 게임했다. 그가 개인전 우승했다는 이야기를 게임 직전에 들었다. 그래도 나름 자신 있었다. 어떻게든 4번으로 연결하리라, 했는데 나는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내리 3세트를 내줬다. 그렇게 비참할 수가 없었다. 한 세트도 못 따내다니... 자책하는 시간이 길었다. 아무리 개인전 우승자라도 그렇지. 그렇게 많은 이들이 응원하는데...
이어진 함양 대회.
단체전에서 그와 나란히 4번으로 만났다. 두 번째 승부. 그는 이제 5부. 나는 여전히 햇병아리 6부. 그러나 이제 나는 그의 서브를 한차례 경험한 몸. 게임은 5세트까지 갔다. 마지막 세트 10대 6. 내가 앞섰다. 승리가 눈앞에 왔다, 고 생각했다. 우리 팀원들과 구장 사람들이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나도 이겼다, 고 여겼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든 생각이, 정말이지 한 점 내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였다. 설마 이렇게나 한 점 따기가 힘들다니, 한 점 못 내는 거 아닐까, 설마 하다가 10대 10 듀스가 됐다. 그러자 상대팀 거제 사람들이 환호했다. 이제 됐다, 이기자, 라면서 그들은 소리쳤고 우리 팀 사람들 얼굴은 흙빛이 됐다. 우승자는 우승자구나, 너무 조마조마해 말도 못 하는 그 순간, 숨도 못 쉬는 그때 거제 김 선수가 헛스윙을 했다. 12대 10으로 내가 승리하는 순간. 헛스윙과 동시에 터져 나오는 감동. 터져 나오는 울분. 텨져 나오는 어퍼컷. 고개 들어 상대를 보니 참담한 표정의 김 선수. 나는 달려가 덥석 손잡고 "잘 배웠습니다" 하고 공손히 인사했다. 그러자 김 선수는 "핸디 1점이 크구만"이라며 웃었다. 우리 팀원들이 일제히 하나가 된 순간. 일일이 하이파이브를 나누며 승리에 도취되었다.
이어진 단체전에서 나는 고령의 펜홀더 선수를 만나 5세트 듀스에서 패했다. 오랜 구력을 가진 어르신이었다. 함양 대회 모든 게임이 끝났다. 짐을 쌌다. 싸면서 생각했다. 5세트까지 가는 게임이 부쩍 많아졌구나. 점수가 일방적이지 않고 시소 타듯 따라가고 따라 잡히는 게임. 점점 끈질긴 경지까지 왔구나. 비록 입상하지 못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어제 치러진 김해 대회에서 김해 이 선수가 개인전 3위를 했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런 이 선수와 5세트까지 간 거다. 내 멋대로 긍지를 갖다 붙인다. 진 건 진 건데 쉽게 지지 않았다는 안도감.
함양 대회에서 내게 승리한 이 선수는 김해 김 선수와 붙어서 졌다. 다가오는 진주 대회 예선에서 나는 김해 김 선수와 한 조다. 솔직히 두렵다. 김해 김 선수는 작년 사천 대회 16강전에서 한차례 붙었다. 당시 5세트에서 아쉽게 패했다. 김 선수는 키가 작지만 제법 노련하다. 노련하고 섬세한 플레이로 때릴 때는 때리고 막을 때는 막는 정석 플레이를 펼친다. 늘 8강까지는 가는 선수다.
5세트 듀스에서 어떤 플레이를 해야 이길까?
게임 내내 한 번도 하지 않던 플레이를 하면 이길까? 그러다 실수하면? 아니면 게임 내내 잘하던 플레이로 밀어붙일까? 반대로 상대가 뜻밖의 플레이를 해 당황하게 된다면? 어떻게 되든 그 순간만큼은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간다. 승리한다면? 그보다 더 짜릿한 순간은 없을 것이다.
거칠고 노련한 실력자들과 맞붙어 승리할 수 있을까? 그들은 저마다 자신들의 구장에서 최고일 텐데. 누가 그랬다. 그들과 내가 깻잎 한 장 차이라고. 깻잎 한 장 차이뿐이라 이기든 지든 이상할 게 없다고. 쫄 필요 없다고. 긴장할 필요 없이 당당히 붙으면 된다고. 깻잎 한 장 차이지만 결과에 따라 천국과 지옥이 나뉜다. 그 후폭풍은 실로 대단하다. 차이를 감히 말하지 못한다. 말하지 못하는 깻잎 한 장의 차이. 깻잎 한 장을 넘어서려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그 한 장을 넘기 위해 오늘도 도전하리라.
아, 나의 예선 공포증은 언제나 사라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