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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May 14. 2024

경남도지사기 함안 대회

체육관 시설이 깔끔하고 좋다



대진표를 보고 뜨끔.


지난주 대진표가 떴다.

 

대진표를 보고 든 생각 '왜 이다지도 대진운이 없을까' '왜 나는 예선 운이 없을까' 등 자조적인 마음. 

한 명은 통영 이 선수. 이 선수는 펜홀더 스매싱 전형으로 그간 대회에서 두 번 만났는데 전부 역전패를 당했다. 또 한 명은 창원의 백 선수. 백 선수는 숏 뽕(핌플) 전형이다. 자녀가 모두 일류 선수 출신이고 본인도 오랜 세월 탁구를 쳤다고 들었다. 백 선수는 일류 선수 자녀를 가진 아버지. 즉 내가 예선 통과를 하기 위해서는 한 명을 희생양 삼아야 하는데 그럴만한 대상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 조에서는 내가 예탈의 희생양인가?'라는 의심. '내가 상대 둘을 올려 보내기 위한 존재?' 다른 동료 대진표를 보더라도 다들 무난하기만 한데 나만 어렵다는 생각에 부담이 가중되었다.


일단 백 선수는 아직 상대해보지 않아서 모르는 상태. 

그러면 무조건 통영 이 선수를 잡아야 한다. 이 선수는 백서브가 일품이다. 나는 그의 백서브가 회전인지 커트인지 구분하지 못한다. 워낙에 임팩 순간 라켓면을 바꾸기 때문에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정쩡하게 리시브하다가 찬스볼을 줘 스매싱 맞거나 오버아웃 실점을 했다. 관건은 그의 백서브를 받아내야 하는 것. 우리 구장 사람들에게 백서브를 좀 넣어보라 했지만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통영 이 선수의 백을 어떻게 한담? 그게 문제다. 1년 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2세트를 먼저 따고도 3대 2로 역전패당했었다. 그때 이선수는 자신이 가진 여러 서브를 시용하다가 내가 백서브를 못 받는 것을 발견하고는 씨익 웃더니 주야장천 백서브만 넣었다. 나는 상회전과 횡회전이 걸린 백서브에 커트를 대며 리시브했고 공은 붕 떠 찬스볼이 되기 일쑤. 이 선수는 냅다 스매싱을 날렸고 나는 그걸 받겠노라 몸 날려 데굴데굴 넘어졌다. 이 선수가 내게 "괜찮아요?"라고 묻는데 웃는 표정이었다. 주변에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안타까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처박히고 구르고 넘어지면서 그의 스매싱에 만신창이가 되었다. 

두 번째 대결은 단체전이었다. 그때도 바들바들 떨면서 백서브에 무너졌고 그는 연신 웃고 있었다. 자신감이란 찾아볼 수가 없는 움츠린 자세로 그의 백서브에 커트 리시브만 일삼았다. 역전패당하고 팀원들에게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묵묵히 집에 돌아온 기억. 참담했다.   


예선 시작.


대진표 번호에 따라 해당 탁구대로 가 3명이 다 모여있으면 일단 한번 실망하고 시작하게 된다. 다른 테이블에는 한 명이 안 오거나 심지어 두 명이 안 오는 테이블도 있는데, 왜 내가 속한 조는 꼬박꼬박 셋이 잘도 모인단 말인가. 아니나 다를까 우리 구장 다른 동료들은 자기네 조에 한 명씩 오지 않았다면서 가볍게 즐기며 예선 통과하고 휴식하러 갔다. 


테이블을 마주하고 통영 이 선수와 랠리하고 있으니, 창원 백 선수가 다가와 "우리 셋이 가위바위보를 해서 같은 거 두 명 나오는 사람이 먼저 하는 걸로 합시다"라고 말했다. 가위바위보에서 가장 즉흥적으로 내는 게 무언가? 주먹이 아닐까? 나는 주먹을 냈고 이 선수도 주먹을 냈다. 백 선수는 가위를 냈다. 백 선수가 흠칫 당황하더니 너털웃음을 지으며 심판석에 앉았다. 아마도 나와 이 선수가 먼저 랠리 하고 있으니 가위바위보를 제안하여 먼저 게임을 하고 싶은 거 같았다. 어디까지나 이건 짐작이다. 예선에서는 되도록 먼저 게임하는 쪽이 유리하다. 먼저 게임을 하지 않으면 중간에 몸이 풀리지 않은 상태로 몸 풀린 승자와 게임하게 된다. 이건 나도 몇 번이나 경험해서 잘 알고 있다.


게임 시작.


처음 이 선수는 포핸드 서브를 두 개 넣었다. 포핸드 서브는 겁날 게 없었다. 포핸드 서브 넣을 때 점수를 따놓아야 했다. 언제 공포의 백서브가 올지 모른다. 역시나 그는 백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나는 탁구대 아래까지 허리 숙여 공을 보고자 했다. 어떤 회전이 올 것인가? 커트처럼 보이는 횡회전이 난무했다. 나는 거의 모든 공을 쇼트로 밀었다. 그러니 그의 백서브 2개 중 하나 이상은 어찌어찌 받아지기 시작했다. 일단 리시브에서 최대한 낮고 짧게 보내는 게 중요했다. 내 서브 때는 2점을 따고 그의 서브 두 개중 하나를 받아 득점에 성공하니 스코어가 벌어졌다. 그렇게 비교적 가뿐히 3대 0으로 승리했다. 3세트를 따낼 때 쾌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천적이라고 여기던 상대를 비로소 한번 이겨내는 기분. 그동안 얼마나 나를 쉽게 생각했을까. 조금이나마 꿈틀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좋았다. 


이윽고 백 선수와의 게임.

백 선수가 갑자기 자신의 라켓이 롱 뽕(핌플)이라고 소개했다. 숏이라고 들었는데 롱이라니? 당황했다. 일단 나는 커트서브를 넣었다. 돌아오는 공이 너클로 변해 짧게 왔다. 짧게 오니 확실한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넘겼다. 다시금 오는 공은 커트, 그다음은 너클인데 커트를 대니 붕 떠올라 찬스볼이 되고 백 선수는 오른쪽으로 크게 빠지는 스매싱과 드라이브를 날려댔다. 안 되겠다 싶어 상회전 서브를 넣었다. 그랬더니 하회전 걸린 공이 돌아왔다. 그것을 루프드라이브와 커트드라이브로 넘겨 상대했다. 조금씩 스코어를 좁혔지만 끝내 3대 2로 패하고 말았다. 다음에 참고할 점. 롱은 반드시 커트를 넣고 한방 드라이브 혹은 백플릭으로 상대해야 한다. 커트를 주면 너클이나 맨공이 온다. 짧게 오면 안 되니 길게 커트공을 주자.


이어서 이 선수와 백 선수의 게임.

이 선수가 노련하게 롱 뽕을 상대하며 5세트 9대 9가 되었다. 심판 보던 나는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 선수가 비록 탈락이 확정되었지만 1승이나마 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백 선수는 연신 '난 예선 통과했잖아'라고 말하면서도 비지땀을 흘리며 사력을 다했다. 듀스까지 가서 이 선수가 역전승을 거두었다. 우리 셋은 모두 1승 1패 동률이 되었다. 나는 세트 +2가 되어서 1위, 백 선수는 0이 되어 2위, 이 선수는 -2가 되어 3위로 결정되었다. 만일 내가 백 선수를 이겼더라면 이 선수가 예선통과했을 것이다. 다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 선수를 위로했다. "그동안 제가 다 졌는데 오늘 운이 좋았습니다"라고 인사하니 이 선수가 미소 지으며 "네, 그랬지요" 하며 손 내밀어 주었다. 나는 악수하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예선 1위.

정말 기분 좋았다. 돗자리가 있는 벤치로 가 철퍼덕 앉았다. 비교적 쉬운 예선을 치르고 쉬던 동료들이 반가운 인사를 건넸다. "잘했다, 잘하시대요. 역시 멋진데?" 그래, 이제 됐다, 이것으로 족하다, 하는 마음으로 김밥을 먹었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본선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건 나뿐일까?

밥 먹을 때까지라도 개인전이 살아있으면(남아있으면) 밥 맛도 좋다. 반대로 점심 전에 본선을 시작해 중간에 떨어지면 먹는 밥맛이 모래 씹는 듯하다. 따라서 얼른 밥 먹고 개인전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 얼마나 두근거리는 줄 아는가. 뭔가 미지의 세계가 기다리는 듯해서 밥맛이 좋다. 우리 구장 사람들은 개회식이 끝나고 밥 먹으라는 방송이 나오지 않았는데도 후다닥 달려가 밥을 먹었다. 밥 먹고 커피 마시며 쪼르륵 선수 대기석으로 갔다. 진주의 다른 구장 익숙한 형님, 조 선수 옆에 앉았다. 인사하고 서로가 덕담하며 예선에 관해 논했다. 조 선수가 말하길 "전에는 예선에 구멍이 하나씩 있었는데 요즘은 구멍이 전혀 없어. 우리 조도 3명이 치열하게 맞물려서 예선만 무려 1시간 반을 치렀다니까"라고 말했다. 나는 끄덕거리며 "맞습니다. 요새는 예선부터가 전쟁이에요"라며 맞장구를 쳤다. 구멍이 없는 요즘의 예선. 격정적으로 예선을 치르고 올라온 용사. 이제 언제 떨어져도 괜찮은 시점이지만 본선 역시 떨어지면 아쉬움이 남을 테다. 


드디어 본선 1회전.


나는 1위로 부전승하여 역시 부전승인 다른 조 1위를 만났다. 2위로 진출했으면 한게임 더 치르고 만날 터였다. 일단 체력적으로 세이브되어 좋다. 상대는 작년 초 창원대회에서 만났던 윤 선수다. 윤 선수와 예선 2위 자리를 놓고 서로 격돌하여 5세트까지 가서야 겨우 승리했던 기억이 있다. 윤 선수도 나를 기억할까? 윤 선수는 작년 말 밀양 대회에서 개인전 우승으로 멋지게 6부로 승급. 개인전 우승이라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연마하셨을까 싶었다. 그리고 오늘도 예선 1위로 올라왔으니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하는 부담. 나는 별반 달라진 게 없는데 이렇듯 놀라운 상승으로 성적내시는 분들이 부럽다. 


윤 선수의 서브는 놀라웠다.

커트인가 싶어 받으니 횡회전이 듬뿍 들어가 오른쪽 탁구대밖으로 피융~ 날아갔다. 뭐야? 이거 무슨 초보시절 고수에게 받던 횡회전 같잖아? 그런데 서브는 포핸드커트 모션으로 천천히 그리고 짧게 투바운드로 넘어오는데 커트 대니 오른쪽으로 날아간다? 그러면 라켓을 세워 왼쪽을 보고 받아야 하는데, 아니지 아니야, 수동적 리시브는 그만, 무조건 쇼트로 받는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어떤 알량한 자존심 같은 것이다. 커트로 받으면 상대의 드라이브 한방이 기다릴 테고 그걸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어차피 점수줄 거 백 쇼트로 묻혀서 넘기자고 다짐했다. 건드려야 한다. 그렇게 쇼트로 받으니 두 개 중 하나는 들어갔다. 1세트에서 내가 8대 4로 앞서고 있었다. 마음을 놓았나? 그러다 듀스가 되었는데 잠깐 멘붕이 왔다. 윤선수의 서브가 하나같이 놀라웠다. 길게 커트로 오는데도 대면 횡회전이고 어떨 때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도 이상 야릇한 서브가 날아왔다. 이걸 어떻게 하지? 하다가 슬며시 갖다 대니 넘어가기도 하고 아웃되기도 하고. 아무튼 듀스 원에서 다시금 짧은 커트 같은 커트 아닌 회전이 날아왔다. 나는 모르겠다 하며 다가가 쇼트로 건드렸고 공은 윤 선수의 백 쪽 모서리를 찍었다. 윤 선수가 움찔했지만 그의 왼쪽 옆구리 테이블에 공이 정확히 들어갔다. 어쩌면 그가 먹인 횡회전이 그의 실점을 유도한지도 몰랐다. 그렇게 1세트를 잡으니 게임이 쉽게 흘러가 어느새 승리했다. 게임이 끝나고 넙죽 "작년에 만났는데 실력이 많이 오르셨네요"하며 인사를 건넸다. 그도 "아, 네~ 맞습니다.  잘 배웠습니다"하며 웃었다. 우리는 두 손을 맞잡고 인사했다. 대체로 운이 좋은 게임이었다. 나는 그의 서브를 절반 아래로밖에 파악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운 좋게 살려내 연결로 끌고 간 것이 주효했다.


본선 2회전.


상대는 고수의 품격이 느껴지는 창원 김 선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4부에서 무려 두 부수를 내려온 이력이 있었다. 4부에서 놀던 분을 감히 내가? 진행석에서 아주머니 심판 한 분을 동행시켰다. 심판은 말로만 듣던 국제 심판 자격증을 가진 분이다. 국제 심판은 동전처럼 생긴 것을 공중으로 던지더니 내게 테이블 자리를, 김 선수에게 서브권을 넘겼다. 심판은 내 실력에 비해 과분한 심판이었다. 내가 저토록 국제 규정에 맞게 진행할만한 선수가 아닌데 이렇듯 과한 대접이라니. 공손히 인사하고 게임에 들어갔다. 김 선수가 서브를 보내고 내가 커트했다. 돌아오는 3구 드라이브가 어찌나 매섭던지 나는 오른쪽으로 빠지는 공을 따라가지도 못하고 실점했다. 그리고 어떨 때는 몸 쪽으로 파워 드라이브가 꽂히는데 맞은 배꼽이 따가울 정도였다. 1세트를 졌다. 지고 '도저히 안 되겠구나' 하고 체념했다. 이런 분은 고수다. 최소 알이 2개 정도는 차이 난다. 여기서 알이라는 건 탁구 실력이다. 실력에서 두 점 정도, 그러니까 두 부수는 내가 아래의 실력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멀찍이서 우리 구장 여사님들이 등장하여 응원하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파이팅~~~ 힘내요~~~" 그냥 조용히 지고 돗자리로 돌아가려 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되었다. 구장 사람들이 지켜본다는 것. 나중에 실력적으로 평판이 매겨질 수도 있다. 지더라도 잘 져야, 그러니까 멋지게 져야 했다. 나는 없던 에너지를 끌어 모았다. 심판도 국제 심판이지 응원도 열나지, 어떻게든 잘 지고 싶었다. 김 선수와 나는 서브가 바뀔 때마다 연신 땀을 닦았고 호흡을 길게 가져갔다. 나는 서브를 다양하게 넣었다. 그리고 김 선수의 서브를 왼쪽으로 코스 빼 파워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게끔 했다. 한 점 딸 때마다 여사님들이 "와아아아~~"하고 소리쳐 주었다. 뭔가 으쓱해지는 기분도 들었다. 잘 져야 한다. 무조건 잘 져야 한다고 각오했다. 내가 잘하는 것을 해야 했다. 쇼트로 버티다 코스를 뺐다. 랠리가 길어지니 김 선수의 타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매 세트가 끝날 때마다 국제 심판은 공을 달라고 했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잘 져야 한다. 잘 진다는 것은 버텨야 한다는 것. 버틴다는 건 랠리를 오래 끌고 가야 하는데, 오래 끌려면 상대의 드라이브를 막아야 해. 하나 둘을 막고 셋을 막다 보면 실수하겠지. 아니면 내게 찬스 공이 올 거야. 막자 막자 하나만 더 막자 하다가 끝내 5세트에서 승리해 버렸다. 어라? 이게 무슨 일? 이거 현실? 이건 순전히 응원의 힘이었다. 그리고 깔끔한 심판의 진행 덕이었다. "두 분 참 매너가 좋으시네요, 다만 타월은 6의 배수마다 닦는 거예요"라고 심판이 말해주었다. 나는 깍듯하게 김 선수와 심판에게 인사하고 여사님들께 달려가 하이파이브를 했다. 짜릿했다.  


본선 3회전


왜 하필 우리 구장 돗자리 앞에 테이블이 배정되었는가. 그냥 저 안쪽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게임하면 조용히 지고 돌아올 것을... 자신이 없는데 우리 구장 사람들 전부 지켜보는 곳에서 16강전을 치르게 되었다. 이기면 8강 지면 16강. 이기면 입상, 지면 입상문턱에서 주르륵 이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주르륵이다. 그러나 한 구 한 구 치열하게 싸우며 파이팅 외치며 재미있는 게임을 했다. 일점 일점 얻을 때마다 고함치며 아자! 파이팅! 열띤 응원을 받았다. 그것으로 좋았다.


단체전


우리 팀 1번, 2번이 나란히 패하고 3번으로 출전했다. 상대는 그간 대회장에서 줄곧 지켜보던 창원 조 선수다. 솔직히 조 선수만 만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다. 조 선수는 상대팀 에이스로 복식도 나간다고 했다. 우리 팀 3번, 4번이 이겨야 동률을 이뤄 복식까지 간다. 그러자면 나부터 이겨야 한다. 조 선수의 무수한 게임을 볼 때마다 느낀 건 '강하다'였다. 서브도 좋고 드라이브도 날카롭다. 드라이브가 총알처럼 날아온다. 

게임이 시작되고 조 선수의 서브를 커트로 반구 하니 파워 드라이브가 내 손등을 강타했다. 찰싹 소리가 났지만 아프지 않은 척했다. 아픈 티를 내면 조선수에게 기선을 뺏길 것만 같았다. 나 역시 오른쪽으로 횡회전을 넣고 스매싱을 때렸다. 조 선수는 전형적인 펜홀더 고수다. 아주 오래된 구력도 엿보이고 안정감이 돋보인다. 그런 상대가 까다로워 보여서 자신이 없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서브 동작을 동원해 갖가지 모션을 취하며 속이려고 했다. 결론은 3대 1로 승리했다. 그냥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 내가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닌데 이겼네? 하는 건 다섯 번 정도 붙으면 1승 4패로 열세인데 그 1승이 오늘 나온 것. 앞서 개인전에서 만난 김 선수도 마찬가지다. 김 선수랑은 열에 아홉은 패할 실력인데 나머지 하나가 오늘 나온 거다. 이럴 때 드는 짜릿한 기분. 작지만 강력하게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다. 정말 기뻤다. 미지의 언덕 너머에 넘어가 산책하고 다녀온 것 같았다. 감히 다가설 수 없는 곳이지만 마침내 기회가 왔다. 한 번쯤 가보거라. 네~ 영광입니다 하고 언덕 너머 새로운 세계에 슬쩍 발디디고 왔다. 그곳은 고수의 세계. 하수들이 범접할 수 없는 영역. 오랜 기다림 끝에 내게도 차례가 왔다. 아직 네 차례가 아니지만 특별 서비스니라~ 하는 것 같았다. 


함안 대회에서 느낀 것.


상대의 서브에 농락당하지 말자는 것. 적극적으로 공략하자는 것. 무조건 돌아설 필요는 없다. 전부 포핸드로 잡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백으로 커트하는 것도 안된다. 그렇다면 남은 건? 바로 백으로 묻혀서 받는 것. 백으로 건드리는 것. 정말이지 완벽한 하회전이 걸리고 짧게 오는 것만 아니라면 '다 건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과감히 백으로 때리는 게 아니라 '묻혀서'이다. 그러면 나는 테이블 양쪽을 전부 지킬 수 있게 되고 상대의 한방 드라이브, 코스 드라이브를 막을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랠리로 가져가면 된다. 랠리는 자신 있잖아? 누군가가 그랬다. 어떤 이는 서브가 강해서 랠리 실력이 떨어진다고. 왜냐면 그동안 서브로 쉽게 먹었거든. 그러니 실력이 정체된 거라고. 반면에 서브가 약하면 랠리 실력이 올라간다고. 왜냐면 서브가 약하니 랠리로 먹고살아야 하거든. 후자가 내쪽이다. 나는 특히 서브가 약해서 랠리와 수비로 먹고살았다. 이제는 서브와 리시브를 공격적으로 하자는 것. 그것이 어제 함안 대회에서 느낀 것이다. 또 고수를 만나 막힐 땐 호흡을 천천히 가져가자는 것이다. 상대의 박자를 빼앗으면 다시금 승부의 추가 내게로 기울 수 있다. 호흡을 가다듬고 이번엔 어떻게 리시브할까. 방금 실패했던 리시브는 그만. 그래 저쪽으로 빼야겠다. 생각하며 기다려야 한다. 무심결에 같은 걸 반복하는 실수는 안된다. 안되면 자꾸만 새로운 것. 새로운 작전으로 대비해야 한다. 


절대 포기하지 않는 것. 내가 가진 걸 하나라도 더 이끌어 내는 것. 이것이 함안 대회에서 느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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