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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Aug 13. 2024

안동에 공주 보러 갈래

영화 파일럿을 보고



노국 공주의 차림을 한 아가씨.





딸아


우리 가족끼리 공주 보러 갈래?

무슨 공주? 충청도 공주?

딸이 되묻는다.

아니 안동공주

안동에 무슨 공주?

안동바다에 공주가 있단다.

안동의 바다라 아빠 돌았나?

안동땅 월령교는 밤이 되면

바다로 변한단다. 그곳은 하늘의 천사가 공주로 변신하여 사뿐히 내려온단다.

빨리 가보자. 

엄마와 오빠도 짐 챙겨라. 

우리 가족은 진주에서 세 시간 달려서 안동 도착하니 오후 두 시다.

아빠 배고프다. 안동찜닭 먹으러 가자. 숙소부터 잡아야지.

구안동역 앞 고려호텔 예약한다. 

찜닭 골목에서 감자 넣은 찜닭을 냠냠 게걸스레 해치우고 포식한 배를 내밀고 파일럿 영화 보러 갔다.

현세태를 반영한 가족애를 그려낸 파일럿 감독 김한결이 누굴까?

기어코 알아낸 김한결 감독 안동에서 나고 자란 안동사람

그의 아버지는 칩실년째 안동에서 살고 있다.

난 사랑하는 안동을 위해서 영화표 몇 장을 더 샀다.

조카들에게도 몇 장 줘야지. 

벌써 어둠이 깔린다.

강변의 수페타 젊음을 발산하고 있다. 

초중고대 청춘들이 빽빽이 들어선 무대 앞 절로 흥이 난다.

딸아 아들아 여보야~

한번 흔들어라~ 탄성을 괴성을 함성을 지르면서 춤동작도 흔들고 비틀고 여러 가지 저 청춘 속마음엔 학업진학 진로 같은 스트레스가 쌓였으리라.


안동 간고등어를 맛있게 먹고 안동소주 버버리찰떡 샀다. 

형님께 누님께 드려야지. 

월령교로 왔다.

과연 그곳엔 오묘한 풍경이 펼쳐졌다.

월령교 바다다. 

바다를 가로지르는 월령다리는 학이 춤추듯 날갯짓하며 물을 뿜는다. 

다리밑엔 작은 배들이 형형색색 물안개를 헤치고 왔다가 사라진다.

물 위 솟은 작은 바위 걸터앉은 안동문어, 아래수면엔 안동 고등어가 떼 지어 논다.

월령교 바다에 오심을 환영한다고 불꽃을 탁탁 하늘로 쏘아 댄다. 

바다에도 더 큰 불꽃이 내려 꽂힌다.

그래서 월령인가.


짚실로 감아라.

당대실로 풀어라.

청에 사소 청에 사소.

청에 값이 몇 냥이냐?

돈도 닷냥 은도닷냥.

청아하고 구성진 가락과 함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문화재

노국공주가 공연되고 있다.

딸아 보아라.

이것이 안동공주다.

공주 폼 봐라.

왕비인데도 사람들은 공주라 부른다.

밤 열 시가 넘어가고 있다. 

딸은 수운잡방이 뭐예요 묻는다.

안동선비가 480년 전에 술과 음식 만드는 방법을 한문으로 쓴 한국 최초의 책.

그럼 디미방은 뭐예요?

그건 여중군자 장계향이 350년 전 백성을 위해 한들로 쉽게 집필한 한국 최초 요리책.

여중군자는 뭐예요?

나도 모른다. 선생님께 여쭤봐라.

너도 여중군자 되거라.

밤 열한 시가 돼서 숙소로 온다.

딸은 부채질하면서 싱긋 웃는다.

안동오길 잘했지.

엄마야 오빠야.






참고로 아버지는 딸이 없다. 


윗글은 아버지가 톡으로 장문의 글을 보내온 거다. 딸이 없는데 딸아 보아라 하여, 어떻게 된 거예요 여쭈니 상황 설정을 그리 잡은 거라고 했다. 어쩌면 칠십여 년 억누른 바람이 작문 설정으로 삐져나온 게 아닐까 싶다.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영화 파일럿 보거라. 내 친구 딸이 감독이니 가족이 다 같이 봐야 한다. 영화 값 삼십은 며느리 통장으로 보냈다."

나는 왜 며느리에게 보냈느냐고 항변하려다가 그냥 "네~"라고만 답했다.


아내는 내가 예약하면 보러는 가주겠다고 했다. 조용히 내 폰으로 예매했다. 당연 아무것도 오는 것은 없었다. 이튿날 다 같이 보러 갔다. 영화 보는 내내 슬그머니 옆자리 딸아이의 얼굴을 힐끔거렸다. 웃긴 장면에서 실룩실룩 웃는 얼굴을 보니 웃겼다. 요즘 들어 웃는 빈도가 급격히 줄어든 딸아이의 표정. 도통 웃지를 않아 웃는 얼굴을 본 게 언제인가 싶은데 저 속에서부터 터져 나온 웃음이 웃지 않으려는 사춘기 감정과 만나 기어이 광대뼈를 튀어나오게끔 어색한 표정을 유발했다. 웃지 않으려는 얼굴과 웃으려는 얼굴. 먹구름과 흰구름이 부딪힌 천둥 번개를 보며 키득거렸다. 딸아~ 웃는 얼굴이 웃기는구나. 웃으려면 그냥 와하하 자연스레 웃지? 머그리 어색하게 웃냐? 내가 말하니 딸아이는 손으로 내 고개를 스크린 쪽으로 밀었다. 딸아이는 아빠가 저를 볼 때마다 황급히 표정을 가다듬었지만 영화 파일럿이 가만두지 않았다.


파일럿은 과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쿨하게 웃겼다. 

현 세태의 가정에서 가장 역할을 하는 아들, 그리고 가족. 현 세태의 사회에서 비난하는 쪽에 선 이들, 그리고 이해. 



딸아이도 딸아이의 위치에서 갈등하고 이해하며 결국 제 자리를 안정적으로 찾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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