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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머피 Aug 19. 2024

능소화 거리

원이엄마의 한글 편지



아버지로부터 톡이 왔다.

장문의 글. 글 안에 다른 사적인 메시지는 없다. 사적인 메시지는 아침 일찍 따로 왔다. 그것은『2주 뒤 벌초 실시함』이라는 문자다. 어쩌면 이것도 사적인 내용이 아닐지도 모른다. 짐작컨대 단체문자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은 아버지들과 사촌 동생들에게도 갔을 터. 단체문자로 온 문자는 사적일 확률이 떨어진다. 사적인 메시지는 개인 대 개인으로만 전해지는 것이리라. 그래서 돌이켜보면 이 장문의 글 한줄기가 내게 보내는 사적일 확률이 높다. 아버지가 혼자서 능소화거리를 걷다가 한편에 원이엄마의 글을 보고 또 걷다가 보고 그러길 반복하던 세월에 어떤 생각을 하여 긴 메시지로 썼을 것이다. 원이엄마의 애통함을 공감하다가 원이엄마가 쓴 한글에 대해 또 생각하다가 능소화의 빨간 자태에 자극받아 썼을 것이다. 아들아, 이 글을 보아라. 다른 어떤 사적인 말보다 사적인 마음이니라. 


  




안동에는

시내 한 복판에 벚꽃거리가 있다.

낙동강변 따라 새로 만든

도로 가운데는 중앙분리대따라 배롱나무가 줄지어 서있다.

남쪽 강변 따라 영호루부터 정하동 동쪽까지 능소화 거리가 있다.

봄이 되면 백 년 벚꽃거리는 화려함이 물결친다.


근래에는

겹벚꽃 홍벚꽃 나무도 있다.

울긋불긋 하얀 꽃이 바람 불면 부는 대로 비 오면 비 오는 대로 상춘객을 들뜨게 한다.


여름이면

배롱나무 부귀영화 백일홍 꽃이 뜨거운 태양빛을 받아 

교교히 길손들을 환영한다.

강 건너 능소화 거리를 집중해 본다.


검찰청 앞에

원이엄마 동상이 능소화와 함께 있다.

능소화는 붉은 꽃을 주렁주렁 매단 채 원이엄마가 환생한 듯 수줍음을 머금고 가는 사람에게 손짓하고 있다.

상사병에 시름시름 죽어가는 여인을 연상한다.


소화는 한 사람만 사모한 채 담장 안 고이 갇혀서 이제나 저제자 기다리다가 독을 품고 꽃이 활짝 편 상태로 툭 떨어진다.


첫사랑만 간직하고 기다리는 능소화야.

붉은 자태 애타는 마음 눈물되어 흐르네.

그리움의 꽃가지 뻗어 자꾸 올라가는구나.

곱고 화사한 능소화는 어느덧 원이엄마 혼이 깃든 꽃이 되었네.


여기 원이엄마 편지를 몇 줄 훑어본다.

438년 전 약탕에 약이 식기도 전에 고성 이씨 응태남편이 31살에 죽었다.

아내인 원이엄마는 한글 편지를 미투리와 함께 관속에 넣었다. 

미투리는 얼른 나아서 밖으로 마을로 돌아다녀라는 마음에서 삼과 머리카락을 삼은 신이다.


<편지내용>


원이 아바님께.

자네 머리 희어지도록 살다가 둘이 함께 죽자 하시더니 어찌하여 나를 두고 먼저 가시는고.

남도 우리같이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요.

자네 향한 마음은 이승에서 잊을 수 없으니 이내편지 보시고 내 꿈에 찬찬히 와 밴 자식 태어나면 누구를 아비 하라 하시는고 이런 천지이득 한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


남편이 그리워 이별의 아픔을 한글로 쓴 편지.

이 편지를 보고 나는 느껴 본다.

이 당시 선비양반들은 한문으로 시와 편지를 기록하였다.

다섯 글자씩 묶어서 시를 지었다.

한 시 같은 것은 해석하기 따라 내용이 다르다.

세종임금이 백성을 위해 한들을 반포즉시 한들만 사용하라고 명을 내렸다면 사회와 문화가 함께 발전하여 세계 제일가는 부국 선진국가가 창조되어 있을 것이다.

이렇게 좋은 한글을 제쳐두고 몇 안 되는 선비양반들이 거의 450년간 뜻도 해석도 모르는 한문 좋다고 저들만 아는 종놀이를 했었다. 


원이엄마요 당신께서 한글을 세로로 가로로 멋있게 잘 썼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새록새록 원이엄마가 그리워집니다. 

능소화 거리를 지날 때마다


팔월중순 안동사랑 최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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