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출신갑부(1)
퇴계. 서애. 학봉
임진왜란 전후에 나타난 안동의 삼현이다.
임진왜란이 터진 지도 벌써 432년이 흘러왔다.
1) 퇴계이황은 젊었을 적 벼슬을 하였으며 나이 들어서는 학문에 열과 성을 다했다.
서애와 학봉을 제자로 후학양성에 힘을 쏟았다. (퇴계가 죽은 후 22년 뒤 왜란이 발생)
2) 서애 류성룡은 퇴계의 제자로 영의정까지 올랐으며 이순신을 등용하여 조선을 지켜냈다.
그 후 징비록을 저술하였다.
3) 학봉 김성일은 퇴계의 제자로 선조 때 노론소론 남인북인 당파 싸움 할 때 어쩔 수 없이 당론을 따랐지만
왜적의 침공으로 파죽지세 조선을 먹어 버릴 때 경상우도 관찰사로 봉직 중 진주성대첩에서 병마절도사 충무공 김시민장군과 장수로 전장에 나가 왜군과 싸우다 장렬히 순국하였다.
안동에는 삼현의 맥락이 주욱 삼 백 년간 이어져 오다가 쇠퇴하여 1905년 을사조약, 1910년 한일합방 일본의
침략으로 양반은 몰락하고 또다시 34년 11개월간 주권 없는 식민지배 노예로 살아왔다.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립투사를 배출한 안동 초대국무령 이상룡과 여성투사 남좌현에 이르기까지 가산을 모두 팔아 독립군자금으로 썼다. 그래서 안동출신 큰 갑부가 나오질 않는다?
안동출신갑부(2)
선진국 차원에서 볼 때
역설적으로 웅부 안동이 재정자립도 11 퍼 가장 못 사는 자치제라서 가장 한국적인가?
기와집이 가장 많아서 한국적인가?
선진국이라 함은 경제적으로 부의창조 물질 풍요로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장서(책) 300권 이상 2개 외국어 구사할 줄 아는 사람, 부동산(집) 제외한 현금성 자산 백만 불 이상을 소유해야 선진국민 중류층이라 할 수 있다.
서애 류성룡의 후손 류찬우가 설립한 풍산그룹을 부자기업 반열에 올려놓을 수 있다. 류찬우 전 회장은 알찬 기업을 일구어서 한 우물만 팠다. 사립 풍산고등학교를 설립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있으며 풍산그룹을 물려받은 그의 아들 류진 회장은 한국경영자협회(전경련) 회장을 맡고 있다.
직원수(3600명)로 볼 때 현대차의 5 퍼이지만 알찬 기업이라 할 수 있다. 매출 규모로 한국 70대 기업에 랭크된 류진 회장의 인품이 훌륭하니 한경련회장이 될 수 있었다.
참고로 진주시 지수면 지수초등학교 출신 중에 한국 100 대기업 중 30개 기업이 포진해 있다.
삼성 이병철가문 엘지 구 씨 가문 지에스 허 씨 가문 효성 조 씨 가문이 진주 지수초등학교 출신이다.
일제강점기 독립군자금으로 전부 써 버려서 그런지 안동출신 큰 부자가 안 보인다. 그나마 풍산그룹 류진 회장이 버티고 있으니 대단한 일이다.
부자는 권력과 결탁하여 시대에 맞게 수그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안동인은 곧은 성격 때문일지 모른다.
퇴계와 학봉 자손 중에 백대기업에 속한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큰 기업은 하고 있는데 안동 출신을 감추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퇴계는 청량산 기질 닮아 온화한 성품으로 학문에만 몰두해서 경제의 부 창출을 멀리 해서인가 현세대의 물질문명만능 세대를 받쳐줄 큰 부자는 창출되지 않고 있다.
9대 진사 12대 만석꾼 재력가인 경주 최부자는 노블리에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독립군자금을 대면서도 근방의 백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지금으로 말하면 종사원을 먹여 살렸으며 인재양성을 위해 영남대학교를 설립하는 자금과 큰 공을 세웠다.
지난 일요일 아버지로부터 장문의 톡이 왔다. 제목까지 달려서 두 편. 안동출신갑부(1)과 안동출신갑부(2)다. 이렇게 브런치에 정리하고 보니 무얼 말하려는지 60 퍼 정도 알 거 같다. 60 퍼를 안다고 함은, 아버지가 안동에서 나고 자라 진주에도 살았고 현재 안동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퇴계도 아니고 학봉도 아니고 서애도 아니다. 다만 안동 역사를 안다. 아버지는 뵐 때마다 "진주 인구가 얼마냐? 갈수록 느는구나. 안동 인구는 갈수록 준다. 어쩌면 좋으냐?"라고 말씀하신다.
아버지는 역시 오리지널 안동출신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