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골목을 찾아가 본다
다 까놨다~
살 벗기 놨다~
보드랍~다~~
참말로 좋다~~
떠리미다~ 이거 다 오천 원에 가지가뿌라~ 기분이다~
솔깃한 유혹. 그것이 호박잎 벗긴 거 혹은 고구마줄기 벗긴 거 아니면 다른 나물 벗긴 거 뭐든 중요하지 않다. 발걸음이 멈출 수밖에 없는 호소, 한없이 다정한 마음, 새댁이 아님에도 새댁이라고 곱게 치장하여 부르는 언어. 새디야~라고 들리는 순간 네? 저요? 할머니 왜요? 뭐가 필요하세요? 뭘 사드릴까요? 뭐든 말씀만 하세요~라는 본능적 충동이 인다. 다 까놨다~손질을 다 해놓았다는 거다. 너는 그냥 먹기만 하면 되는 거야. 살 벗기 놨다~ 아까운 속살이 다치지 않게 껍질만 얇게 살살 벗겨놓았으니 니가 굳이 수고스럽게 껍질 벗기는 귀차니즘을 겪지 않아도 된다는 거. 보드랍다~ 얼마나 잘 벗겨놓으셨는지 차마 그 말을 어찌 다 형언하리. 그 어떤 속살보다 부드럽다는 거. 보기만 해도 만져만 봐도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라는 거. 이쯤에서 남편(나)마저 뭐하노? 보드랍다 안카나? 빨리 사자~라고 야단이다. 참말로 좋다~ 더 말해서 무엇하리, 다른 어떤 거보다 참으로 진실되게 좋다는 거. 결국 구입할 수밖에 없다는 거. 할머니~얼마예요~가 자연스레 뒤따른다.
시장 가볼래? 하고 아내가 말한다. 그래~ 하고 얼른 채비한다.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집에서 나선다. 도로를 건너 김시민대교를 지난다. 남강 둔치 자전거길을 따라 쭉 간다. 이어서 상평교가 나오고 진양교가 나타난다. 진양교 아랫길을 지나면 뒤벼리가 나온다. 뒤벼리길을 지나면 동방호텔이 나오고 진주교가 보이는데 여기가 종착점이다. 다리 아래 두 자전거를 묶어두고 배낭을 메고 진주성 공원으로 오른다. 공원을 가로질러 시내로 들어가 거리 복판에서 두리번거린다. 치기 어린 시절 많이도 돌아다녔던 거리. 그 옛날 그렇게도 많았던 사람들. 지금은 차 없는 거리에 차가 다니고 사람들로 북적였던 길에 차만 다닌다. 우리가 차 없는 거리를 지나 교차로 앞에 서니 진주 중앙시장이 눈앞에 두둥~ 보인다. 도로변에 누군가 단속하는 장면이 보이고 할매들은 느릿느릿 정리하는 모습이 보인다. 새벽시장이 이제 막 끝난 거다. 그러면 길가 어디선가 "떠리미~ 떠리미~(떨이)"라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고개 돌리면 "새디야~ 곱다~"하고 선빵 날린다. 이윽고 "보드랍다~"하면 그냥 KO 되어 넙죽 사들게 된다.
보드랍다, 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일요일 아침이면 중앙시장에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