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광장 탁구 리그전
진주시 이현동에 소재한 광장 탁구장. 이곳은 시에서 관리하는 유일한 탁구장이다.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른다. 최소 사십 년은 되리라 짐작된다. 아주 오래된 유구한 역사의 탁구장. 어릴 적 중학생 때 친구랑 똑딱 탁구만 쳐본 기억이 있는 곳. 성인이 되고부터 가보지 못한 곳. 이제 본격적으로 탁구 친지 5년째. 격주 일요일 낮에 리그전이 열린다. 일요일 저녁이면 리그전 결과가 진주시 탁구 밴드에 고스란히 올라온다. 그러면 누가 누가 출전했나 입상했나 떨어졌나 다 보게 된다. 현재는 진주에서 유일하게 꾸준히 그리고 어딘가 공식적인 냄새를 풍기는 광장 리그다. 오픈 대회가 아닌데도 진주에서 가장 오래되고 시에서 관리하고 넓은 공간이라 그런지 공적인 대회 같기도 하다.
나는 여태 한 번도 참여하지 못하다가 드디어 도전하게 되었다.
새해 첫 리그전, 하위부는 1시 반부터 시작하고, 상위부는 3시부터 시작한다. 하위부는 남자기준 8부~7부고 여자는 8부~4부다. 상위부는 남자 6부~1부고 여자 3부~1부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었을 때 구장에 도착하니 한창 하위부 예선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구장 소속 후배가 눈에 들어왔다.
반가웠다. 그리고 주변에 몇몇 다른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왜 이제야 왔을까. 그들 나름 최선을 다해 게임을 즐기는 얼굴이었다. 용기가 없었다. 이런 비공식 리그전 같은 경우, 리그전만을 전문적으로 다니는 꾼들이 많다. 그들이 두려웠다. 꾼들은 오랜 구력을 앞세워 온갖 기술로 상대를 요리한다. 나는 그들의 요릿감이 되기 무서워 리그전 참가를 주저했다. 근데 되돌아보면 또 그게 무슨 상관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 구장 누군가가 말하길 광장 리그전이 도움이 참 많이 된다고 했다. 체육관이 크고 넓어서 실전처럼 느껴지고 생소한 이들과 게임하니 다채로운 경험으로 공부가 된다고 했다. 그 말이 일부 맞다고 생각되었다. 진주시 탁구인들은 자주 보다 보니 얼굴이 생소하지는 않지만 막상 게임해 볼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들이 꾼이라고 하더라도 나보다 고수가 아닌가. 같은 구장 사람들이야 매번 만나던 상대라 장단점을 알고 하는 것과 서로가 아예 특성을 모르고 하는 것. 이것이 큰 차이다. 그래서 실전 대회처럼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이다.
광장 끄트머리 12탁 4명인 조에 배정되었다.
처음 여성 3부 선수와 게임했다. 이 분은 롱핌플 전형. 남자부수로 환산하면 같은 6부지만 여성핸디 1점을 주고 시작했다. 5대 0까지 끌려갔다. 여성분의 스매싱을 맞고 저 멀리 공 주으며 생각하길, 큰일 났다. 이대로 한 점도 못 뽑고 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우리 구장 사람도 지켜보는데 그리고 평소 아는 사람도 많은데 괜히 리그전에 와 개망신당하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 가슴이 두근거렸다. 괜히 왔구나. 그냥 산이나 갈걸 하는 후회. 심판 보는 사람, 뒤에서 우리 게임을 지켜보는 선수들, 저마다 수군거리겠지 싶었다. 꾼들의 요릿감이 되는구나. 그때부터인가 힘이 빠져서 에라이 몰라, 될 대로 돼라 하는 심정으로 시험을 시작했다. 커트를 주고 민볼싸움, 상회전을 주고 루프를 걸어보고 이게 통하나 하는 시험. 서브도 방향을 바꾸어 다양하게 넣었다. 그러자 웬걸 2세트를 먼저 따내고 있었다. 그때 상대 여성분(나보다 연배가 높음)께서 "그렇게 세게 때리지 않아도 돼요"라고 말하기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나는 공 하나하나 한방 드라이브로 전부 제끼며 공격하고 있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당신이 이기니까 살살하라는 덕담 같았다. "아, 죄송합니다" 하고 그제야 설렁설렁 게임했다. 그러다 보니 전세는 뒤집어져 3대 2로 역전패했다. 그래도 괜찮았다. 망신은 당하지 않았으니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두 번째 상대는 광장에서 몇 차례 우승했던 전력의 4부 남성이었다. 안티러버인가, 미들을 쓴다고 알려주는데 나는 미들러버의 특성을 모른다. 그냥 롱핌플과 숏의 중간쯤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아무튼 그분은 연습하듯 이런저런 플레이를 하는데 수비수처럼 게임하는 전형이다. 어찌어찌 최선을 다해 때리니 3대 1로 승리했다.
세 번째 상대는 이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펜홀더 6부, 점점 성장하는 선수다. 최근에 6부로 승급하였다고 한다. 이 선수가 직전 롱핌플 여성을 살랑살랑 다루며 아주 쉽게 승리하는 걸 보았기에 나는 한층 긴장하여 게임에 임했다. 1세트에서 10대 7로 끌려가다가 뒤집었다. 2세트에서도 10대 7로 지다가 뒤집었다. 3세트에서는 비교적 쉽게 승리했다. 3대 0.
나는 조 1위가 되었고 6부 젊은 펜홀더가 2위, 4부 미들이 3위, 롱핌플 여성분이 4위가 되었다. 여성분이 오더지를 보며 "나~ 한 명 이겼는데도 꼴찌가?"라고 말해서 뜨끔했다.
본선 1회전은 부전승이라 먼저 심판을 보았다. 이후 1회전에서 4부 고수와 붙어 3대 1로 패했다. 이로써 리그전이 끝났다. 짐을 싸 아는 이들에게 인사하고 나왔다. 어딘가 깔끔했다. 토너먼트에서는 패하면 그대로 짐 싸 집에 가면 되는 거다. 괜찮았다. 만족했다.
중학생 때 친구들과 이곳 탁구광장에 기웃거리며 탁구 친 적이 있다.
누가 누가 더 잘하나 내기도 하고 승부를 가린 적이 떠오른다. 친구의 공격을 막지 못해 게임에 지고 저 멀리 굴러간 공을 가지러 가니 옆에서 멋지게 스윙하던 어른들. 그때는 모두 선수 같아 보였다. 나는 언제쯤 저리 쳐보나 동경하던 모습. 탁구를 재미로 치는 시절은 졸업사진처럼 하루씩 찰칵찰칵 지나가버리고 어느덧 중년이 되었다. 선수는 아니지만 매일같이 치고 있다. 광장 리그전이 진행되는 중 맨 끄트러미 빈 탁구대에서 탁구 치던 어린 학생들. 어느덧 나는 중학생들 옆에서 탁구 치는 어른이 되었다. 그중 하나가 공 주으러 곁에 왔다. 공 줍고는 물끄러미 쳐다보는 눈길. 어느새 그리되었구나. 탁구 치는 어른이 되었구나. 방금 나 멋지게 드라이브 걸었지? 광장 리그전. 처음이지만 괜찮았던 하루.
진지한 눈으로 한 점 한 점 열심히 겨루는 정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