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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리그전의 세계

서서히 적응하는 과정

by 머피



처음이 어렵지.



다만 그 처음이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오랜 망설임이 있었던가. 지역 리그전. 끝나면 탁구 밴드에 성적이 고스란히 공개. 능력자들만 가는 곳. 괜스레 갔다가 망신만 당하는 건 아닌가? 갔다가 놀림만 당하는 건? 비웃음 살 구실만 주는 건? 한심하다는 눈빛? 불쌍하다는 시선? 안타깝다는? 외부인이 여길 왜? 니가 올 곳이 아니라는? 그러게 가지 말지...


게다가 하위부 리그전도 아니고 상위부다. 상위부는 선출부터 6부까지다. 제일 낮은 6부라 하더라도 이른바 꾼들이 바글바글하다. 꾼들이란, 십 년 이십 년 구력을 가졌어도 일부러 승급하지 않고 리그전 상품 따먹기를 즐기는 이들을 가리킨다. 낮은 부수로 버티며 오픈 대회 개인전은 패스하고 단체전 상금만 노리거나, 이렇게 동네 리그전을 다니며 나 같은 양민을 학살하고 상품만 타먹는 사냥꾼이라 지칭할 수 있다. 그런 꾼들에게 당해서 내상을 입은 이들이 얼마나 많던가. 주변에서 내상 당한 이가 꾼들을 욕하며 다시는 대회나 리그전에 가지 않겠다는 이도 옆에서 보았다. 꾼들은 자기네 구장에서는 4부, 3부, 2부로 놓고 치면서 지역 리그전이나 대회에서는 공식 6부로 등장한다. 나 같은 양민 6부는 실제 두 세 부수 높은 이들과 다이다이로 겨루는 것이다. 다이다이는 핸디 없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를테면 막놓고 친다라고도 한다. 막놓고 막 치면 승부가 되겠는가? 거의 3대 0으로 깨진다. 그것도 어느 정도 비슷하게 따라가기라도 했다면 '졌잘싸'가 되겠지만 일방적인 결과는 허탈한 심정만 남게 한다. 그리고 문득 주변의 눈길이 의식된다. 비웃음, 한심, 불쌍, 안타깝다는 시선. 현타 현타 현타. 나는 왜 여기 왔는가, 다시는 오지 말아야지, 로 귀결된다. 이것이 나 같은 양민이 리그전을 기피한 이유다. 하물며 하위부 리그전은 패스하고 상위부 리그전이라니... 그냥 지나간 7, 8부 시절이 아쉽다.


다행히 첫 리그전에서 결과가 괜찮았다.


두 번째 도전에서는 장려로 입상까지 했다. 상위부 리그에서 입상이라니? 그렇게 두려움은 자신감으로 발전했다. 나도 통하는구나. 막연하게 두렵던 뽕도 해볼 만하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뽕(핌플아웃러버) 공포증이 있다. 지역 리그전 상위부는 뽕들의 천국이다. 먼저 롱뽕을 얘기하자면, 롱뽕은 대는 뽕과 커트 뽕으로 나눈다. 대는 뽕은 보통 여성이나 노년층 분들이 많다. 커트 뽕은 생체에서 수비형으로 뛰는 남성 분들이 많은 편이다. 대는 뽕은 하회전 서브를 보내면 뽕~ 소리와 함께 민볼이 돌아온다. 이 원리를 모를 때는 민볼도 하회전으로 보이기에 대뜸 커트부터 하기 마련이다. 그러면 붕 뜨고 스매싱을 맞게 된다. 너 뽕 타는구나~라는 비웃음도 같이 맞는다. 이 공이 아무리 짧고 천천히 오더라도 이것은 맨공이기에 민볼 드라이브를 걸거나 플릭으로 공략하면 된다. 반대로 상회전 드라이브성 공을 보내면 뽕~ 소리와 함께 하회전으로 돌아온다. 이걸 모르고 쇼트나 맨공 스트록을 걸면 푹 꺼져 네트행이 된다. 이럴 땐 커트를 하거나 루프를 걸면 된다. 길게 올 때는 커트볼 전진 드라이브를 걸어도 된다.


두 번째 수비형 커트 뽕 스타일이 어쩌면 더 어렵다. 이런 분들은 대개 고수가 많다. 일단 전부 깎기 때문에 맨공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많이 깎이거나 적게 깎이거나의 차이다. 그래서 이런 분들과 랠리 할 때는 루프를 걸고 커트 주고를 반복한다. 루프를 걸면 하회전이 많이 걸려 돌아오기에 커트로 주고 커트 준 볼은 그나마 적게 깎여서 돌아오기에 루프를 걸 수 있게 된다. 고수는 루프가 아니라 전진 드라이브를 걸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이론상으로 알고 있더라도 막상 게임에서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


결론은 게임을 많이 해봐야 하는 거다. 경험을 많이 쌓아야 본능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된다. 나는 고수에게 물었다. 뽕은 어찌 상대하냐? 특히 양뽕은? (한쪽면에 롱뽕, 다른 면에 숏뽕) 이때는 공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들었다. 상대의 스윙이나 라켓면을 보고 판단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게임 중에 일일이 롱이니까 반대로 오겠지 했는데 순간 라켓을 돌려 숏으로 대거나 커트를 하지 않고 그냥 대거나 무한한 변화를 주며 리턴되는데 하나하나 계산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공을 보고 판단한다. 이 말보다 어려운 말이 있을까? 순간 동체시력이 얼마나 뛰어나야 할까? 난 시력이 그리 좋지 않은데? 공 보고 판단하는 게 반드시 눈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같은 커트를 대더라도 어떨 땐 높게 뜨고 어떨 땐 낮게 뜬다. 랠리 하다 보니 상대의 스윙에 따라 처음은 많이 깎이고 두 번째는 적게 깎이는구나, 를 깨닫게 된다. 그러면 적게 깎일 때 전진 드라이브를 걸면 된다.


아, 이것을 경험하고도 나는 전진 드라이브를 걸지 못하고 스매싱만 날리고 있다.


다음엔 꼭 커트량 적은 공, 너클 공을 제끼는 드라이브를 걸어야지 생각만 하고 있다. 가만 돌아보니 동네 리그전은 꾼들과의 싸움, 즉 뽕들과의 전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뽕이 아니더라도 꾼들은 어쩌면 최고의 사파전형, 그들만의 시스템 탁구를 구사한다. 그런 시스템에 빠져 망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리고 대응해야 한다. 대응하다 보면 어느 정도 돌파점을 찾게 된다. 그렇게 늘 패하기만 하던 상대를 마침내 이겨 낼 때, 주변의 시선이 변한다. 많이 발전했구나. 전에는 영 못하더니 많이 늘었네. 이게 무슨 일이야? 왜케 잘해? 실력이 올랐구나. 다시 보게 된다. 오늘 우승하려고 왔나? 비록 인사치레 헛말일지언정 칭찬을 듣게 되었다. 나는 올라가고 있구나 생각이 들어 기뻤다.


더는 망신당하지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


여기까지 오느라 깊은 불안의 바다에서 둥실둥실 헤매다 드디어 수면 위로 쏘옥 고개를 내밀었다는 생각. 그러면 계속 헤엄치면 되는 건가? 등대 빛이 보이니 저쪽으로 가면 되겠구나 하는 방향. 마침내 도전할 수 있는 단계가 되었구나 하는 위치. 그러면 계속 도전해도 되겠구나 하는 자신. 그러면 전진하겠구나 하는 예상. 대회에 도전하기까지 참 많이 걸린 실력. 도전 그 자체만으로 무한한 기쁨. 게임이 끝나고 주먹을 맞대며 인사한다.


수고하셨습니다. 잘 쳤습니다. 오늘도 많이 배우고 돌아갑니다.



탁구1.jpg 도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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