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만세 Jun 20. 2022

우리가 돈이 없지 영혼이 없냐

돈이 안 되는 좋은 것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부터 저는 돈이 안 되는 것만 좋아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꼭 그렇진 않았지만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정도의 생각으로 그럭저럭 지내왔는데요. 언제부턴가 그게 문제로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세상 사람 모두가 좋다고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들에 대해 나만 잘 모르고, 공감하지 못하고, 심지어 흥미조차 느끼지 못하는 스스로에 대해 열등감 같은 게 생겼달까요. 지금껏 나도 모르게 가성비와 효율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서 포기를 계속해왔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제는 욕심조차 내지 않게 된 것이 아닐까, 취향을 가질 기회를 스스로 박탈한 것은 아닐까··· 이런 마음들로 한없이 초라해지던 때가 있었죠.


인생의 어쩌면 중요했을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선택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만하고 싶다'도 포함해서요. 돈을 안 벌어도 된다면 지금 난 뭘 하고 있을까? 하고 질문을 던졌으니, 그 답도 돈이 되는 방향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예를 들면, 빚더미에 올라앉은 상황에서 더 이상 회사에 다니지 않겠다고 사표를 내고, 작은 옥탑방에서 노을과 라디오에 만족하면서 돈이 되지도 않는 그림을 그리는 일 같은 것 말이에요.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궁금합니다. 어떤 선택이 돈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그건 나쁜 선택일까요?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를 가장한 백수)로 살던 시기에 윤만세라는 이름으로 처음 아트웍을 만들었습니다. 지구에 놀러 온 여행자처럼 살고 싶다는 바람으로 그림을 그리고 <Walk the earth>라고 이름 붙였죠. (이름이 비슷한 밴드 Walk the moon의 영향이 매우 컸어요.) 엽서와 포스터를 가지고 소소시장(소규모 창작물을 위한 플리마켓)에도 나갔습니다. 천 원짜리 엽서를 온종일 팔고 5만 원 정도를 벌었어요. 도와주러 온 친구는 이렇게 천 원씩 팔아서 어떡하냐, 이래서는 돈이 안 된다···고 걱정했지만, 저는 회사에서 월급을 받을 때보다 기뻤습니다. 누군가 내 그림에 대해 물어봐 주고 좋아해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지구를 돌아다닐 때마다 들고 다녀서 꼬질꼬질해진 에코백


고백하자면, 저는 돈과 무관한 것만이 진짜고 진심이라고 여기는 경향이 습니다. 에어비앤비보다는 카우치서핑으로 만나야 진짜 친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때문인  같고요.  걱정 없는 집에 태어났다면,  걱정을  해도 됐다면, 힘센 가족의 도움을 받을  있었다면,  멀리 훨훨 날아갈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서 저는 에피소드 부자가 됐습니다. 생각해 보면 제가 카우치서퍼가  것도, 여행을 모험처럼 하게  것도 사실은 돈이 없었기 때문이거든요. 덕분에 저는 기꺼이 나를 도와줄 좋은 사람이 세상 어디에나 있다는  알아요. (망할 놈도 어디에나 있지만) 사람을 ‘믿는  얼마나 많은 비용을 줄여주는지 알아요. (그걸 ‘신뢰 자본이라고 하더라고요.)


Walk the moon <Anna Sun>이라는 곡에 이런 가사가 니다.


We got no money, but we got heart



우리가 돈이 없지, 영혼이 없나요? 

그래서 돈이 필요 없다거나, 돈을 벌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다만, 지금까지 운이 좋다는 말로 퉁쳐왔던 모든 것이 사실은 다른 사람의 선의 덕분이었다는 것, 돈이 너무 없었지만 돌이켜보니 그때가 인생의 황금기였다는 것, 많은 갈등과 괴로움이 돈 때문에 생기지만 돈이 안 되는 어떤 선택은 좋은 것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그게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세계이고 제가 믿는 구석이에요. 저는 돈을 많이 벌 거지만, 비록 돈이 진짜 많아지더라도, 맑은 하늘에 기뻐하고 매일 보는 일몰에 매일 감탄하는 마음만큼은 잃고 싶지 않아요. 돈이 안 되는 좋은 것들은 정말이지 돈 주고도 못 산다니까요.







흠, 이거 흥미로운데?라고 느낄 법한 콘텐츠를 격주로 전달하는 흠터레터의 <완전진짜너무진심> 코너를 브런치에도 옮깁니다. 흠터레터를 구독하시면 다른 꼭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 자신이 되는 것에 중점을 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