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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만세 Jul 17. 2022

계획이 없다는 건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

우연히 만난 최고의 순간

저에게 6월은 일 년 중 가장 바쁘고 정신없는 달이에요. 일 년의 절반이 지났으니 상반기를 정리하고 그 교훈을 바탕으로 하반기의 계획을 짜야하거든요. 우리 팀의 가까운 미래가 6월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면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요. 이런 중요한 시기에 저는 기어코 휴가를 갔습니다. 제주도를 왕복할 수 있을 정도의 마일리지가 조만간 사라진다고 하기에, 마침 동료가 혼자 제주도에 있을 예정이라고 하기에 제주행 비행기 표를 예매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핑계가 좋죠?


제주도로 떠나는 날에는 재택근무로 조금 일찍 업무를 마무리하고 산뜻하게 출발할 참이었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휴가 전까지 결정해야 하는 것들, 결정을 위해 이야기해야 하는 것 투성이라 최선을 다해 바삐 움직여도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이 휴가를 가고야 말겠다는 몸부림에 가까운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대충 짐을 쓸어 담고 공항으로 부리나케 달려갔습니다. 내일부터 제주도는 줄곧 비 예보라 동료가 튼튼한 우비 하나 사 오라 했지만, 그마저도 못했어요. 변경할 수 있는 가장 늦은 시간으로 출발 시간을 바꿔두지 않았다면 비행기를 못 탈 뻔했죠.




땀범벅이 된 채로 무사히 자리에 앉았어요. 이게 얼마 만의 여행인가, 추억에 빠질 틈도 없이 비행기는 곧장 날아올랐습니다. 중력을 거스르면서 건물들이 빠르게 멀어졌고 어깨를 누르고 있던 조바심,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대한 걱정들도 함께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어요. 그 와중에도 해가 지는 걸 볼 수 있지 않으려나 싶어 진지하게 비행기 방향을 고려해 서쪽 좌석을 선택했던 게 떠올라서 잠깐 웃었습니다. 나도 참 나다, 생각하는 순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어요. 엊그제가 하지였으니, 요즘이 일 년 중 해가 가장 긴 시기잖아요. 흐린 날이었지만 구름 위에서는 여전히 해가 빛나고 있었고, 잔뜩 깔린 구름과 함께 환상적인 빛을 뿜어내고 있었죠. 어쩌면 이 시간에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이 광경을 보기 위해 비행기 시간을 미루게 된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멋진 하늘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별수 있나요. 시시각각 달라지는 하늘빛에 감탄하며 제주에 도착할 때까지 창문에 딱 붙어있을 수밖에요.


구름 위에서



그러고 보니 저는 목적지보다 목적지로 가는 길이 더 좋았던 적이 많습니다. 예정에 없던 우연의 순간들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생생하게 남는가 봐요. 여행에서도, 일상에서도요. 지금 제주에 도착하기 전 이야기만 잔뜩 늘어놓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사실은 제주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어요. 목적지로 가는 길에 매력적인 가게가 나타나면 메뉴를 바꾸는  다반사, 좋아 보이는 카페가 지나치는  보고 하차 벨을 누르기도 했어요.  번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화장실 때문에 갑자기 버스에서 내렸는데요. 공중화장실을 검색하다가 지도 위에서 ‘만춘서점' 발견했어요. 김민철 작가님의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에서   만춘서점인가? 제주에 가면    들러 봐야지 하고는 까먹어버린 바로  서점이. 화장실로 가는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아니겠어요? 이렇게 우연히 만나다니. 계획도  세우고  뚜벅이에게 이렇게  선물이라니! 우리는 목적도 잊은  만춘서점을 한참 구경했습니다. 기념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권씩 고르고, ‘만춘서점' 쓰인 라이터랑 펜도 샀어요. (사장님이 화장실을 빌려주셔서 목적도 달성했지요.)



만춘서점에서



 명의 싱어송라이터와 함께 만든 만춘서점 3주년 기념 앨범 <우리의 만춘>에서는 반가운 이름도 만났습니다. 오래전 좋아했던 밴드 스웨터의 보컬, 이아립 님이요. <그리고 그려 그리고 >. 좋아했던  곡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들으면서 생각했습니다. '계획이 없다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뜻이기도 하구나 라고요.




제주 공항 편의점에서 급하게 산 우비를 꺼낼 기회는 결국 오지 않았습니다. 그 뒤로도 비 예보는 2시간씩 미루다가 아예 사라져 버렸죠. 날씨도 이렇게나 약속을 지키지 않는 마당에 계획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걱정만 하고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지 않나요? 한 번쯤은 계획 없이, 열린 마음만 가지고 떠나봐도 좋을 것 같아요. 바뀐 길 위에서 반가운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르고, 생각지 못한 좋은 걸 발견할지도 모르니까요.





흠, 이거 흥미로운데?라고 느낄 법한 콘텐츠를 격주로 전달하는 흠터레터의 <완전진짜너무진심> 코너를 브런치에도 옮깁니다. 흠터레터를 구독하시면 다른 꼭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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