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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만세 Oct 10. 2022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거나

맨체스터 오케스트라 : Inaudible

‘다시는 회사를 다니지 않겠다’고 결심했던 서른 살에는, 이렇게 누구보다 열심히 회사에 다니고 있을 줄 몰랐어요. 애당초 직장인이 될 생각도 없었으니까요. 난데없이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 이유는 제가 요즘 스트레스의 터널을 통과 중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고민이 있구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구나’하고 자각하지 못하는 편이라 지금껏 멘탈이 강한 줄 알고 살았는데. 이번만큼은 분명합니다.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어요. 고민 속에서 허우적대는 나날을 보내면서 매일 밤 생각의 늪에 빠져 잠이 들어요. 꿈에서도 집요하게 따라붙은 스트레스를 벗어나지는 못합니다.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지는 것 같고, 눈뜨면 가장 먼저 그 생각이 나고, 해결하려고 애쓰다가 잠에서 깨곤 하죠.



여느 때처럼 잠들지 못하고 이런저런 해결책을 궁리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작게 틀어둔 라디오에서 이 음악이 흘러나올 때까지는요. 와. 좋은 음악이다. 좋은 밴드를 발견한 것 같다, 직감했습니다. 맴돌던 생각을 잠시 멈추고 볼륨을 올렸죠. 굳이 비유하자면 Of Monsters and Men을 처음 들었던 순간처럼 두근거렸어요. 멜로디가 귀에 착 감기고, 환상적인 사운드가 마구 몰아치면서 다채롭게 펼쳐졌어요. 가사를 알아듣지 못하면서도 마치 기승전결이 선명한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 음악은 근심 걱정의 늪에 빠진 나를 단숨에 건져 올렸고, 보이지 않는 장막을 뚫고 지구 밖으로 날아올랐어요. 언제 그랬냐는 듯 무한대로 자유로워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이 놀라운 곡은, 맨체스터 오케스트라의 <Inaudible>입니다.


‘스트레스는 호랑이와 같다’는 말 들어본 적 있나요? 산속에서 갑자기 호랑이를 만나면 얼마나 무섭겠어요.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혈압이 높아지는 그때, 사람은 평소의 몇 배나 되는 초인적인 힘을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게 바로 스트레스가 만들어내는 변화인데요. 살기 위해 순간적으로 내는 에너지의 원천이 스트레스라는 거죠. 선택지는 둘 중 하나예요.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거나. 


그래, 난 지금 호랑이를 만난 거구나.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했어요. 저는 지금 호랑이 세 마리를 한꺼번에 만난 거예요. 하나는 무조건 해치워야 하는 놈이고, 하나는 잘하면 친해질 수 있을 것도 같고, 하나는 발에 가시가 박혔는지 좀 아픈 녀석이라 도와줘야 할 것 같아요. 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호랑이에게 맞설 준비가 조금은 되었나 봅니다. 결국 시작은 내 마음을 바꾸는 것,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순식간에 나를 다른 세계로 끌어내 마음을 고쳐먹게 하는 음악에 감탄하는 경험 말이에요. 심플하게 살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모든 게 그리 단순하지는 않잖아요. 때로는 내가 묶지도 않은 실타래를 내가 풀어야만 해요. 하지만 너무 억울해하지는 않으려고요. 하나둘 실마리를 풀어가다 보면 의외로 호랑이와 친해질 수도, 결코 배신하지 않는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맞서기 위해 앞으로 한동안은 이 음악의 힘을 빌려볼까 합니다.





흠, 이거 흥미로운데?라고 느낄 법한 콘텐츠를 격주로 전달하는 흠터레터의 <완전진짜너무진심> 코너를 브런치에도 옮깁니다. 흠터레터를 구독하시면 다른 꼭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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