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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만세 Oct 22. 2022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

피터팬 컴플렉스 단독 공연에 다녀온 이야기

“홍대 진짜 오랜만에 온다. 이제 여기 올 나이는 아닌 것 같아서”

앞서 계단을 올라가던 사람들의 대화가 얼핏 귀에 걸렸어요. 엇, 나돈데. 심지어 홍대 앞에 평생 살고 싶다고 생각하던 때도 있었는데! 속으로 맞장구를 쳤습니다. ‘피터팬 컴플렉스’ 단독 공연 예매에 성공한 저는 공연을 보기 위해 정말 오랜만에 홍대 거리를 활보하던 참이었거든요.


포스터가 예술이지 않나요?


결국, 다녀왔습니다. 지지난 글에서 소개한, 스무 살이 된 ‘피터팬 컴플렉스’의 단독 공연에. 솔직히 스탠딩 공연이라 좀 걱정했어요. 몸이 예전 같진 않으니 무릎도 아플 것 같고, 2시간 동안 서 있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 싶었죠. 다행히 공연장 뒤편에 의자가 몇 줄 놓여있었고, 마침 한자리 비어있길래 냉큼 앉았습니다. 조용히 앉아서 음악 감상만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요.


곧 깜깜한 무대 위에 그림자가 나타났습니다. 무대를 가리고 있던 슬라이드가 올라가면서 연주가 시작됐죠. 그런데 어쩐 일인지. 노래할 타이밍에도 노래가 시작되지 않는 거예요. 마이크에 문제가 있는지 이상한 소리가 두어 번 났고요. 효과음인가? 잠시 생각했지만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습니다. 노래 없이 연주만 계속됐으니까요. 무슨 일이지? 술렁이던 관객들은 어느새 이렇게 외치기 시작했어요. 울지 마, 울지 마···.


보컬 전지한 씨가 공연 시작과 동시에 눈물이 터져버린 거였습니다. 7년 만의 단독 공연이라고 하니, 이렇게나 가까운 거리에 기다려준 팬들이 있으니 그럴 만도 하죠. 계속 이럴 거 같은데 어떡하지, 걱정하는 그에게 관객들은 손을 뻗어 휴지를 건네고, 또 손수건을 건넸습니다. 최대한 멘트 없이 진중하게 음악을 펼치는 게 오늘의 컨셉이라던 그는 마음을 진정시킨다는 명목으로 잔뜩 이야기를 풀어놨고요. 초대된 게스트들도 10년 넘게 봐왔지만 전지한 씨가 우는 건 처음 본다고 입을 모았으니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눈물쇼인 게 틀림없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여전한 캐릭터가 어찌나 웃기고 반갑던지요.


키보드 위에 휴지 쌓인 것 좀 보세요
무려 2014년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뿌린 가면을 가져온 분도 있었습니다


키보드 위에 코 푼 휴지가 수북이 쌓인 채로 공연은 계속됐어요. 앉아서 조용히 음악만 듣겠다는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죠. 의자에서 들썩이던 몸이 몇 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앞으로 튀어 나가고 말았으니까요. 밴드가 <You know I love you>를 부를 때, 저는 무대 앞에 서서 10년 전처럼 펑펑 울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멘트로 그는 “음악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사랑을 하고 사랑을 받기 위해서”라고 했어요. 여러분들이 음악을 계속하게 해주는 구원자라고, 고맙고 사랑한다고요. 마지막 앙코르곡은 그 감정을 농축시킨 곡 <감정을 삼키고>였습니다.


아주 오랜만에 옛 연인을 만나고 돌아온 기분이었어요. 둘만 아는 추억이 가득한 너랑 내가 만난 느낌. 수염은 희끗해지고 무릎이 아플 걸 걱정할 만큼 시간이 흘렀지만, 이 정도 시간이 쌓였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관계도 있지 않겠어요?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던, 어설펐지만 찬란한 시기를 함께 통과한 사이라는 건, 기억을 나눌 수 있는 관계라는 건 얼마나 고마운 것인지요. 요즘같이 맑은 가을날에는 하염없이 걸으며 이런 종류의 사랑의 관계를 하나하나 떠올려봐도 좋겠어요. 이 아름다운 발라드를 배경 삼아서요.






흠, 이거 흥미로운데?라고 느낄 법한 콘텐츠를 격주로 전달하는 흠터레터의 <완전진짜너무진심> 코너를 브런치에도 옮깁니다. 흠터레터를 구독하시면 다른 꼭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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