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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요 Mar 23. 2016

사담

치앙마이 온 지 6주 째가 된 오늘자 일상  


오늘은 일찌감치 일어났지만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 태국어 수업을 쨌다.




수업을 째고서, 잭이랑 오토바이를 타고 님만해민에 있는 "Organic Veggies" 라는 베지테리언 식당에 가서 마이 훼이보릿 메뉴인 가지&두부 볶음을 먹었다. 가지는 사랑스러운 식감을 가진 야채이다. 그래서 세상에 모든 것이 멸종하고 가지와 나만 남는다면 그래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밥을 먹는데 갑자기 잭이 우리랑 사는 건 어때? 하고 물어봐서 엄청 당황했다. 사실 너무 감사한 일이고, 나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완벽한 환경이다. 덕분에 혼자 섬처럼 머물다 갈 뻔한 치앙마이에서, 내 관심 분야에 닿아있는 많은 사람들과 접점이 생겼고, 거기서부터 나의 관계망을 넓혀갈 수 있었다. 잭과 카라와 조이도 완전한 이방인인 나에게 정말 친절하고 다정하고! 내가 만약에 내 친구들과 여기서 살고 있는데 왠 외국인 룸메이트가 들어오면 그렇게 잘 대해줄 순 없을 것 같다.고 잘 대답했다. 물론 완전한 진심이다.


애니웨이, 사실 우리의 원래 플랜은 "Beer Republic"에 가서 커스텀 피자와 맥주를 마시며 낮부터 흥청망청한 점심 식사를 하는 거였는데 문을 안 열어서 급 경건하게 채식주의 식단을 먹은 것이 아쉬워 세븐 일레븐에 들러서 맥주 한 캔씩 그리고 김 과자를 샀다. 규현이 떡 하니 광고하는 그 김과자가 맞다. 김을 처음 시도해보는 잭에게 이건 맥주랑 페어링이 끝내준다고 먹어보라했고, 좋아하면서 봉지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는 모습을 보고 왠지 뿌듯했다. 헤헷 두유 노 김 과자?


잭은 자연 환경 관광학과(?)를 전공한 친구로, 지금 중국 투어 프로그램에 최종 인터뷰까지 끝내놓고 답변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데, 이 인간들이 어제까지 답을 주기로 해놓고 아직도 대답이 없어서 속을 끓게 만든다. 취준생이던 나의 옛날이 떠올라 괜히 같이 화가 났다. 이런 얘기를 하다보니 맥주가 벌컥벌컥 먹혔다. 그러다가 너무 덥고 졸려서 선풍기 쐬면서 소파에 누워있다가 잠이 들었고, 깨보니까 잭도 어느새 자고 있었는데 선풍기 바람이 내 쪽으로만 와서 미안했다. 멋쩍게 선풍기 방향을 돌려놓으려다 뽀시락 거리는 소리로 깨움.. 자상함 실패.





요즘의 치앙마이는 그야말로 무더위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우 알유?하면 너무 더워!!!!!!라고 인사할 정도로 정말 덥다. 가만히 집에 앉아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른다. 그러다가 저녁이 되면 바람이 솔솔 불어서 자전거 타기 딱 좋은 날씨인데, 괜히 나가서 자전거를 타고 온다. 나는 요즘 자전거를 타는게 그렇게 재밌다. 술에 아주 조오오금 취한 채로 자전거를 타면 더 재밌다. 자전거 타면서 노래 부르면 왠지 노래도 더 잘 불러진다. 그래서 오토바이와 툭툭이 뿜어대는 매연 속에서 노래를 부르면서 자전거를 타다보니 목이 맛이 갔다.


아, 요즘 우쿨렐레 치면서 노래 부르는 거에도 재미붙였다. 혼자 띵띵 치는 건 별로 재미가 없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명씩 세레나데를 불러주고 있다. 코드를 좀 더 알게 되면 노래도 만들려고 10살 수준의 영어 가사도 썼다. 한글 가사는 아직 고난이도지만 언젠간 도전해볼끄야


이런 걸 보면 참 한량 체질이다. 다들 용기가 대단하다, 멋진 결정이다고 하는데 한량으로 살기를 선택한 걸 그렇게 봐주어서 정말 황송하기 짝이 없다. 돈을 조금 모은 다음에, 눈을 감고 내가 어디있으면 제일 행복할 지를 생각해본 다음에, 그대로 따라오면 되십니다. 당연히 가끔 불안해질 때도 있다가, 내가 요즘 애독하는 심리학 페이지의 글을 보고 크게 느꼈다. 나에게 있는 많은 감정들 중에서 왜 나는 불안이에게만 약하지? 불안은 나를 급한 선택으로 몰아넣고 즐거울 때 조차 100% 즐겁지 못하도록 만드는데, 그건 내가 불안에게 권력을 쥐어주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불안이 나를 좀 먹지 않게 다른 감정들에 더욱 힘을 실어주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에 와있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봤는데 결국 나는 스스로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1인 컨텐츠/미디어 제작자가 되고 싶은 것. 그래서 팔랑팔랑 돌아다니면서 모은 컨텐츠로 뭔가를 만들고, 돈을 벌고, 그 돈으로 또 다시 놀고 먹는 선순환 구조의 라이프를 가지고 싶다. 이를테면 겨울을 대비해두는 베짱이인데, 그러면 나이를 먹어서도 노래를 부르면서, 자전거를 타면서, 우쿨렐레를 치면서 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여기서 살다보니 느낀 건데 큰 집에서 살고 싶다. 그러면 종일 집에만 있어도 죄책감이 덜 든다.ㅋㅋ 그리고 가능하면 생활 공간이 여러 개 있는 집에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지내고 싶다. 왜냐면 집에만 있어도 풍성한 대화들이 가능하기 때문. 해은이랑 살면서도 많이 느낀 부분이다. 그러러면 서울에 살 수는 없을 것 같고. 지금 내 마음 속 1순위는 파주인데, 마음먹은 대로 인생이 움직여만 준다면 2-3년 안에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국으로 돌아가서 꾸릴 나의 삶도 기대가 된다. 일단 나와 함께 해줄 크루를 만들고, 집을 꾸리고, 저녁을 같이 해먹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뭐 굳이 결혼이고 가정이고 필요하게 될까 싶다.


전통적인 의미의 가족은 더 이상 나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 일단 1. 나는 별로 가정적인 사람이 아니고 2. 점점 가족들과 오히려 공유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생기는 걸 보면 3. 가족과 혈육이라는 사회 유닛의 기능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는 것이다. 그건 우리 사회가 급변하면서 세대간에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공유되지 않기 때문인 것 같고, 때문에 개인이 아무리 설명하고 이해하려고 해도 단절된 부분을 메울 수가 없다. 나는 정말로 냉정한 사람인 것만 같지만, 표면적이고 일상적인 대화만으로는 아무래도 깊은 관계라고 느끼기가 어렵다. 그래도 엄마, 아빠, 언니, 그리고 나의 1살도 안된 조카는 내가 사랑하는 게 맞다. 표현을 잘 못하지만. 특히 언니를 갈수록 더 각별하게 느끼게 되는데, 언니는 우리 사이에 어리광과 애교를 담당하고 있어서 한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지만, 사실은 내 삶에 닥칠 무수히 비슷한 상황을 먼저 경험해 본, 결혼과 임신과 출산까지 경험한!!!!어른이기 때문에 의지가 된다. 우리가 평생을 친한 친구로 지낼 것을 의심해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내가 느끼기에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내가 이제껏 선택해온 가족과, 앞으로 선택하게 될 가족들이 생길 것인데 (물론 선택은 쌍방이다) 그런 관계는 많은 부분에서 결혼이나 피로 맺어진 가족보다도 더 가깝게 느낀다. 나의 비전과 가치관에 공감하고, 우리의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다면 거기서 자극을 받고, 나의 선택을 응원하고 존중해주는, 서로의 인생을 훨씬 더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관계들이 있다. 운이 좋아서 정말 좋은 사람들과 부대끼고 있고, 앞으로도 더욱 특별한 것들을 같이 만들어가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우리가 우리만의 부족 사회를 만들 수 있기를 바라는 건 투 머치일까나ㅋㅋㅋ





항상 그냥 이런 저런 잡담을 하고 싶지만 쓰다 보면 글이 글을 쓰는지라, 자아 성찰이나 사회에 대한 얄팍한 이야기로 끝을 맺게 되어 머쓱하다.


다음에는 지금 사는 집에 대해서 진짜 팩트와 잡담만 쓸 것이야. 아 근데 지금 사는 집 이름이 '힙스터 타운 하우스'인데 가끔 이름이 부끄럽다. 스트릿 화장품 브랜드의 색조 이름 같이 오그라드는 부분이 있다. 왠지. 그래도 내가 살아본 집들 중에 제일 좋은 곳이니, 사진도 함께 찍어가며 글을 엮는 정성을 들일 것이다.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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