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요 Mar 13. 2016

알 수 없는 인생, 예측할 수 없는 인생

all those who wander are not all lost

그래서 치앙마이에 온 이후로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을 많이 하냐 하면 나는 어디에 있던지 결국 나라서 같이 사는 친구들이 입문시켜준 <왕좌의 게임>에 빠져서 매일 밤 몰아서 보면서 킹 조프리의 죽음만을 기다리면서 살고 있다. 여전히 사소한 것에 쉽게 빠져서 열광하는 인생이다.



그런데 문득 생각해보면, 인생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냐 하면, 나는 정신이 든 이후 내내 태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노래를 불러왔었는데 여기 바로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마치 합정동으로 이사 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발견된 1년 전의 일기에 "합정동 분위기 너무 좋다. 여기서 꼭 살아야지!"라고 적혀있어서 깜짝 놀랐던 것처럼.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는데 여러 가지를 이유로 대면서 생각에만 그치고 마는걸까나. 어쩌면 나의 모든 소망들은 사실 내가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겁이 나서 또는 그냥 귀찮아서 손도 안 뻗어본게 아닐까?


여기와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 1은 치앙마이에 언제까지 있을 거고 한국엔 언제 돌아갈꺼냐는 건데, 사실 잘 모르겠다.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 언제까지고 머무르고 싶은게 사실이지만, 그러다간 맨발로 돌아다니면서 길바닥에서 자는 히피처럼 살지도 모르니까. 그런 인생은 열악한 생활 조건 때문이 아니라, 외로울 것 같아서 싫다. 정서적인 결핍이 예술을 만든다는 생각에 대체로 동의하는데, 히피 예술가들은 큰 동력을 항상 달고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생각해보니 내 동아리 과잠에 별명 새기는 칸에 '히피'라고 새겼잖아?ㅋㅋ 근데 진짜 히피로 살고 싶은건 아닌 것 같아




내가 바라는 나의 인생은 외롭지 않은 것이었으면 좋겠다. 사람들과의 교류로 북적이는 인생을 살고 싶다. 그래서 수많은 낯선 사람들과 몇몇의 아끼는 사람들에게서 벅찬 영감을 받아가면서 늘 새롭게 배우고 도전하는, 찬란한 감정들이 가득 들어찬 인생이었으면 좋겠다. 사춘기 시절에는 감정이라는 게 어쩐지 촌스럽게 느껴져서 쿨 시크한 척을 했지만 사실 나는 영화를 보고 울음을 끅끅 울고, 올드보이를 보고나서 3주 동안 악몽에 빠질 정도로(그래서 박찬욱 감독의 위대함을 매우 싫어함) 남들의 감정에 크게 동화되는 편인걸. 그래서 나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면 그걸 엄청나게 빨리 알아채고, 더 마음을 쓴다. 몰랐지? 다 모르는 척이었다.


외롭기 않기 위해서는 딱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흥미로운 구석이 있어야한다. 흥미로운 구석이란 돈이 많거나, 멋진 직업을 가지거나, 외모가 무지무지 출중하거나(요즘 세상에서 제일 잘생긴 럭키 블루 스미스!!!!!!!!!!) 등 표면적인 가치를 포함하지만, 나는 일단 셋 다 이루기는 어려우니 그와는 다른 표면적이지 않은 고유한 것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게 뭔지를 잘 모르겠다. 나의 25년 인생동안 뭘 고유하게 키우려고 노력을 했었나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아니 아무것도 없다기보다 뭔가 모래알을 뭉쳐서 만든 주먹밥 같아서 손에 꼭 쥐면 다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좋은 점들은 뭐라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인데, 언어에 존재하지 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말이야. 다행스럽게도 사랑스러운 나의 사람들은 그걸 알아봐주었지만, 나 스스로에게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신이 있고 싶다면 좀 더 깊이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나는 디자인을 좋아하고, 패션을 좋아하고, 인테리어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책을 좋아하고,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고, 영상 찍는 것을 좋아하고, 인터뷰를 좋아하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이 중 어느 하나도 깊이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 깊이를 누가 정해주냐고 물으면 그건 오타쿠의 세상속에서 영원히 알 수 없는 깊이지만 말이야.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 분열된 다양한 관심사들을 잘 엮어보는 수 밖에 없겠다는 것이다. 나는 언어를 잘하고, 생각보다 기계 프렌들리하고, 사람들과 잘 대화하고 흥미로운 점들을 잘 포착하며, 노래를 잘하고, 요리를 곧 잘하고, 쇼핑을 집요하게 잘 하고, 색감각이 좋은 편이니 일단 거기서부터 브레인 스토밍을 시작해야겠다. 으으 난 뭐가 될 수 있을까?





그러고 보니, 치앙마이에서 만난 모든 이상하고 흥미로운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이상하고도 흥미로운 애가 있는데. 걔가 하는 말이 '앞으로 자기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전혀 노 아이디어지만, 음악과 영상에 열정이 있으니 이 두 가지를 가지고 keep rolling on 할 생각'이라는데, 그 말이 어쩐지 마음이 콱 박혔다. 앞으로 누가 나에게 미래를 물어보면 저렇게 대답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럴 수 있기 위해서 나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자랄 수 있는 부분들을 자라게 해주어야겠다. 돈은 많이 없지만 시간은 아아아주 많으니까.

그러기 위해서 일단 왕좌의 게임을 빨리 다 끝내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치앙마이 생활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