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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 Baek 백산 Aug 10. 2023

우리에게 필요한 것 (3): 아름다움

영감을 주는 예술. 그리고 그걸 음미할 수 있는 공간 

영감이 없다. 


미국생활 십여 년을 접고 한국에 와서 살면서 느낀 것 중 내가 무엇을 보고 듣는지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운전하면서 주로 팟캐스트와 오디오 북을 들었다. 그것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접하기도 하고 삶을 접하기도 하고 생각을 접하기도 하면서 이런저런 상상도 하고 사색에 젖기도 했다. 반대로 한국에선 지하철 타고 출퇴근하는 시간 동안 주로 유튜브를 보거나 인스타그램을 하거나 심지어 넷플릭스를 보기도 한다. 여기서 접하는 콘텐츠들에는 특징이 있다. 바로 상상과 사색의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 


영감은 공간 - 물질적 공간과 시간적 여유 모두 - 이 있어야 한다. 여러 색의 물감이 섞여 새로운 색과 그림이 나오려면 도화지라는 물질적 공간과 시간이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책과 팟캐스트는 미디어에 비해 활자/오디오가 주는 정보의 양이 제한됨으로써 상상력과 사색이 개입할 공간을 준다. 그리고 컨텐츠 자체도 단순 휘발성이 아닌 깊은 사고를 담고 있어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주도적으로 고민해볼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 


하지만 핸드폰 스크롤링으로 접하는 유튜브/인스타그램/넷플릭스는 그런 공간을 허용하지 않는다 - 적어도 대부분은. 많은 경우 그건 도파민을 주고, 잠시나마 일상의 피로와 스트레스의 도피처가 되어준다. 하지만 그뿐, 영감이 들어올 공간은 없다. 사색에 잠기고 상상의 나래를 필 도화지는 없다. 나의 눈과 뇌는 새로운 자극으로 엄청나게 많은 정보를 흡수하고, 나의 몸은 잠깐의 도파민 스팀팩을 맞은 후, 다시 나를 일상으로 내몬다. 


감탄이 없다.


https://www.youtube.com/watch?v=bzbZczcfTck


이 영상에서 김정운 교수는 감탄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그리고 감탄이 없기에 삶에 원동력도 활기도 없으며 창조성도 말라가고 삶이 피폐해진다고 지적한다. 더 나아가 감탄하는 만큼 성공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 공간이 없는 서울에서의 삶을 살다 보면 정말 감탄할 일이 없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에서 접하는 주위의 화려한 삶들 - 이건 감탄을 자아내기보다는 욕구를 자극하거나 오히려 삶을 위축시킨다. 나의 일상은 더욱 무미건조하고 밍밍해진다. 


아름다움의 발견, 그리고 음미 


영감, 감탄 - 이것들을 압축하는 단어를 누가 내게 묻는다면 그건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운 무언가를 접할 때 난 감탄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는다. 우리는 그것을 예술이라고 부른다. 


누구에겐 경이로운 자연의 경관이 아름답기도 하고 그림/음악이 아름답기도 하다. 음식에서 감탄하며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도 있다. 내게도 특별히 더 반짝거리는 예술이 있는데 그건 1) 사람들의 이야기 2) 신의 이야기이다. 2번은 좀 어렵고 복잡할 수 있으니 1번을 이야기해 본다. 


난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좋다. 특히나 성공하고 성취한 그런 이야기 보다 어려움을 겪고 아팠던 순간들이나 그걸 극복하고 견뎌낸 이야기들. 상처와 고통, 극복과 치유의 이야기. 우리 각자가 가진 고민과 기대들. 소망들. 마음을 활짝 열게 만들고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하는 그런 이야기들. 그런 삶의 이야기들을 난 보물처럼 여긴다 (I cherish those). 그런 이야기를 접하고 서로 공감하고 응원하고 안아주고 할 때면 난 아름다움을 본다. 그건 어떤 그림보다 아름답고 어떤 음악보다 감미로우면 어떤 향기보다도 진하다. 


아름다움을 쫓고 기대하기


예술은 사치인가. 그렇지 않다. 감탄과 영감이 없는 게 당연한가. 그렇지 않다. 난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예술은 꼭 필요하다.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음미하는 것, 그건 이 팍팍하고 무미건조하고 외롭고 적막한 삶 한가운데 오아시스 같다. 한줄기 빛과 같이 무언가 더 멋진 게 더 아름다운 게 더 완벽한 게 더 오묘하고 신비로운 게 있다고 느끼게 해 준다. 그런 희망과 기대를 걸게 만들어 준다. 삶에 새로운 활기와 원동력을 준다. 새로운 갈망을 준다. 그런 갈망 없이 사는 건 너무나 지치고 어렵다. 그렇지 않은가? 아름다움을 쫓고 발견하며 아름다움 근처에 거하는 것, 아름다움을 기대하는 것. 나와 우리에게 필요한 세 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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