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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필요한 것 (2): 공동체

마음을 활짝 열고 망가지고 실수하고 투정 부리고 낄낄거리는 친구들

by San Baek 백산

1. 쓸데 있는 고퀄


교회 청소년부 회장단이 찍은 수련회 소개 영상을 봤다. (궁금한 분은 인스타 링크참고) 그런데 그 퀄리티가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아니 한번 보고 말 이 비디오를 이렇게 열심히 만드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고3 애들이...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바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걸 만들면서 얼마나 즐거웠을까. 얼마나 몰입했을까. 고3이 주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이 친구들에게 이 비디오를 만드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이걸 만들고 같이 웃고 떠들며 수련회를 준비할 때만큼은,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은 잠시 잊고 든든한 우정과 전우애를 만끽했을 것이다. 아 이건 전혀 쓸데없는 고퀄이 아니구나.


2. 내 삶의 공동체들


나에게도 그런 공동체가 있었다. 군대도 생각나고, MBA도 생각나고, 교회도 생각나고, 공무원 동기들도 생각나지만 무엇보다도 대학시절을 함께한 경영대 축구부 아르마다. 우리에겐 축구라는 공통 관심사와 목표도 있었지만 또 미래 진로에 대한 공통의 어젠다/고민도 있었다. 함께한 몇 년의 시간들도 있었다.


참 많은 걸 같이했다. 운동, 대회준비, 공부, 연애, 놀기, 프로젝트, 시간 죽이기, 등등등... 서로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었고 얼마든지 새로운 걸 시도해 볼 수도 있었다. 안 되는 몸으로 춤추고 노래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고 이런 것에서부터 각종 수업 프로젝트나 동아리 프로젝트들에 이르기까지. 함께했기에 용감했고 함께했기에 바보 같을 수 있었다.


3. 공동체가 주는 선물


공동체가 있을 때, 우리는 마음껏 도전해 볼 수 있다. 믿어보고 마음을 주고 웃고 떠들 수 있다. 놀 수 있다. 고민할 수 있다. 사랑하고 사랑받기에 누군가에게 뭔가를 걸어볼 수 있다. 몰입할 수 있다. 나 말고 다른 것들을 품어볼 수 있다 - 나보다 더 큰 무언가를.


팍팍한 어른의 삶을 살다 보면 공동체의 추억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애들이니까 웃고 떠들 수 있고 친구들과 시시덕거릴 수 있고 바보 같은 표정도 짓고 무모한 짓도 해보고 할 수 있는 거지, 어른인 우리는 계속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모든 시간과 자원을 잘 써야지, 공동체는 과거의 추억이고 사치다 뭐 이런 생각.


하지만 공동체를 경험하고 나면 거의 본능적으로 느낀다. 아 이건 사치가 아니라 필수구나. 팍팍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거구나. 진정한 성장과 성숙은 안전한 환경에서 바보 같은 짓도 해가면서 나오는 거구나. 꼭 내 삶의 어려움이 바로 해결되거나 조건들이 바뀌지 않더라도 공동체가 있으면 새로운 위로와 힘을 받는구나. 잠자는 게 낭비가 아닌 것처럼 공동체와 함께하는 시간은 낭비와 사치가 아니구나. 아니 잠이 부족하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고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처럼 공동체 없이 외롭게 혼자 사는 삶은 오히려 내 삶을 후퇴시킬 수 있구나...


4. 어떤 공동체를 꿈꾸는가


어찌 보면 공동체를 찾아서 한국에 왔다고 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의 삶은 여러 가지로 좋았지만 이방인으로서 이방땅에서 느껴지는 본연의 외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서울 삶도 마찬가지다 - 아니 어쩌면 더할 때도 있다. 소셜미디어의 홍수와 길거리에 넘쳐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우리 가족은 왜 종종 더 외로운가. 나에겐 우리에겐 어떤 공동체가 있는가. 그리고 난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싶은가. 마음을 활짝 열고 망가지고 실수하고 투정 부리고 낄낄거리면서, 그러면서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함께 꿈꿀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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