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활짝 열고 망가지고 실수하고 투정 부리고 낄낄거리는 친구들
교회 청소년부 회장단이 찍은 수련회 소개 영상을 봤다. (궁금한 분은 인스타 링크참고) 그런데 그 퀄리티가 너무 높아서 깜짝 놀랐다. 아니 한번 보고 말 이 비디오를 이렇게 열심히 만드는 게 말이 되나. 그것도 고3 애들이... 보자마자 이런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바로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이걸 만들면서 얼마나 즐거웠을까. 얼마나 몰입했을까. 고3이 주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이 친구들에게 이 비디오를 만드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을까. 이걸 만들고 같이 웃고 떠들며 수련회를 준비할 때만큼은, 미래에 대한 근심, 걱정은 잠시 잊고 든든한 우정과 전우애를 만끽했을 것이다. 아 이건 전혀 쓸데없는 고퀄이 아니구나.
나에게도 그런 공동체가 있었다. 군대도 생각나고, MBA도 생각나고, 교회도 생각나고, 공무원 동기들도 생각나지만 무엇보다도 대학시절을 함께한 경영대 축구부 아르마다. 우리에겐 축구라는 공통 관심사와 목표도 있었지만 또 미래 진로에 대한 공통의 어젠다/고민도 있었다. 함께한 몇 년의 시간들도 있었다.
참 많은 걸 같이했다. 운동, 대회준비, 공부, 연애, 놀기, 프로젝트, 시간 죽이기, 등등등... 서로 얼마든지 망가질 수 있었고 얼마든지 새로운 걸 시도해 볼 수도 있었다. 안 되는 몸으로 춤추고 노래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말 걸고 이런 것에서부터 각종 수업 프로젝트나 동아리 프로젝트들에 이르기까지. 함께했기에 용감했고 함께했기에 바보 같을 수 있었다.
공동체가 있을 때, 우리는 마음껏 도전해 볼 수 있다. 믿어보고 마음을 주고 웃고 떠들 수 있다. 놀 수 있다. 고민할 수 있다. 사랑하고 사랑받기에 누군가에게 뭔가를 걸어볼 수 있다. 몰입할 수 있다. 나 말고 다른 것들을 품어볼 수 있다 - 나보다 더 큰 무언가를.
팍팍한 어른의 삶을 살다 보면 공동체의 추억은 사치처럼 느껴진다. 애들이니까 웃고 떠들 수 있고 친구들과 시시덕거릴 수 있고 바보 같은 표정도 짓고 무모한 짓도 해보고 할 수 있는 거지, 어른인 우리는 계속 성공을 향해 달려가고 모든 시간과 자원을 잘 써야지, 공동체는 과거의 추억이고 사치다 뭐 이런 생각.
하지만 공동체를 경험하고 나면 거의 본능적으로 느낀다. 아 이건 사치가 아니라 필수구나. 팍팍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거구나. 진정한 성장과 성숙은 안전한 환경에서 바보 같은 짓도 해가면서 나오는 거구나. 꼭 내 삶의 어려움이 바로 해결되거나 조건들이 바뀌지 않더라도 공동체가 있으면 새로운 위로와 힘을 받는구나. 잠자는 게 낭비가 아닌 것처럼 공동체와 함께하는 시간은 낭비와 사치가 아니구나. 아니 잠이 부족하면 오히려 생산성이 떨어지고 건강이 안 좋아지는 것처럼 공동체 없이 외롭게 혼자 사는 삶은 오히려 내 삶을 후퇴시킬 수 있구나...
어찌 보면 공동체를 찾아서 한국에 왔다고 할 수도 있다. 미국에서의 삶은 여러 가지로 좋았지만 이방인으로서 이방땅에서 느껴지는 본연의 외로움이 있었다.
하지만 서울 삶도 마찬가지다 - 아니 어쩌면 더할 때도 있다. 소셜미디어의 홍수와 길거리에 넘쳐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우리 가족은 왜 종종 더 외로운가. 나에겐 우리에겐 어떤 공동체가 있는가. 그리고 난 어떤 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싶은가. 마음을 활짝 열고 망가지고 실수하고 투정 부리고 낄낄거리면서, 그러면서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을 수 있는, 함께 꿈꿀 수 있는 그런 공동체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