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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77번째 생일파티

언제나 그렇듯 아버지 백재웅과의 시간은 내게 많은 걸 남긴다

by San Baek 백산

아버지의 손에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갓 사온 회 한 박스가 들려 있었다. 며느리인 아내는 반색을 하면서 시아버지를 맞았고 분위기는 전에 없이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베란다 한편에는 아버지가 보낸 고구마가 영문도 모른 채 서서히 곰팡이를 피우고 있었고 현관 한구석에도 아버지가 보낸 지압돌멩이 발판이 조만간 맞이할 임종을 기다리고 있었다.


과연 이 회는 곱게 우리 입에 들어갈 것인가. 치우고 정리할게 먹을 것보다 더 많지는 않을까. 아내가 아버지란 사람자체를 워낙 좋아하고 불뚝불뚝 뭔갈 보내거나 사 오는 사랑표현 방식을 감사해하면서도 때론 힘겨워하는 것도 알기에 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그냥 빈손으로 오시지...


우리 아버지는 그런 조금은 어설픈 사람이다. 집안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집안의 대소사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며 실질적인 대부로 군림하는 그런 할아버지, 모든 걸 이루고 워낙 많은 힘을 가지고 있거나 늘 크게 크게 베풀기에 다들 꼼짝 못 하고 늘 주위에 사람이 모이는 그런 할아버지들과는 분명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자식들에게 소홀했거나 아내와의 갈등으로 전혀 대접받지 못하고 쓸쓸하게 노년을 맞고 있는 경우와도 거리가 멀다.


우리 아버지는 좋은 할아버지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면서 나름의 여러 가지를 하지만 그게 아주 세련되지만은 않은 어찌 보면 평범한 할아버지다. 두 아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베풀었지만 본인도 결핍이 많았기에 아주 매끄러운 사랑을 주지도 못해서 상처를 남기기도 했고, 또 너무 줄주만 알아서 제대로 대접받고 있지도 못한 아버지. 나름의 방법으로 아내를 사랑했지만 여자를 살뜰히 챙긴다는 게 뭔지는 본적도 들어본 적도 없는 경상도 남자로서 엄마에겐 상처도 실망도 잔소리거리도 심심치 않게 안겨주는 남편. 며느리에 대한 사랑으로 생일에 용돈도 꽃도 보내고 늘 마음을 쓰지만 이상한 쿠팡 배달 등으로 점수도 종종 까먹고 식성도 나름 까다로운 데다가 늘 화제는 정치이야기나 주변 자랑으로 가는 사랑스럽지만 만만치 않은 시아버지. 손주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애들 눈높이에서 놀아주거나 애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법은 잘 모르고 본인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주로 용돈을 주거나 시를 써주거나 박수를 쳐주는 식의) 초짜 할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일흔일곱 번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한가족이 모였다. 모두가 은근히 마음을 쏟고 힘을 냈다. 아내는 미리 날짜를 계산하고 나에게 이야기해서 부모님을 서울로 모실 시간을 잡고 식사를 밖에서 할지 집에서 할지를 여러 각도에서 고민하다가 집에서 하는 게 더 낫다는 (아버지도 집에서 밥 먹는걸 더 좋아하고 애들도 집에서 더 잘 놀 거고) 결론을 내리고 음식 뭐 할지부터 형네, 특히 형수님이 이런 아이디어에 소외감을 느끼거나 다른 생각을 하지는 않을지를 또 고민하여 형수님과도 소통하는 엄청난 지혜와 능력치를 보여줬다. 그러고 나서 엄청난 양의 요리도 했고. 형수님도 내가 다 몰라서 그렇지 여러 가지 헤아리고 계산하고 아내와 소통하면서 무엇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인지를 의논하고 결정했다. 나는 나 나름대로 아내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마음을 쓰면서 (나가서 먹자, 등등), 그럼에도 아내가 결정하는 대로 다 따르겠다고 하고 고맙다는 말도 종종 넣어주면서 한편으로는 아버지가 제일 좋아할 만한 선물 - 가족 해외여행을 기획하고 형과 엄마, 형수님 등과 내 몫의 소통을 하기 시작했다. 형도 거의 불가능한 일정가운데 마음과 시간, 돈 등 할애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할애해서 이런 계획에 적극 동참해 줬다. 엄마도 이 모든 과정에서 먼저 나서거나 본인이 생각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강요하지도 않고, 아버지가 먼저 치고 나가는걸 옆에서 잘 다독이기도 하면서 아들들 며느리들이 하자는 대로 다 맞춰주고 애들도 봐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며 애썼다.


이런 우리의 마음이 통해서였을까. 사실 특별할 것 없는 집에서 하는 생신축하 식사자리였는데 아버지의 기분이 유독 좋아 보였다. 전날부터 유머와 농담이 넘쳤고 생일 당일날에도 아침부터 혼자 산책을 다녀오고는 계속 싱글벙글이었다. 본인이 생각하고 계신 방향으로 정치가 흘러가지 않는 이 상황에서 아버지가 이렇게 밝은 모습을 보일 거라곤 예상치 못했었는데. 지난 연말에는 탄핵정국으로 나라가 살얼음을 걷는 상황이었고 아버지와 나도 예상치 못한 계기로 언성 높여가며 거의 태어나 가장 크게 다투고 한동안 서먹했던 기억도 있는 상황이어서 아버지의 이런 흡족함이 사뭇 놀라웠다.


분주하게 생신상을 차리고 (정말 한국음식은 손이 많이 간다. 이 자리를 빌러 아내와 형수님/어머니께 감사를, 그리고 이 음식문화가 언젠가 조금은 더 바뀌길), 식사에 앞서 아버지께 한 말씀을 청하자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뭔가를 주섬주섬 꺼내며 갑자기 편지를 읽어나갔다.


"내가 아침에 몇 자 적은 게 있어. 한번 읽어볼게"

어머니는 내 생일 때마다 먹을게 생긴다고 나의 생일을 좋아했다. 어린 시절 가난과 피폐한 일상 속에 소년은 늘 내일을 소망하며 기죽지 않고 독서와 문학을 사랑하며 신문팔이로 학교생활을 하고 YMCA 생황을 했다. 그때 삼총사였던 친구들은 어느새 세월의 무게에 멀어져 갔지만 여전히 건재한 친구들도 있어서 다행이다. 긴긴 철길을 걸으며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메아리 없는 노래로 허전함을 달랬던 그때의 기억을 77살의 생일을 맞은 아침 경원선 끊어진 철길을 걸으며 회상했다. 어제는 대법원 집회에서 느닷없는 강연을 주문받고 청중들과 호흡했고 밤에는 독수리 오 형제의 지지와 XX 박사의 환영에 좋아했다. 나는 참 감사할 일이 많다.

또 자랑할 것도 많다. 나는 항상 부딪히며 네 번의 위기를 넘겼다. 이제는 XX 덕분에 넉넉해져서 감사하다. 아들들의 인격을 존중하며 눈높이 대화와 스스로의 문제해결법을 가르쳤고 특히 부족하지 않도록 교육시킨 것을 자랑한다. 지금도 샘솟는 애국심과 열정을, 그리고 자강함을 되새기고 되뇐다. 어제는 “여러분 같은 찐 애국자들을 만나니 저절로 기분이 좋아집니다. 여러분도 그렇지요”라고 청중들과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제 진짜 자랑한다.
내 아래 김숙희. 사랑과 지혜가 넘치는 평생의 반려자 (박수!)
첫째 아들 백범. 의젓한 문제해결가, 재치와 유머를 겸비한 냉철한 합리주의자 (박수!)
첫째 며느리 주세나. 순수한 감성과 도리와 긍정의 화신, 아들바보 (박수!)
둘째 아들 백산. 산은 산이라 좋은 나의 자랑 (박수!)
둘째 며느리 백민경. 모든 주변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며 늘 변함없는 인간미의 화신 (박수!)

축복 그 자체의 손녀손자
백하로. 만능 예술가, 글/시/노래/춤/피아노, 무한 신세계를 펼칠 유일한 손녀 (박수!)
백하율. 하늘의 선물 정말 큰 인물이 되어 무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제일 잘 살 거임 (박수!)
백주호. 할아버지할머니의 활달함과 자상함, 아버지의 큰 나무 같은 든든함, 어머니의 사랑사랑사랑. 무엇보다도 무궁한 배려와 마음을 타고난 보석 (박수!)
백하임. 완성체. 존재만으로 많은 기쁨을 주는 큰 인물이 될 것을 예감 (박수!)

마지막으로 할아버지의 당부. 다 같이 스스로를 사랑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며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되자. (손주손녀 따라 함)

끝으로 이 모든 것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며 나 스스로에게는 허락하는 한 관리하고 베풀고 모범이 될 것을 다 진한다. 점점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그에 또 걸맞게 살아낼 것을 다짐하며.


편지를 통해 아버지의 축복의 말들을 듣는데 성경에서 야곱의 축복이 생각났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남긴 인물. 험난한 세월을 살았다고 바로 앞에서 고백했던 야곱이 죽기 전에 열두 아들 (또 두 손자)에게 축복했고 그 축복대로 하나님이 열두 지파를 세우시고 만들어가셨던 이야기가. 나이 들어갈수록 손이 가고 힘이 빠지는 남성, 수컷에게 가장 필요한 건 존중 (respect)과 명예 (honor) 같은 게 아닐까 한다. 그런 사랑의 언어로 사랑을 받을 때, 할아버지만이 줄 수 있는 축복이 또 우리 가정에 임함이 느껴졌다.


이글에선 다 쓸 수 없지만 우리 아버지 백재웅을 생각하면 끝도 없는 수식어를 델 수 있다. (아래 생각나는 것들을 적어본다) 이날 다시금 아버지 백재웅이 빛나 보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빛날 수 있게 해 준 가족 한 명 한 명, 특히 아내에게 많이 고마웠다.

사랑을 별로 받아본 적이 없지만 짝사랑하는 법 - 그게 아들이든 정치리더든 애국지사든 - 만큼은 잘 마스터한 일방통행 사랑꾼

정작 본인의 반려자와 스스로를 알뜰살뜰 사랑할 줄은 모르지만 음악과 시, 자연을 사랑하는 낭만가

족보도 없고 전통도 없지만 잡초처럼 강한 야생의 생명력으로 자신만의 삶을 사는 로빈슨크루소

선대에서부터 온 가계의 어두움을 본인대에서 최대한 끊어낸 전사

일흔도 넘은 나이에 아들에게 사과도 하고 화도 내고 섭섭함도 이야기할 수 있는 때론 너무나 성숙한 커뮤니케이터

본인이 꽂히는 건 끝없이 이야기하며 밀어붙일 수 있는 세일즈맨, 그리고 에너자이저

나보다 더 큰 가치 (아버지에겐 그게 나라)를 추구하고 실천하는 걸 몸소 보여준 행동파 리더

정치와 역사와 잘 나가는 주위사람에 대한 이야기 빼곤 할 줄도 모르고 들을 주도 모르지만 그래도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진 할아버지


이렇게 끝나면 아주 아름다운 마무리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다 (상당히 복잡 (messy)하다). 아버지 생신잔치 이후 아내와 또 삐걱거림이 있었다. 결국 잘 해결됐지만 짧게라도 아내와 마음이 어려우면, 특히나 그게 가족 관련 일일 때는 더, 참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아내는 최선을 다해 부모님을 모시고 싶어서 우리 집으로 모시고 요리도 직접 하는 열성을 내다가 몸도 힘들고 여기에 다 쓸 수 없는 여러 포인트 (한 가지는 내가 그 부모님 생신 와중에 펠로우십 일한다고 나갔다가 저녁도 안 먹고 와서 하루 종일 부엌에 있다가 겨우 치우고 내 밥을 또 해서 줘야 했다는 것)에 버거움과 서운함을 느꼈다. 난 처갓집 식구들과 볼 땐 늘 편하고 화기애애한 거에 비해 우리 집 식구들과 볼 때 뭔가 더 힘을 쓰고 힘이 쓰이고 작게라도 서운함이 남는 상황과 형국이 감당하기 힘들었다. 아마 형과 형수님도, 엄마 아빠도 분명 서로간에 표현했던 표현하지 않았든 여러 맘에 걸림과 섭섭함, 어려움, 불편함 들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가족끼리의 시간은 정말 아름답고 소중하지만 때론 종종 힘에 부친다. 신경 쓰고 하다 보면 서운하거나 부딪히는데 문제는 그게 평생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거고, 여기에 더해 서로 소통하는 법을 몰라 자주 문제가 증폭된다. 이런 불편함이 버겁거나 피하고 싶을 때면 난 아내가 작년한해를 돌아보며 인스타에 쓴 이 문구를 되새긴다.

#1 결혼하고 9년간 일 년에 잘해야 한 번씩밖에 못 만난 시댁어른들과 몇 번 못 만난 아주버님네 식구들이랑 올해 정말 ‘가족’이 된 것 같아 감사했다. 자주는 못 봬도 계절마다 또 명절 기념일 혹은 그냥 보고 싶을 때 찾아뵐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인지 어머님 아버님이랑 만날 때도 우리 엄마 아빠가 그리울 때도 동일하게 느낀다. 같이 먹는 끼니 수가 많아지고, 크고 작은 기억들이 모이며 서로에 대한 이해와 사랑도 커져간다. 여느 종류의 사랑이 다 그렇듯 커지려면 불편한 상황도 생기기 마련이지만 다른 것도 아닌 사랑의 열매를 맺게 하는 불편함은 충분한 가치가 있지 않나. 사랑의 열매는 세상 앞에 담대히 설 수 있게끔 하는 힘을 주기 때문에, 멀리 있든 가까이 있든 내 편이 한 명 더 생긴다는 거, 내가 주저 없이 누군가의 편에 설 수 있게끔 하는 그 힘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가족 공동체를 주시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래 우리 가족은 분명 투닥투닥거리고 절대 완벽하지 않지만 조금씩 힘을 내보고 하나 됨의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보배와도 같은 아내를 통해 임하시는 위로부터의 사랑을 분명 느끼고, 그 사랑이 온전히 열매 맺기까지 내가 해야 하는 그리 대단치도 않지만 내겐 아주 쉽지만은 않은 역할도 느낀다.


이제 우리 가족은 6월에 7년 만에 다시 한번 다 함께 근처로 여행을 가보려 한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단단한 가족공동체로서 하나 됨의 사랑의 열매를 계속 맺어갈 수 있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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