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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지은 Dec 09. 2019

당신은 어떤 '반려인' 인가요?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다섯 번째 만남 : 전로사 님(下)

▼전편을 먼저 읽어주세요.





그의 바람대로 냉이와 봄동이가 서로에게 절친이 되지는 못했지만, 그럭저럭 어울려 지내며 평화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어느 날, 봄동이가 이틀 동안이나 계속 사료를 안 먹고 구토를 했다. 걱정스러운 마음에 일단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기본적인 검사만 하면 15만 원, 전체 다 하면 40만 원이라고 했다.

보호자로서 선택해야 하는 순간, 그는 망설였다.


"선뜻 못 하겠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기본 검사만 했는데, 별 이상이 없다고 하는 거예요. 병원에서 약만 받고 다시 집으로 데려왔는데 계속 밥을 안 먹는 거예요. 혹시 큰 병일 수도 있으니까 다시 병원에 데려갔어요. 아프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돈 때문에 검사를 안 한다는 게 죄책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막 울면서 할 수 있는 검사를 다 해달라고 했어요. 병원에서 검사를 다 했는데 이상이 없다고 하셔서 일단 입원시키고 수액이라도 맞춰보자 했는데, 수액 맞고 나서부터 밥 먹기 시작했어요."

그는 이 일을 계기로 고양이들의 보호자로서 필요한 경제적인 능력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때 느낀 게, 애들을 키우려면 돈을 많이 모아놔야겠구나 싶더라고요. 아플 때 그렇게 검사를 망설이지 않으려면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돈 때문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게."


돈 때문에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지 않게.


사료만 해도 그랬다. 그 종류만큼이나 가격대도 천차만별인데, 그는 중저가 사료를 먹이고 있었다. 고가 사료와의 가격 차이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니 그렇게 해서 아끼는 돈은 병원비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저는 밖에서 밥 한 끼 먹을 때 3만 원 넘게 쓰기도 하는데, 고양이들한테 쓰는 거 한 달에 3만 원 아끼는 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좋은 거 먹이다 보니까 계속 이런 식으로 키우려면 경제적인 능력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제가 다니던 회사가 마음에 들었는데, 이직을 결심하는데 영향을 줬던 거 같아요.”


그는 고양이들과의 반려를 위해 이직을 하고 적금을 들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내 집 마련’까지 했다. 자식을 풍족한 환경에서 키우고 싶어 하는 부모 마음과 비슷했다. 냉이의 발정기를 지나며 행여나 집주인이 올라오지는 않을까 마음 졸였던 것을 계기로 고양이들과 함께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는 집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다. 

고양이들과 가족이 된 뒤로 그에게 생긴 굵직한 변화들 만큼 그가 고양이들에게 쏟는 애정과 노력이 크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집사로서의 자신에게 만점을 주지 않았다.


“다른 분들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은 거 같아요. 분명히 좋은 반려자로서의 책임감이나 의무감 같은 게 있는데, 가끔은 버거울 때도 있거든요. 고양이들이 줄 잡고 뛰어다니고 술래잡기하는 거 좋아하니까 저렴한 장난감 여러 개를 바꿔가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놀아주긴 하는데, 제가 잘 놀아주고 있다는 확신은 안 들거든요. 인터넷 보면 정말 잘 놀아주는 집사들이 많은데 저는 그만큼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고 구태여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비교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그런 것처럼 소중하게 아끼고 잘해주고 싶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에는 브레이크가 없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의 집사가 된 뒤로 경제적인 안정과 주거 안정을 이룬 것이 그의 의지에 따른 변화라면, 그의 의지와 무관하게 생활의 일부가 된 변화도 많다.


“털이 항상 옷에 묻어 있으니까 어쩔 때는 약간 지저분한 사람으로 보이는 거 같기도 한데요. 저는 성격이 무딘 편이고 깔끔 떨지 않는 스타일이라 스트레스 안 받고 그냥 사는 편이에요. 음식에 털이 들어가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먹고요. 고양이들이 화장실 보고 밖으로 나오면 발에 모래가 붙은 상태니까, 바닥이 고양이들 털이랑 모래, 제 머리카락이 뒤엉켜 있는 상태가 되거든요. 매일 청소하다가도 조금 지켜보고 대충 쓸어 놓고 그래요.”

이처럼 털털한 성격인 그는 많은 집사들이 고충을 토로하는 털 빠짐 문제에 있어서 한결 여유로운 입장을 보였다. 그렇다고 고충이 전혀 없다는 얘기는 아니다. 


“고양이 키우기 전보다 수면의 질이 좀 떨어졌어요. 고양이가 야행성이니까 밤에 일어나서 우다다 뛰어다니면 깨고요. 손님이 집에 오면 또 그렇게 뛰어다니고, 아침에도 일찍 일어나라고 울고 그래요. 그리고 고양이들이 다리 쪽에서 같이 자니까 자세가 불편해서 그런지 허리가 좀 안 좋아진 느낌이에요.”


비록 수면의 질 저하가 그에게 있어 큰 애로사항이긴 하지만, 고양이들로부터 받는 사랑과 행복은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달콤했다. 고양이들이 품 안에서 애교를 부리거나 골골송을 부를 때도 좋지만, 무엇보다 그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던 건 고양이들의 작은 변화였다.


“원래는 경계심도 많고 겁도 많은 고양이들인데 제가 가까이 가서 장난쳐도 겁내거나 놀래지 않았을 때, 얘네들이 나를 완전히 믿고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더라고요. 진짜 가족이 된 느낌이 들어서.”

그의 일상 속에 냉이와 봄동이가 들어온 것처럼, 이 고양이들의 삶 속에도 그의 존재가 공기처럼 스며든 것이리라. 이렇듯 두 고양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 그는 퇴근 후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선물 같은 행복을 느끼곤 한다.


“집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현관문 앞에 한 녀석, 신발장 위에 한 녀석이 있어요. 그렇게 둘이서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해요. 이런 걸 느끼는 순간들이 전부 다요. 아마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은 못 느낄만한 기분을 많이 누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밝게 웃는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고양이들에 대한 사랑이 짙게 배어 있었다. 그리고 이젠 좋은 반려자가 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좀 더 넓은 의미에서 동물을 사랑하려고 노력 중이다.


“고양이를 데려오면서부터 동물학대로 만들어진 제품을 사용하지 않기 시작했어요. 겨울에는 옷도 함부로 못 사고, 화장품도 동물실험을 하지 않는 화장품만 구매한다거나. 이런 것들부터 시작했어요. 채식은 아직 못 하고 있는데 고기를 줄이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혼자 있을 때는 일부러 찾아서 먹지 않으려고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은 거 같아요.

누가 권하지도 않은 일을 스스로 찾아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그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의 노력을 그저 작게만 치부하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의연한 자세로 마음을 다진다. 


“피곤하게 산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안 변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비판을 들을수록 제가 더 신경 써야 될 게 많고 어려워지는 게 있지만, 제가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좀 더 번거롭고 좀 더 힘들고 좀 더 피곤해지면 그만큼 보람 있을 수 있고, 그만큼 제 자신이 지향하는 방향으로 달라질 수 있는 거니까요.”


힘들고 피곤한 일이라면서도 그가 이런 노력을 지속할 수 있는 이유는 그를 움직인 것이 한순간 불었다 잦아드는 바람이 아닌 마음속 깊은 사랑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자신의 변화가 마음에 드는 듯 부드럽게 웃으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최소한 어떤 대상을 책임지고, 돌보고, 사랑하는 것이 
제 삶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원동력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전로사 님이 꼭 해주고 싶은 말


“주변에서 동물 키우고 싶다고 하면, 쉬운 일이 아니니까 고민 중이라고 해도 더 많이 고민하라고 말해요. 그리고 대게는 예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하는데, 내 식구가 되면 예쁘지 않은 애들도 예쁠 수밖에 없는 거니까 품종 같은 거 따지지 말고 버려진 아이들 입양했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어느 겨울 날 오일장에서 만난 고양이 한 마리로부터 시작된 집사생활이 그의 삶과 가치관을 바꾸어놓았다.

힘든 점도 있다지만 분명 행복해보인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미디어에 등장하는 '누군가의' 반려동물을 보며 착각에 빠진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을 키우면 자신도 그저 행복할 것 같다는 환상에 도취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반려동물이 아무리 예뻐도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얼마나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는가는 개인의 성향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그에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털빠짐이 누군가에게는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할 수 있고, 그가 수면 품질 저하와 허리 통증을 호소하는 것과 달리 어떤 사람은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만큼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입양을 고려할 때 경제력이나 시간 여유 같은 외적인 요소들과 함께 자신의 성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지 짚어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아마 그가 지인들에게 '힘드니까 더 고민하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글 / 자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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