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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지은 Oct 25. 2019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프롤로그

새벽부터 많은 비가 내렸다. 그래서인지 보호소 안은 습한 공기에 악취까지 더해져 속이 매스꺼울 정도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신참 셋이 입소했고, 나보다 먼저 들어왔던 친구 다섯은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다.


내가 철창 안에 갇혀 지낸지도 벌써 9일이 지났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하루.

오늘 안에 누구든 사로잡지 못하면…… 나는 내일 죽는다.

사람이 드문 드문 오니 생존 경쟁이 너무 치열하지만, 그래도 희망을 갖고 기다려본다.

어차피 좁은 철창 안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오직 웅크리고 앉아서 기다리는 것뿐이니까.

.

.

.



시간은 무겁고 초조하게 흘렀다. 흐린 날씨 탓인지 오전 내내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오후 2시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낯선 여자 하나가 보호소 안으로 들어섰다.

나와 친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다 함께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요! 저 좀 봐주세요.”

여자는 큰 소리에 놀란 듯 잠시 멈칫하더니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느긋한 발걸음과 달리 그녀의 시선은 몹시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혹시 잃어버린 가족을 찾으러 온 걸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딱하기도 해라. 이렇게 예쁜 애들이…….”

그녀가 낮게 중얼거린 말이 선명하게 귓속을 파고들었다.

어쩐지 그 말 뒤에 숨은 말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아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제발 저를 데려가 주세요.”

나는 더욱 목청껏 소리치며 관심을 끌어보려 했지만 그녀는 아직도 저쪽 편에서 다른 친구들을 보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나는 애절한 눈빛을 보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마침내 그녀가 나를 보고 멈춰 섰다.

“어머, 장모 치와와네. 넌 어쩌다가 여기 왔니.”

그녀가 내게 속삭이듯 물었다.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듯 꼬리를 흔들었다.

“쓰레기장 앞에 버려졌다가 잡혀왔어요. 엄마는 그냥 제가 귀찮아졌대요.”

나와 눈을 맞추던 그녀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그래, 이때다 싶었다.

“제발 저를 입양해 주세요!”

나는 철창 밖으로 손을 내밀어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때, 내 옆 철창에 있던 푸들이 불쑥 끼어들었다.

“제가 더 똑똑하고 털도 잘 안 빠져요. 저를 데려가 주세요.”

푸들이 짧은 꼬리에 프로팰러를 단 듯 요란하게 흔들었다.

“그런데 너는 왜 여기 와 있니?”

“제가 똑똑하긴 하지만,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뭘 잘못했는지…….”

여자의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나는 그녀가 푸들을 데려갈까 봐 불안해졌다.

“여기 봐요. 저는 길고 아름다운 털을 가지고 있다고요.”

비록 지금은 털이 엉켜서 지저분하지만.

나를 지켜보던 아래층의 백구 어린이가 존재감을 뽐내듯 크게 소리쳤다.

여자의 시선이 아래로 향하자 백구 어린이가 좁은 철창 안에서 빙글 뱅글 돌았다.

“저는 태어난 지 두 달 밖에 안 됐어요. 귀엽죠?”

발랄한 기운이 철창 밖을 뚫고 나올 기세였다.

“… 미안해. 너는 우리 집에서 살기에 너무 클 것 같아.”

그녀의 말에 백구 어린이가 울상을 지었다.

“그럼 저는 어때요?”

작고 하얀 몰티즈는 불편한 뒷다리를 떨면서도 또랑또랑한 눈빛을 보냈다.

“아이고, 다리가 불편한가 보구나. 아프진 않니?”

“이런 건 아픈 것도 아니에요. 마음 아픈 거에 비하면.”

해맑게 웃는 몰티즈의 말에 그녀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가만히 지켜볼 수만은 없었다.

“저한테는 이제 시간이 없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나의 간절한 애원에 그녀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제발요……. 전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요.”

어쩌면 이게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저절로 눈물이 차올랐다.

그녀가 애달픈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달빛처럼 맑은 눈동자에 엉망인 내 모습이 비쳐 보였다.

“…….”

긴 침묵 끝에 그녀가 관리자를 불렀다.

마침내 작은 철창이 열리고 나는 그녀의 손에 옮겨졌다.

“음…….”

나를 들고 조심스럽게 살피던 그녀의 얼굴에 동그란 미소가 번졌다.

“그래. 나한테 더 하고 싶은 말은 없니?”

“저… 그럼 한마디만 할게요.”


우리 서로 마주 보며 살기로 해요.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
.
.
약속해 줄 수 있나요?


   

솔직히 나는 확신이 없었다.

2014년, 보호소에서 베로나(수컷, 믹스견)를 입양하면서도 내 안에는 무수한 갈등이 상존하고 있었다.


과연 내가 한 생명을 끝까지 책임 질 만한 사람일까.

좋은 가족이 되어줄 수 있을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이는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여러 가지 노력이 요구된다. 책임감, 인내, 포용, 배려 같은 것들 말이다. 특히 반려동물과의 일상생활에서는 더 그렇다. 아이는 커서 어른이 되면 더 이상 부모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반려동물은 죽을 때까지 어린아이처럼 돌봐주어야 하니까.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나는 내 방식대로 그와의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6년이라는 시간이 쌓이면서 우리는 꽤 그럴싸한 가족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들에게 반려동물을 입양하라고 섣불리 권하지 않는다. 반려동물과 가족이 되는 일을 가볍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동물과 가족이 되길 원한다면 보호소에 있는 동물들에게 손을 내밀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작은 인터뷰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앞으로 이어질 글들은 지난해 봄부터 내가 직접 만나 인터뷰한 반려동물 입양자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에게는 저마다 색다른 가족의 탄생 히스토리가 있고, 그 가운데 우리가 함께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문제들이 녹아있다. 하지만 나는 우리 앞에 놓인 질문들에 많은 이들이 화답해 주리라고 믿는다.




글·그림 / 자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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