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유지은 Nov 06. 2019

가족을 잘 만나야 견생이 핀다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두 번째 만남 : 이응 님(下)

전편을 먼저 읽어주세요.








당근밭의 오름이들은 그의 따뜻한 보살핌 아래 먹고 자고 놀면서 똥꼬 발랄한 에너지를 대방출했다.

그리고...


흔한 댕댕이의 장난.jpg


때때로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면서 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기 일쑤였다.


지금은 결혼한 남편과 함께 개를 키워도 되는 집으로 이사를 했지만, 구조 당시에 살던 집은 개를 키울 수 없는 신축빌라였기 때문에 이사를 하기 전까지는 배변훈련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가구나 장판을 물어뜯을까 봐 전전긍긍해야만 했다.


당근밭에서 오름이들을 데려온 바로 그 순간부터 예견된 일이었다.  


복붙 아님! 자세히 보면 달라요~


그는 인내심과 책임감으로 무장하고서 오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실내견으로서 살아가는데 기본이 되는 배변훈련부터 시작해서 '앉아', '기다려', 안돼' 등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훈련을 병행했다. 휴지나 상자를  물어뜯던 강아지들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가지고 놀도록 했더니 사고 치는 횟수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가 오름이들에게 이러한 교육을 시킨 이유는 실내견으로 입양 보낼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애들이 딱 봐도 클 게 뻔하니까 마당에서 키우면 안 되냐는 문의도 많이 받았어요. 근데 저는 얘네들을 실내견으로 키워줄 사람을 찾았거든요. 레트리버 같은 개는 대형견이지만 실내에서 키우는 분들이 많잖아요. 근데 왜 이런 믹스견은 마당에 묶어 놓고 키우는 개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얘네들도 얼마든지 실내에서 같이 생활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의 노력 덕분에 오름이들이 많이 알려지면서 공중파의 한 프로그램에서도 촬영 요청이 왔다. 그런데 이사 일정이 맞물려 있어서 이사 후에 촬영하려고 일정을 조율하는 사이에 새별이와 백약이의 입양이 확정되었다.

 

(좌)새별이 (우)백약이


방송 제작진 쪽에서는 5마리가 함께 지내는 모습을 담고 싶어 했지만 방송 촬영 때문에 입양을 뒤로 미룰 수는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던 시기라 자칫하면 항공 위탁수하물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몸무게였기 때문이다. 그는 예정대로 백약이와 새별이를 육지에 사는 입양자들에게 직접 데려다주었고, 방송 촬영은 이런저런 논의 끝에 결국 무산되었다.


방송은 타지 못 했지만 SNS시대인 만큼 그가 올린 웹툰과 SNS 게시물들이 인기를 끌면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입양 문의가 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그의 눈에 쏙 드는 입양자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멍무룩


입양 문의가 와서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입양하려는 사람이 반려견을 대하는 자세와 인식이 드러나게 마련인데, 그 과정에서 입양 조건이 맞지 않거나 반려견을 키우기에 부적합한 환경이라는 판단이 드는 경우, 그가 먼저 입양을 반려하곤 했다.


그런 모습을 가까이에서 본 지인들은 그에게 입양 기준을 낮추라고 조언했지만 그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애초부터 오름이들을 '누구에게든' 빨리 보내버리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충분히 조기에 입양 보낼 수도 있었지만, 그가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한 데는 그 나름의 소신과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신중해질 수밖에 없더라고요. 가족을 맺어준다는 게 얘네들의 미래를 제가 대신 결정하는 일이잖아요. 어떤 가정에 입양되는지에 따라서 이 개의 남은 생이 평생 사랑받는 실내견이 될 수도 있고, 시골 개 1미터의 삶으로 결정될 수도 있고, 이런저런 핑계로 원래 제가 보낸 입양자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맡겨지거나 학대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물론 제 욕심이라는 걸 알지만 애초부터 문턱을 높여서 혹시 모를 안 좋은 일들의 가능성을 최대한 낮추고 싶었어요."



그는 반려동물이 어떤 가족을 만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초등학생일 때부터 키워온 반려견 ‘아지’는 짬밥을 먹이면서 베란다에 가둬 키우는 반실내견이었다. 그때는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들 모두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이 지금 같지 않았던 탓이다.

아지는 예민하고 사나워 이따금씩 공격성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를 비롯한 가족 모두 아지를 사랑했기에, 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함께 살았다.

아지의 생애를 지켜보며 성장한 그는, 하나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의 무게를 깨달았다.


“제가 사랑하는 동물이 늙어 죽는 걸 봤는데, 그게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줘서 아직도 가끔은 꿈을 꾸고 괴로워요. 저는 평생 그 개의 성격이 웃기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까 제가 어릴 때 했던 실수 때문에 그렇게 예민하고 사나운 개가 됐던 거예요. 그때는 그걸 몰랐어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너무 미안하더라고요.”


그때나 지금이나 개를 사랑하는 마음은 같지만 반려인으로서 사랑을 주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은 달랐던 것이다. 이러한 과거의 경험이 그 안에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에 '좋은 반려인'을 만나게 해주고 싶은 욕심이 그를 더욱 힘든 길로 내몰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애교 대방출


그렇다면 그가 제시한 입양 조건은 무엇이었을까.

최우선 조건은 중성화 수술과 반려동물등록이었다. 그가 이 두 가지 조건을 정한 이유는 오름이들이 환영받지 못한 생명으로 태어난 이유와도 직결된 일이기 때문이다. 평생 한 가족과 살다가 무지개다리를 건넌다면 제일 좋겠지만 혹시 잃어버리거나 버려지더라도 중성화 수술이 되어 있으면 제2의 오름이들이 태어나는 것을 예방할 수 있고, 반려동물등록이 되어 있으면 혹시 모를 분실 사고에도 다시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는 오름이들을 위해 그가 선택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던 샘이다.


“까다롭다면 까다로울 수 있는 조건이죠. 똥개인데 까다롭게 군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제가 욕먹더라도 평생 가족으로 믿을만한 가정에 안전하게 보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의 기준에 부합하는 입양자를 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양하고 싶다고 연락해오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인 반려동물등록에도 회의적이었고, 중성화 수술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았다. 그리고 혹자들은 더러 그를 향해 이렇게 반문했다.


“중성화 수술을 꼭 해야 되나요? 집에만 있을 건데.”


이런 말이 나오는 순간, 그 사람은 입양자로서 부적합하다는 결론이 났다. 그의 지인들은 ‘그렇게 하면 아무도 안 데려갈 거 같다’며 핀잔을 줬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더러는 그가 제시한 입양 조건을 듣고 불쾌감을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시골에 흔한 믹스견이라지만 아무나 키우고 싶다고 해서 덜컥 보낼 수는 없으니까 저 나름대로는 신중하게 생각해서 정한 입양 기준이 있는 건데, 자격 운운하는 것 같아서 불쾌하다고 말하는 분도 있었어요. 제 딴에는 상대방의 기분도 살피고, 말 한마디도 조심한다고 하는데도 그렇더라고요."


차라리 입양 문의 초기부터 가부가 결정되면 서로 좋은데, 그가 제시한 조건들에 동의하고 아무 문제없다는 듯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다가 정작 입양을 앞두고 갑자기 취소하는 사람도 많았다.


‘가족들이 반대해서’, 또는 ‘생각해보니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서’ 등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입양을 못하게 됐다며 취소하곤 했다.



번번이 이런 식으로 입양이 취소될 때마다 그는 '차라리 잘됐다'고 생각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모든 일이 갑자기 일어나지, 예고하고 벌어지는 일들은 거의 없잖아요. 근데 갑자기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입양하려던 개 한 마리를 못 키울 정도라면, 앞으로 진짜 입양을 하더라도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겼을 때 그 동물을 어떻게 할지가 불확실하잖아요. 과정은 좋지 않았지만 차라리 입양이 취소된 게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는 반쯤 해탈한 듯 웃어 보였다.

그때까지도 입양을 못 보낸(못 간 게 아니고 못 보낸 것이 맞겠다) 사라, 용눈이, 거문이는 사실상 그와 남편이 직접 키우는 걸로 기정사실화 된 상태였다.


한편, 일찍이 입양을 간 백약이와 새별이는 그의 꼼꼼한 입양 심사 덕분에 아주 좋은 가족을 만났다.

새별이는 이미 반려견 1마리를 죽을 때까지 키워 본 경험이 있는 가정에 입양을 가서 할아버지를 비롯한 대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살게 되었고, 처음 데려 왔을 때부터 겁이 많고 소심해 입양 보내기가 조심스러웠던 백약이는 집토끼 1마리를 키우는 부부에게 입양되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멋진 패션을 선보이며 매일 산책을 다니는 등 행복한 견생을 즐기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고향인 제주에 놀러 왔던 백약이 (사진제공:백약맘)


그가 당근밭에서 오름이들을 데려온 뒤로 그의 삶은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개들을 마음 편하게 키울 수 있는 주택으로 이사를 했고, 오름이들을 구조하고 케어하는데 일조했던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결국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사라, 용눈이, 거문이 3남매는 그와 남편이 정식으로 입양해 반려동물등록을 마쳤다.


어느새 훌쩍 커버린 오름이들은 18kg~20kg 정도의 대형견으로 성장했지만 여전히 하는 짓은 어릴 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3마리 모두 넘치는 개성과 매력을 갖고 있는 천사견들이다.


사라, 거문이, 용눈이


먼저 조숙한 장녀 느낌의 사라는 눈치가 정말 빠르고 자존감이 높은 개다. 차분하면서도 좋아할 때 좋아하고, 금방 자기 자리를 찾아 안정을 취한다.


그의 무릎 위에 오줌을 세 번이나 쌌던 둘째 딸 용눈이는 이름 때문에 남자라는 오해를 자주 받는다. 어릴 때 사마귀 같은 상처가 얼굴에 있었는데 지금은 다 나아서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용눈이는 굉장히 똑똑하고 영리해서 배변도 정확하고 평온한 성격인데, 애교도 많다.


둘과 달리 거문이는 백치미가 넘친다. 깨발랄한 성격이라 흥분을 잠재우지 못할 때가 많은데, 의외로 겁도 많고 껌딱지 같은 성격이다. 실수를 가끔 하지만 우려할 정도는 아니고, 보고 있으면 유쾌해져서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다.



그는 지금 서귀포 작은 마을에서 남편과 함께 오름이 3남매를 돌보며 살고 있다.

온 가족이 산책을 나설 때면 오름이들을 바라보는 동네 어르신들의 묘한(?) 눈빛에 경계심이 발동할 때도 있지만, 언제나 함께 해주는 남편이 있기에 오늘도 오름이들과 함께 마음껏 웃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응 님이 꼭 해주고 싶은 말


“다들 처음에는 단순한 이유로 키우겠죠. 별별 이유로 키우겠지만 그게 내 인생을 좌우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개와 고양이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후회라는 게 마음에 계속 남는 거니까. 후회가 남지 않도록 인간인 우리가 돌본다는 마음, 책임지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그는 지난해 '당근밭의 오름이들' 굿즈를 만들어 펀딩을 개설했다. 그 수익금으로 3남매의 중성화 수술을 시켰고, 지난해 여름에 개고기가 될 뻔했던 황구 '여름이'를 위해 사용했다.

그때, 여름이를 구조한 뒤 그는 내게 도움을 요청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오름이들이랑 다르지 않은데 그냥 모른 척할 수가 없었어요."


오름이들의 보호자인 그의 눈에는 제주도에 흔한 떠돌이 개와 마당에 묶인 채 출산을 반복하는 개들이 오름이들을 태어나게 한 존재로 보였다.

만약 그가 당근밭에서 오름이들을 데려오지 않았다면 오름이들 역시 시골의 흔한 떠돌이 개가 되어 외롭고 위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오름이들은 우리가 숱하게 보아온 '떠돌이 동네 개'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우리는 너무 익숙하고 당연해 보인다는 이유로 그들의 고단한 삶을 외면해왔던 것은 아닐까.




글 / 자유지은




관련 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외눈박이가 된 품종묘
호갱이었지만 괜찮습니다
제주 당근밭에서 멍줍했습니다
임신한 고양이는 갈 곳이 없었다
고양이 집사가 얼마나 힘들게요
죽음의 문 앞에서 살아 나온 강아지
견생2막에 파양은 없다


이전 04화 제주 당근밭에서 멍줍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