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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지은 Nov 16. 2019

죽음의 문 앞에서 살아 나온 강아지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세 번째 만남 : 소혜조 님(上)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친구 집에 놀러 갔던 그는 덜컥, 공포에 휩싸였다. 으르렁거리며 사납게 짖어대던 대형견 2마리 때문이었다.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묶여 있긴 했지만 혹시 달려들어 물까 봐 두려웠다. 어렸을 때는 그의 집에서도 개를 키웠었기 때문에 원래부터 개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대형견의 사나운 모습을 마주한 뒤부터 그는 '개 공포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길에서 작은 개만 보여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발걸음을 멈추었고, 개를 미리 발견하면 멀리 떨어진 길로 돌아갈 정도로 무서워했다.


몇 년 후. 그는 또 다른 지인의 집에 갔다가 그곳에서 꽤나 의젓하고 유순한 성격의 대형견을 보게 되었다. 그때까지도 그의 머릿속엔 사납게 짖던 대형견 2마리의 잔상이 머릿속에 많이 남아 있었는데, 그 집의 개들과는 전혀 달랐다. 짖거나 덤벼들지 않아서 조금은 안심이 됐다.

비록 가까이 가지는 못했지만, 개와 한 공간에 있는데도 무섭지 않고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물론 이때의 경험만으로 개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었지만 그동안 ‘모든 개’를 대상으로 느꼈던 공포가 점차 누그러지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개에 대한 두려움’은 시간을 두고 서서히 옅어졌고, 결혼을 한 뒤에는 시부모님이 키우는 개를 직접 데리고 산책할 정도가 되었다. 어색하긴 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오늘 만나실 분은 소혜조 님입니다.
집은 평택인데 회사는 종로라 어쩔 수 없이 주말 부부로 지내고 있지만, 주말마다 사랑하는 남편과 반려견을 만나 행복을 충전하며 살고 있습니다.



원래부터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과 함께 살다 보니 그도 자연스럽게 <동물농장>이나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같은 프로그램을 즐겨보았고, 막연하게나마 '반려동물을 키운다면 개가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특히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에 나온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캠페인 슬로건은 그로 하여금 '개를 키운다면 보호소에 가서 입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개와 고양이를 모두 좋아하는 그의 남편은 어느 쪽이든 대찬성이었기 때문에 그가 결심을 굳힐 때까지 재촉하지 않고 기다렸다.


마침내 2017년 8월의 어느 날, 그는 TV를 보다 말고 무언가 결심한 듯 남편을 불렀다.


“여보! 이제 개를 데리러 가야겠어.”


다소 즉흥적이고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남편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말이기도 했다. 그 즉시 남편과 함께 지역 유기동물 보호소로 향했다.

그때 부부가 정해놓은 기준은 딱 하나였다. 중·소형견. 성별이나 품종을 따로 정해놓지는 않았다. 인터넷으로 유기동물 현황을 미리 살펴본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직접 가서 보고, 그곳에 있는 유기견 중에서 데려올 생각이었다.






보호소에 들어서자 지독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교적 관리가 잘 되고 있는 보호소라고 했는데도 그랬다. 악취 때문에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남편이 한쪽을 가리켰다.


“여보, 쟤가 너무 예뻐!”


철창으로 된 케이지 안에는 형제지간으로 보이는 강아지 2마리가 있었는데, 그 순간 제일 먼저 눈이 마주친 건 지금의 아지였다. 까만 눈망울이 반짝거리며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어. 그럼 쟤로 하자!”


안락사를 불과 이틀 앞둔 시점.

한 생명을 죽음의 문턱에서 불러 세운 말이었다.





보호소에서 나와 곧장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으레 그렇듯 기본적인 검진과 접종을 하기 위해서였는데, 병원에 도착한 '아지'는 안절부절못하며 앓는 소리를 냈다. 수의사가 주사를 놓은 것도 아니었고 단지 귓속을 확인한 것뿐인데도 당장 죽을 듯이 울부짖었다.


울며 불며 난리 치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며 병원 안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유기동물 공고 당시 3.7kg이었던 '아지'



그로서는 이런 경험이 처음이다 보니 당혹스럽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누가 보기에도 너무 심하다 싶을 정도로 난리를 치니까.



'어디가 불편해서 그러나?'

'대체 왜 그러는 거지?'   


걱정이 될 수밖에.

 

근데, 이때를 회상하는 그의 얼굴에는 아픔 대신 황당함이 녹아 있었다.

그 당시 아지는 생후 4개월 정도의 '개린이'였고 아픈 곳 하나 없이 아주 건강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럼 대체 왜 그렇게 아프다고 난리를 쳤을까 싶은데...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엄살이 진짜 심하다고.”


비록 엄살을 부리기는 했지만 노련한 수의사 덕분에 첫 진료와 접종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단지 엄살이 심했던 아지는 각종 용품들과 함께 그의 집에 입성하게 되었다.



개린이 : 개+어린이의 합성어




이때까지만 해도 아지에게 숨어있는 반전 매력을 아무도 짐작하지 못했다.

 



글·그림 / 자유지은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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