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네 번째 만남 : 강아희 님(上)
일 때문에 고향을 떠나 충남 당진에 살게 된 그는, 한동안 친한 동생과 함께 지냈다. 그러면서 마음에 품은 '싱글라이프 로망'이 그에게도 있었다.
언젠가 혼자만의 공간을 갖게 된다면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는 고양이보다 개를 훨씬 더 좋아했고, 지인들도 다 개를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반려동물로는 개가 더 친숙하고 매력적이라고 여겼다. 특히 좋아하는 ‘프렌치 불독’을 키운다면 어떨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곤 했다.
반면, 고양이에 대해서는 왠지 모르게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비염이 심해 고열과 재채기를 달고 살았기 때문에 털 빠짐이 심한 고양이는 접촉하는 것조차도 기피했다. 그러니까 애초부터 고양이 집사가 될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고양이의 매력? 그런 건 알지도 못했고 관심도 없었다. 분명 그랬다. 같이 살던 동생이 임신묘 '해솔'이를 집에 데려왔을 때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해솔이는 당진에 있는 모 골프장에서 밥을 챙겨주던 ‘길고양이’였다. 사람 친화적인 성격이긴 했지만 길고양이인 해솔이를 전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홀몸일 때는 괜찮았는데, 임신한 해솔이 에게는 안전하게 머무르며 출산할만한 거처가 필요했다.
비바람이 불고 차디찬 길바닥, 비위생적이고 위험한 환경에서 새끼를 낳고 싶지 않은 건 본능이니까.
하지만, 길고양이에게 그런 공간이 허락될 리 없었고, 출산을 앞둔 임신묘 해솔이는 갈 곳이 없었다.
오갈 곳 없는 해솔이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그와 함께 살던 동생이었다.
"새끼 낳고 입양 보낼 때까지만 데리고 있을게."
원래부터 고양이를 좋아하던 그 동생이 해솔이를 데려오며 그에게 한 말이었다.
그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마지못해 허락했다.
딱히 고양이를 좋아하진 않지만 사정을 듣고 보니 매정하게 쫓아 보낼 수가 없어서였다.
'새끼도 낳아야 하는데 처지가 딱하고 안 됐으니까.'
그것은 단지 측은지심 때문이었고, 고양이는 여전히 그의 관심 밖에 있는 동물이었기 때문에 조건을 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대신, 고양이가 내쪽으로 못 넘어오게 해 줘."
공간을 철저하게 분리해야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는 이 정도로 고양이와의 접촉을 꺼리던 사람이었다. 대체 그는 어쩌다가 고양이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것일까.
오늘 만나실 분은,
충남 당진에 사는 강아희 님입니다.
그는 10여 년간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고, 로맨스 소설을 쓰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임신묘 해솔이와의 불편한 동거는 하루아침에 그의 관심사부터 바꿔놓았다.
‘이 고양이가 새끼를 언제쯤 낳을까?'
지극히 단순하지만 미묘한 이해관계가 얽힌 호기심이었다. 때문에 그는 해솔이가 집에 온 뒤부터 매일 아침저녁으로 틈 날 때마다 고양이를 들여다봤다. 비록 가까이 가거나 만지지는 못하고 그저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는 게 전부였지만.
혹시라도 고양이가 제 쪽으로 넘어오기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펴보는 그와 달리 해솔이는 여유가 넘쳤다. 임신을 해서 예민할 법도 한데 원래부터 자기네 집이었던 것 마냥 너무 태연하고 느긋한 태도로 생활하는 모습이 터줏대감이나 다름없었다.
어쨌든 그는 이런 식으로 매일매일 해솔이의 동태를 살폈고, 보면 볼수록 고양이에 대한 경계심과 선입견은 점차 호감으로 바뀌어갔다.
그렇게 조금씩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지다 보니 어느 순간 해솔이를 쓰다듬을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내가 고양이를 만지다니…….'
그로서는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순간이었다.
고양이의 보드라운 감촉과 온기가 그의 마음에 침투하기 시작했다.
.
.
.
그러던 어느 날, 해솔이의 배를 쓰다듬던 그의 손끝에 새끼들의 태동이 느껴졌다.
'어머……!'
뚜렷한 움직임이 손끝을 타고 전해졌다. 작은 생명의 존재감이 그의 심장을 마구 두들겼다.
얼마 후인 2016년 6월, 해솔이를 쏙 빼닮은 새끼 고양이 4마리가 태어났다. 수컷 3마리와 암컷 1마리였다.
그는 해솔이를 데려왔던 동생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이름을 짓기 시작했다. 한참 고민한 끝에 수컷 3마리에게 각각 ‘레오’, ‘호두’, ‘로나’라는 이름을, 암컷 1마리에겐 ‘모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특히 이 가운데 ‘호두’라는 이름은 4마리 중에서 가장 왜소하고 눈도 늦게 뜬 수컷 고양이를 위해 지어준 이름인데, 호두껍질처럼 단단하고 건강하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것이다.
새끼 고양이들은 자고 일어날 때마다 쑥쑥 자랐다. 눈도 못 뜨던 꼬물이들이 커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건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해솔이를 처음 집에 데려올 때부터 해솔이와 새끼 고양이 1마리는 입양자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아이들의 성장은 그 이별의 시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생후 2개월에 막 접어들었을 무렵, 새끼 고양이들 가운데 가장 우량아였던 로나가 해솔이와 함께 입양을 가게 되면서 나머지 3마리는 어미묘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너무 서둘러 보냈던 게 아닐까 싶지만, 그가 관여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저 옆에서 지켜보는 제 3자의 입장에서 젖도 다 떼지 못한 채 어미와 생이별을 하게 된 모카, 레오, 호두가 짠해 보일 따름이었다.
해솔이와 로나가 떠난 후 집에 남은 모카, 레오, 호두는 각자 새로운 가족을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지만, 정해진 입양자는 없었다.
물론 그가 주도적으로 추진할 일은 아니었지만, 새끼들이 어미 뱃속에 있을 때부터 지켜봐 온 동거인으로서 그의 마음은 이미 제3자가 아니었다.
아직 분유를 먹여야 하는 새끼들이라 입양을 보내기에 너무 어려 보이기도 했고, 어미를 잃고 서로 의지하며 지내는 셋을 떨어뜨려놓아야 한다는 게 가슴 아팠다.
‘얘네들 셋을 같이 키워줄 사람이 데려가면 마음이 좀 놓일 텐데…….’
한 마리를 입양 보내기도 쉽지 않은 마당에 3마리를 한꺼번에 입양해줄 사람을 찾는 건 허황된 꿈이나 다름없었다.
그 또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어미와 생이별한 새끼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꼴은 가슴 아파서 못 볼 것 같았다.
그러니 방법은 딱 하나, 새끼 고양이 3마리를 그가 직접 키우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의 마음은 고양이들이 가져가 버린 지 오래였고, 그에게 남은 것은 오직 결심하는 일뿐이었다.
비록 떨어져 살고 있었지만, 그의 부모님은 고양이 키우는 걸 반대했다. 이유는 다름 아닌 털 때문이었다. 어려서부터 비염으로 고생을 많이 했던 딸이 덜컥 고양이를 키우겠다니 덮어놓고 반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릴 때 알레르기성 비염¹으로 고생을 좀 했거든요. 저도 고양이는 털이 많이 빠지니까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고양이들이랑 같이 지내면서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
⑴알레르기성 비염의 경우 그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 검사를 통해 개 혹은 고양이 알레르기로 확인된 것이 아니라면 생활에 직접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로써 부모님의 반대 이유는 힘을 잃었고, 그즈음 혼자만의 독립적인 생활을 위해 이사를 준비 중이던 그는 새끼 고양이 3마리와 함께 새 출발을 하게 되었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었다.
고양이를 키워본 적도 없고, 관심 조차 없었던 사람이 1마리도 아닌 3마리의 보호자가 되겠다고 자처한 것부터가 무리수였지만, 그는 '육묘'에 대한 의욕을 불태우며 초보 집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글·그림 / 자유지은
다음 글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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