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세 번째 만남 : 소혜조 님(下)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구사일생으로 견생 2막을 맞이하게 된 아지는 새로운 보금자리에 도착하자마자 놀라운 속도로 적응해 본래의 성격을 보여주었다.
“병원에서는 하도 찡찡거리고 우니까 겁 많고 소심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집에 오니까 전혀 딴판인 거예요!”
이런 걸 반전 매력이라고 해도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보호소와 병원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행동이었다. 아지는 뜯고 씹고 맛보기를 생활화하며 매일 같이 사고를 쳤다. 그동안 방송에서 숱하게 보았던 '문제의 장면'이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었다.
“집에 들어갔을 때 휴지 날려 있는 건 기본이고요, 선을 그렇게 많이 물어뜯어놔서 선풍기도 아예 못 쓰게 해 놓고 그랬어요. 물건 망가지는 거야 고치면 되고 정 안 되면 새로 사면 되는 건데, 잘못해서 다치기라도 할까 봐 그게 걱정되더라고요.”
처음엔 그저 '개린이'의 넘치는 에너지와 호기심 때문일 거라고 치부하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산책시켰지만 아지는 잠깐 자고 일어나면 급속 충전이 된 것처럼 활기를 되찾았다. 이 정도로는 활동량이 부족한가 싶어서 산책시간도 늘리고 강아지 운동장에도 데려가서 뛰어놀게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평범한 개린이 수준이라고 보기에는 어마어마한 활동량이었다.
그는 아지를 지켜보면서 왠지 모를 비범함을 느꼈다. 그냥 믹스견인 줄 알고 데려왔지만 하는 행동이 심상치 않다 보니 이른바 '지랄견'이라고 불리는 개들을 떠올리게 된 것이다.
어쩐지 '비글'을 닮은 듯한 생김새와 예사롭지 않은 눈빛도 그런 의심을 하는데 한몫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 검색을 시작한 그는, 마침내 ‘잭 러셀 테리어’라는 견종을 발견하고서 무릎을 탁 쳤다. 외모와 성격이 딱 들어맞았다. 아지 몸속에 '잭 러셀 테리어'의 피가 흐른다는 확신이 들었다.
“알고 봤더니 지랄견의 한 종류라고 하더라고요. 비글보다 더 심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고요. 어쩌면 아지도 그래서 버려진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잭 러셀 테리어는 사냥개의 혈통으로 교배되어 만들어진 견종이다. 체구는 작지만 몸이 날렵하고 활동량이 많은데다 지구력까지 겸비해서, 주로 여우사냥에 동원되었다고 한다. 물론 같은 종이라도 성격은 천차만별이다. 같이 태어난 형제들인데도 타고난 성격이 아예 다르기도 하고, 사회화되는 과정에서 반려인이나 환경적 영향을 받아 달라지기도 한다.
의문의 1패를 당한 비글에 대해서는 추후에 따로 다루도록 할 거예요. 비글은 악마견이나 지랄견이 아닙니다. 저는 비글을 사랑하고 비글 가족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견종 특징을 파악한 그는 아지가 넘치는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할 수 있도록 야외활동을 더 자주 했다. 그래서 주말에는 집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많다. 강아지 운동장에 가거나 셋이서 함께 여행을 다니는 식이다.
“산책은 아침저녁으로 꼭 해요. 다행히 남편도 집에 있는 거보다 야외 활동하는 걸 더 좋아해서 캠핑도 같이 다니고 그러거든요. 주말에는 교회 근처에 있는 반려동물 운동장에도 가는데, 아지가 제일 신나게 뛰어놀아요. 같이 놀던 친구들이 다 지쳐서 쉬고 있으면 자기 혼자 운동장 독차지한다니까요.”
그가 환하게 웃으며 휴대폰 속 동영상을 보여주었다. 다른 개들과 어울려 운동장을 질주하는 아지의 모습에서 영화 속 추격전을 방불케 하는 속도감이 전해졌다.
“운동장 갔다 와서 보면 발바닥 패드가 다 까져 있고 그런데도 좋다고 뛰어다니는 거예요. 그러고 집에 오면 자기도 피곤하니까 곯아떨어져서 자긴 하거든요? 근데, 진짜 잠깐 자고 일어나면 금세 또 쌩쌩해져요.”
그는 아지의 체력이 놀랍다는 듯 혀를 내두르며 웃었다.
처음 데려왔을 때에 비해서 사고 치는 횟수가 줄어들긴 했지만 그가 보기에 아지는 여전히 천방지축 어린아이 같다. 밖에 나갈 때마다 항상 주의를 기울이고 있지만, 소소한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탓이다.
“아지처럼 호기심 많고 활달한 애들 수명이 짧다고 해서 걱정이에요.”
병원에서 이 같은 말을 들은 뒤로 그의 바람은 아지와 오래오래 같이 사는 것이다. 때문에 자잘하게 사고 치는 것 정도야 이제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지만, 놀다가 다치기라도 하면 마음이 쿵 내려앉는다.
한 번은 풀밭에서 산책하고 왔는데 한쪽 눈을 제대로 못 뜨기도 했고, 발바닥 패드가 너무 벗겨져서 발에 붕대를 감기도 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건강하게 자라준 편인데, 지금까지 같이 지내면서 가장 마음 쓰였던 건 처음에 입양하고 며칠 안 지나서 아팠던 일이다.
“아지 데려오고 얼마 안 돼서 얘가 좀 아팠거든요. 갑자기 아파서 일주일 정도 고생했었어요. 그때 보호소에서 아지랑 같이 있었던 개가 자매인 것 같다고 들었는데, 나중에 찾아보니까 며칠 뒤에 바로 안락사된 거 같더라고요. 그때 같이 못 데리고 나온 게 미안하기도 하고 그랬는데……. 근데 이상하게 그때쯤 시기가 딱 맞물려서 아지가 아팠거든요. 마음이 좀 그렇더라고요.”
설핏 짙은 어둠이 그의 얼굴에 드리워졌다.
입양 첫날 병원에 데려갔을 때만 해도 건강하다고 했던 아지가 며칠 지나지 않아 아팠던 이유는 뭐였을까.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도 괜스레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것은 아마도 ‘안락사’라는 죽음의 단어가 지닌 씁쓸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가 방문했던 보호소는 ‘안락사 날짜를 잘 지키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 보호소에서는 공고일이 지나기도 전에 안락사를 시키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좋은 말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속 쓰린 말이다.
보호소에서는 공고기간 10일이라는 법적 기준에 따라 공고를 내고, 그 기한 내에 보호자나 입양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관할 지자체로 소유권이 이관된다. 보호소는 동물보호센터 운영 지침에 따라 공고기간이 만료된 동물을 안락사시킨다. 안타깝지만 이것은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안락사다.
입양을 하는 일이 생명을 살리는 일이긴 하지만, 입양되었다고 모두 다 잘 사는 건 아니다. 물론 처음부터 파양을 하려고 입양하는 사람은 없을 테지만, 아지처럼 사고뭉치가 아니더라도 반려인의 '개인 사정'으로 파양 되는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그 사정이라는 것들은 대게 우리가 흔히 짐작할 수 있는 흔한 것들이고, 그 많고 많은 이유 중에 하나가 바로 출산이기 때문에 나의 노파심이 계속해서 신호를 보냈다.
결혼해서 아이가 태어나면 털 날림이나 알레르기, 육아의 어려움을 핑계로 키우던 반려동물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거나 버리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안 좋은 뉴스를 너무 많이 보면서 사는 거라고 믿고 싶다. 정말로.)
어차피 인터뷰를 하기로 한 이상 이 부분을 묻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에게 확인해야만 했다. 나는 우려 섞인 질문을 던졌고, 돌아온 대답은 명료했다.
“절대 파양은 안 할 거예요. 출산 계획도 있어서 그런 문제도 생각했었는데, 심한 문제가 생기면 공간을 분리하면 되는 거고요. 오히려 아기 면역력에는 더 좋다는 얘기도 많던데요? 그리고 무슨 문제가 있어도 훈련을 하거나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그렇게 가는 게 맞는 거지, 자기 기호에 안 맞는다고 버리는 거는 정말 하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게다가 이미 한 번 버려졌는데……. 저는 절대 파양은 안 할 거예요.”
매우 강경한 어조였다. 파양은 없다고 재차 강조하는 그의 눈빛에서는 굳건한 책임감이 엿보였다.
아지를 입양한 것이 단지 그날의 즉흥적인 행동이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그의 마음속에는 가족으로서 반려견과 함께 할 미래가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인터뷰 당시 그는 이사 계획과 출산 계획에 이어 아지 동생을 입양할 계획까지 갖고 있었다. 이로써 나의 노파심은 사이다를 마신 듯 시원하게 해갈되었다. 그래서 여느 때처럼 훈훈한 마음으로 그와의 인터뷰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강아지 입양해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거나 환상을 가지고 있으면 고비가 있을 거 같고요. 좋은 점이나 환상만 가지고 키우면 안 될 거 같아요. 물건을 물어뜯기도 하고 짖을 수도 있는데, 개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입양했다가 괜히 당황하고 파양하고 그러는 것보다는, 개를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게 어느 정도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개를 키우면 안 될 거 같아요.”
'아지는 참 복 받았다.'
인터뷰를 하고 돌아오면서 내내 이 생각을 했다. 이 정도의 아량을 가진 보호자를 만나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입양된 지 며칠 만에 파양 되서 돌아오거나 버려지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아무리 사고를 쳐도 내 아이가 어디 다친 데는 없는지 먼저 살피는 '진짜 부모'를 만났으니까.
그리고 뒤이어서 든 생각도 비슷했다.
'아지는 운이 정말 좋았다.'
아지는 이렇게 좋은 가족을 만나 꽃길을 걷고 있는데, 함께 있었던 개는 예정대로 안락사되었다. 자매니까 아지랑 똑같은 날 태어나서 겨우 생후 4개월이었을 텐데……. 이렇게 지자체 보호소의 동물이 입양되는 확률은 전국 평균 30% 수준에 불과하다. 아지는 그야말로 운 좋게 목숨을 건진 샘이다.
아지만 생각하면 훈훈한 기운이 내 마음을 달큼하게 물들였지만, 끝내 입양되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하는 유기동물과 또다시 파양 되는 반려동물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웠다. 유기동물 입양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하지만 진입 문턱이 낮기 때문에 가벼운 마음으로 입양했다가 파양 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 이유는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의 경우처럼 '데려와서 봤더니 지랄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말했던 것처럼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고 함께하는 것. 그것이 진짜 가족 아닐까?
글 / 자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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